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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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스릴러 소설을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석대로 작가가 깔아놓은 함정에 걸려넘어져가며 읽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도입부터 10%까지만 읽고 바로 결말로 넘어가 2~3쪽쯤 읽은 후에 다시 처음부터 읽는 것이다. 전자는 등장인물에 몰입해 작가가 의도한 긴장감과 트릭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에는 시작과 끝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짜맞춰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쪽이든 즐거운 경험이 되겠다.


펼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말 없는 파수꾼", "움직이지 않는 관찰자"인 고대의 거석(巨石), 환상열석에서 잇따라 발견되는 시체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최대한의 고통을 의도한 것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하나같이 고문당하고 불에 태워진 채 버려져, 아니 전시되어 있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시체들, 조롱이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그것들, 게다가 시신들에 새겨진 이름은 정직(이라기엔 본인은 전직이라 주장하는) 경관 "워싱턴 포".

이것은 경고일까, 아니면 "immolation man"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를 향한 경배와 헌신의 증명일까. 대체 누가 치밀한 수사망을 뚫고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걸까. 목적이 뭘까. 있기는 한 걸까. 단서를 따라갈수록 믿을 수도 믿고싶지도 않은 진실이 드러나는데...


개인적인 기준으로, 좋은 스릴러 소설은 역시 기어코 독자에게서 "(작가에게) 당했다!!"를 끌어내고야 마는 작품이다. 그에 더해 읽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냥 나 여기서 기절하면 안될까..."와 "그치만 이정도면 많이 봐주지 않았냐" 되시겠다. 어딘가의 독자가 누려야 할 긴장감을 망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책머리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작가 본인의 심상찮은 광기로 두려움에 떨다, 열정과 집념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다보면 어느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떻게 사람이 되어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그 다음은?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결말로 내던져진 독자가 아닐지.


순조로이 드러나다가도 예상치 못한 사이 뒤엉키는 실마리,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 재주가 탁월하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기다릴 만큼. 이 시리즈의 팬이 되고야 말리라는 익숙한 예감. 덤으로 줄거리 외의 소소한 즐거움, 너네 뭐하니...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열에 여덟은 엇나가지만 묘하게 죽이 맞는 틸리&포 콤비와 실시간으로 속이 뒤집어지는 구 부하 현 상사 플린에 정상인 아닌 정상인 포지션을 담당하는 리드까지. 티비 시리즈로 나와주라. 제발.

p.172 “개소리 마, 포.” 플린이 낮게 으르렁댔다. (...) “나를 탓해.” 포가 대답했다. “나를... 그럼 썅, 당신 말고 누굴 탓하겠어?”
p.216 포는 비스킷에 손을 뻗었다. 아… 리치 티, 비스킷을 먹고는 싶은데 달콤한 것과 짭짤한 것 사이에서 갈등할 때 먹는 과자. 그는 과자를 잔 받침에 놓고 훌륭한 커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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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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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지금은 아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인생이라고 하기엔 나름 어엿하고 조금 민망한 시간의 반 정도를 운동으로 보냈다. 평생을 꿈꿨지만 이내 그만한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던 것도, 좋아하는 일을 왜 계속할 수 없는지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던 것도, 몸이 남아나질 않게 골고루 다치고 회복했던 것도, 다시 마주한 곳에 눈물이 차올랐던 것도 그것이 처음이자 가장 강렬한 대상이었다. 태권도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어째 재롱잔치 신세를면하지 못하는 태권도는 첫사랑이자 첫 좌절과 회피를 함께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은 여느 집이 그렇듯 쟤가 저렇게 부실해서 사람 구실은 하겠냐며, 금세 그만두겠지 싶은 마음으로 보낸 동네 도장이었고, 끝은 대학 동아리였다. 맨발로 잔디밭에서 운동한다고 설치다 상처에 풀독이 올라 벌겋게 부었을 때도, 근육이 찢어지고 피가 고여 시커멓게 멍이 들어 절뚝거릴 때도 사랑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앞서 말했듯 전공이나 업이 아닌 이상 태권도는 "나도 군대에서" 내지는 반 조롱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심심찮게 우스개로 끌려나오는 일에 화를 내는 때는 지났으나 땀에 절고 헤진 띠, 눈 감고도 찾을만큼 몸에 익은 도복, 숨을 고르고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할 지 아는 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벼려내는 감각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거짓말이다. 모든 것을 외면하던 시간에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던 기억.

한동안은 떠올리는 것도 괴로워 애써 피해다녔고,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라 구태여 말할 것도 없어 말할 일도 없다보니 이제와서는 그래, 그런 때도 있었지- 정도의 단어가 되었다. 때때로 그 감각이 사무치게 그리우면서도 다시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는, 조금 슬픈 무언가,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활동에 태권도가 자리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니 더더욱.

p.32 아이들이 주고객인 태권도장들은 주고객의 니즈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게 점점 성인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사라져갔다.

p.100 여전히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인생 이모작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삼모작, 사모작을 지어보고 싶은 내 마음은 영심이 같은 청춘이다. 그런데 내가 늘 우려했던 것처럼 ‘나잇값'을 치르지 않고 드러내는 욕망일까 두렵다.


왜 굳이 태권도냐, 묻는다면 그만큼 부담이 적고 친숙한 운동도 드물기 때문이며, 단순한 체력증진에 그치지 않고 자기수양을 기본으로 하는 무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살사별자, 창졸간에 남겨진 이들을 대하는 임상심리사인 저자는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도록 위로하고 싶어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p.101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하게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삶의 끝이라는 것에 매번 직면한다. ‘나중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의 그 나중과 다음과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풀어내는 수련 이전의 시간부터 파란띠 승급을 앞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한국 여성, 그것도 중년 여성이 지겹도록 겪는 사회적 시선과 자기부정이 녹아있다. 그나마 심리학자라는, 스스로와 타인을 객관화하는 일에 익숙한 직업이라 다행일 정도로. 스스로에게도 살면서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고, 미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우량아로 태어나 곰같은 괴력의 여성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펑퍼짐한 도복에 안도하면서도 맵시가 영 아니올시다- 에 창피했다고. 그러나 우리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지 않은가.

p.124 추하게 늙지 말자는 결심은 자주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가급적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제약 안에서 노화를 서글퍼만 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권위, 기존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한낱 초심자로 서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맨발과 마음같이 되지 않는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낮은 자세로 돌아가 숨을 고르고 단단히 주먹을 말아쥐고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기합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상에 못미치는 나, 미트에 미워하는 이를 투영하기를 그만둘 수 없는 나, 겨루기가 아닌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는 나, 욱하는 마음에 볼멘소리를 내뱉는 나를 인정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거창한가? 저자가 말하는 수련 이전의 삶을 구성해온 충동구매와 반복되는 실패, 주접의 공통점은 바로 끊임없는 용기이다. 좌절에 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도인의 정신이 아닌가. 나를 이해하고 가다듬는 것에 초월, 즉 극기가 있다. 물론, 저자가 말하듯 그 길에 수많은 "수련 동지"와 서로를 재단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있다.

p.242 태권도 수련을 하면서 그동안 부정적으로 각인되었던 '극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혹은 확장이 극기였던 것이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오늘의 기쁨이 내일의 후회로 이어져도 좋다. 간신히 허리께 미치는 발차기, 어제 배우고 오늘 잊어버리는 품새면 어떤가. 다시 하면 된다. 몸의 기억은 강력하다. 몸은 시간을 잊지 않는다. 파도에 무너진다 하더라도 성을 이뤘던 모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쌓아올린 기억은 다시금 일어설 용기를 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 보다 많은 이가 "내 꿈은 날아차기"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다 많은 여성, 그것도 나이 든 여성들이 맨발에 도복과 띠를 갖추고 도장으로 향하길, 그 자리에 언젠가의 나 또한 다시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고, 언제까지고, 가슴속에 검은띠와 날아차기! 를 품고.

p.264 수련을 마칠 때마다 우리는 “바른 생각, 넓은 마음, 건강한 신체”라고 다 함께 소리친다. 어쩌면 ‘날아차기’보다 더 어려운 목표일 수 있는 그곳을 향해 정해진 시간에 도복을 입고 맨발로 도장에 서서 내 몸이 보내는 무언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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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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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배달노동자 혹은 배달 및 중계 플랫폼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현장의 압박을 생생하게 들은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잘 알지 못하고 피부에 와닿도록 직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배달 노동자에 대해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딸배", "못 배운 사람"이면서 신속정확 어디든지 갑니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상한 세상이다. 내 음식, 내 물건은 한시간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과 저 무식한 오토바이가 사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체로 같은 사람이다.

바로 이 모순이 근원적인 지적을 어렵게 한다. 요구하는 내용은 정반대의 것들인데 요구하는 사람은 같다. 혹은 그 힘이 시장을 돌아가게 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바뀔 수 있는데 너무나도 당연해진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혹은 포기하지 못하도록, 문제를 알지 못하도록 교묘히 가리고 조장한다.

p.11 사고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사고에는 맥락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라이더의 생계와 기업의 이윤, 소비자의 편리라는 복잡한 욕망의 연대 속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한 줄의 사고 소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이 선한 마음으로 궂은 날엔 배달 주문을 하지 말자고, 늦어지는 배달에 불만을 표하지 않기로 한들 실질적으로 일선에서 뛰는 배달노동자들에게 별 영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전 중에도 자꾸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차 사이와 인도를 위험하게 오가는 데엔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당장 굶어 죽는 것과 죽을만큼 위험한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마음을 혹자는 알지 못하고, 혹자는 알면서도 제 일이 아니기에 무시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든다.

물론 과속과 신호위반, 안전장비 미착용이나 인도를 넘나드는 행위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남도 아찔한 상황이 숱하게 많았고, 정말 어디다 떼밀어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알아야 단속을 하든 처벌을 하든 할 게 아닌가. 끊임없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도록 밀어넣고 심지어 판을 키우면서 하지마라 처벌한다 백날천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p.89 대형 화주 역시 배달 시간에 대한 커다란 이해관계 당사자다. 각 개인이 개념 있는 손님이 되는 것만으로는 배달 재촉으로 인한 라이더 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화면에 배달 시간이 나오잖아요. 파란색은 15분, 4분 남으면 노란불, 3분 이내면 빨간불. 그런 걸 보면 압박감이 느껴지죠.“


이 책은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서 이중으로 이용되는, 배달산업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좋을 배달라이더들의 사고가 왜 그렇게 잦은지,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근절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파헤치고 검증하려 노력한 과정이자 현실 고발이다. 혹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사연이 궤변이라고, 다 자기들 돈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고, 누가 시키기라도 했느냐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대체로 틀렸다. 현실이며, 살 만큼 벌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소비자가 그렇게 요구한다. 신속정확 초고속 만능 배달 사회에 사는 한 책임 없는 사람은 없다. 당연해진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시간을 안전과 함께 쪼개며 목숨을 걸고 달린다.

p.272 배달노동자가 아무리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 장비를 착용한다 하더라도 도시 전체 구성원들이 안전이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달노동자의 공장을 안전하게 정비하는 것은 시민 모두의 안전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 배달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임금, 고용뿐만 아니라 산업안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이 쪼개지고 유연화되는 것만큼 기업도 쪼개지고 유연화되고 있는 중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 갈 자리에 빈칸만이 존재한다.


이따금 이런 말을 한다. 개인을 집단의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고, 집단의 이름 아래 완벽히 들어맞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문받은 음식을 가지러 가게로 들어선 배달 기사에게는 이름이 있고, 비에 젖어 바닥을 더럽히는 사연이 있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장과 매장 이용자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한 번만 쓸 수 있겠냐고 허리를 숙여야 했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까짓 것 만드는 데 대체 얼마나 걸리기에, 이 시간이면 내가 사와서 들고 와도 남겠다는 배달 시간에는 똑같이 말하는 이가 너댓명은 있었을 것이고, "젊은 사람이 노력해서 성공할 생각은 안 하니 이런 일이나 한다" 면박을 당하던 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냄새나서 민원이 들어온다, 입주자와 마주치지 않게 화물 승강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모두가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때 "고품격 아파트"의 명예 이전에 배달기사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p.226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워둔 책임의 자리에 일하는 사람만을 남겨놓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소한 화장실 하나 정도는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p.205 고급 아파트의 주민들은 냄새가 나고 건물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배달을 아예 막아 버리자는 다수파와 그래도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소수파로 나뉘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소수 의견을 존중하여 갈등을 해결했다.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평소 쓰지 않던 화물용 승강기에 배달원들을 올려보내자는 합의였다. (…)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건물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잖아!"라고 소리쳤다. 건물에는 명예가 있는데, 배달노동자에겐 명예가 없었다.

무릇 사람이 되어서 알지 못하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세상 일이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일은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깜짝 놀라 일어서게 되지 않는가. 더이상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함께 살아야 하고 같은 공간을 오가며 살아야 한다. 이미 알아버린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함과 죄책감이 배달 주문 알림과 함께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도 목숨을 걸고 일해서는 안 된다. 살기 위한 노동이 자신 혹은 누군가의 생사를 담보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누구도 모욕을 위한 자리에 위치해서는 안된다. 당연한 것이 불편하게 여겨질 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모순을 눈치채길 바란다. 그것이 변화로 가는 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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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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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존버"가 당연한 삶의 태도로 자리잡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일은 쉽지 않다. 오히려 도망칠 용기를 내는 것부터가 별스러운 일로 취급되기 때문일까.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 풍파에 아등바등 매달려 살아가는 우리네 사회에서 가진 것을 내려놓거나 정해진 길 밖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그저 철없고 배부른 소리로 여겨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현실과 상상에서 대다수가 그런 삶을 동경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제법 이른 나이에 부를 축적하고 월급쟁이 노선을 탈피한다고 하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애를 태우는 동시에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일을 그만두는 이들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물어뜯고 깎아내린다. 부럽지만 부러워하고 싶지 않은 걸까. "본 투 비 럭셔리"가 아닌 너와 나의 차이에서 어쩐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눈꼴시려움" 같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걸까.
p.123 꿈 옆에는 자유, 사랑, 평화 같은 말들이 어울린다. 인류가 가슴에 한 번쯤 품었을 거창하고 아름다운 말들, 오랜 세월이 물음표를 지워버린 가치가 담긴 말들 말이다. 물음표가 필요 없는 소중한 가치들로 삶을 채우면 물음표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은 늘 그렇다. 후회 없이 불태우고 후련하게 돌아서고 싶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미련 없이 털어내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옳은 것은 옳다고 소리내어 일어서고 싶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
마음같지 않다. 세상은 냉정하고 나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싫다고 울어제껴도 해는 뜨고 출근을 해서 대체로는 의지 밖의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 잘 시간에 자투리 휴식까지 싹싹 긁어 모아 쏟아붓지 않는 한 자기계발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바쁜 때엔 퇴근해서 숨만 깔딱깔딱 쉬다 정신 차려보니 도로 출근 준비할 시간이었던 날도 허다하다.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매 순간이 자기의심으로 점철되는 마음은 건강하지 않다. 의심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힘이 세다. 순식간에 마음을 좀먹고 잡아늘린 입꼬리에 쥐가 나게 한다. 살다 보면 당장 털고 일어나 등돌려 달아나지 않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평생을 의심해본 적 없는 가치가 부정당할 때, 희망의 따귀를 후려치는 세상에 턱이 울리고 머리가 멍해질 때, 그 때가 바로 도망쳐야하는 순간이다.
p.59 긍정이 무력해지는 순간은 부당함을 마주할 때다. 긍정 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 세상이 긍정의 뺨을 아주 세게 후려치는 순간 말이다.

이따금 "저 이단아들"이 충분히 고통스럽게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해진 길에 순응하며 애써 묻어둔 상상을 벼락같이 던지고도 태평하게 살아가는 게 밉고 미워 저러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신들린 것처럼 아득바득 살아내지 않으면 현대인은 커녕 옳은 사람도 되지 못하는 것처럼 닦아세우는 세상, 모든 감정은 뒤켠에 쑤셔박고 활짝 웃으며 긍정! 행복!을 피워내지 않으면 제 몫을 못 하는, 그저 공사구분도 못 하는 어른답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갓생"은 "미라클 모닝" 만큼이나 멀다. 꿈은 좇아야 할 것이 아니라 기상 알람 소리와 함께 털어내야 할 무언가가 되지 않았나.
p.53 감정을 포장한다는 건 감정에 방부제를 뿌리는 일 같다. 유통기한이 지났으면 썩어야 하는 데 좀처럼 썩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견고히 박제되는 SNS 속 감정의 모양새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p.114 갓생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대단히 효율적인 인간상이 되자고 부추기는 것만 같아서 괜히 싫다. 모르긴 몰라도 신은 이렇게 절박하게 살지는 않을 것 같아서 열심히 사는 게 ‘갓’ ‘캡’ ‘짱’인지 의문이다.

이 책은, 저자 김수민이 세상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쌩쇼"도 해보고, 서러운 날엔 길바닥에서 펑펑 울어도 보고, 겁을 내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진다고 말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러니 "그래도 너는 나보단"과 "다들 그러고 산다"를 애써 뿌리치고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고군분투한 여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말하는, 아등바등 정해진 길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글이 아니꼽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 거짓말이다. 그러나 사는 일이 힘들었다고, 모두가 부러워하고 부모에겐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탄탄대로의 삶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꿈을 찾아 자리한 곳이 생각과는 달랐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나를 믿어달라고 말하는 저자를 미워할 수 없었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부딪혀 얻어낸 곳에서 도망치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의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하기 때문에.
삶은 이어진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틈틈이 숨을 쉬어야 한다. 잊지 말기를,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쉬어가면 좀 어때서.
p.145 원래 옷 갈아입을 땐 잠시 나체다.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이 당장 나오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너무 박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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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가격 - 원자재 시장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흔들었는가
루퍼트 러셀 지음,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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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세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따금 어떤 말을 떠올린다. 말이라고 하기엔 외침에, 외쳤다고 하기엔 호소에 가까웠던 그 말을. "여러분들이 배우고 떠받드는 그 경제법칙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현대 사회의 진리로 자리한 것은 놀라울만큼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정확히는 그것이 영원불멸의 원칙인 것처럼 여겨지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간주된다. 마치 자연스러운 질서인 것처럼, 물이 아래로 흐르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인간이 없는 물을 만들어내고 거대한 물줄기를 솟구치게 했으며 가려진 해로는 달을 띄울 수 없다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망각되는 동시에.
"시장질서"의 신화는 무패의 그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고도 마치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는 양, 순응하고 찬양하면 돌아올 순번에 부의 천당에 합류할 수 있는 양 확산되고 강화되는 신념의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의심스러워진다. 동시에 나의 일상은 얼마나 안락하고 무딘가, 기껏해야 채소 값이 뛰었다는 뉴스 하나만으로 뭘 알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p.59 우리는 아랍의 봄을 선과 악, 자유와 독재, 존엄과 부정부패의 대립을 담은 도덕적인 이야기로 오해했다. 이런 식의 해석은 독재 정권의 경제적 기반(빵의 민주주의)과 독재 정권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 세계 시장의 힘을 감췄다.
p.120 '전장 사망자' 수를 계산해 표를 만들고, 세상이 날로 평화로워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추세선에 그 숫자를 반영한 뒤에도 트라우마는 계속된다. 우리가 계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좀비로 전락한 삶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난민들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수요와 공급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이 원하고 사람으로 인해 공급되고 조달되며 요구된다. 오늘 중동의 흙먼지 날리는 분쟁은 서구의 어느 고층 빌딩 사무실에서 시작될 수 있다. 대화나 합의로 조정될 수 있었던 협상은 또다른 곳에서 조달된 무기로 엎어지고 수백, 수천의 난민을 유발한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무장경비인력의 증가와 그들이 빠져나간 국가의 무너진 경제와 사회 시스템,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금융계, 아침저녁이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무기한 중단된 건설 현장, 가상화폐 채굴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는 투자 전문가 등 수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여기서 당기면 저기서 무너지고 이리 당기면 저 끝으로 나동그라지는 모양새다.
오늘 어느 분야의 주식이 얼마나 오르내렸으며 유가와 양배추 수급 곤란이 무슨 상관인지, 그 어디인지를 따라가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나비효과가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음을 나날이 체감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p.130 자원의 저주는 한 지역의 위기를 세계적인 재난으로 바꿀 수 있다. 자원의 저주라는 장치는 원자재 시장과 국가 권력의 결탁, 손쉽게 벌어들인 돈으로 인해 만연하는 부정부패,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이든 기꺼이 용인하는 사람들을 결합해 혼돈을 증폭한다.
p.157 사실상 돈은 같은 서구권 은행의 다른 계좌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왕복 여행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디지털 공간에서 돈이 춤추듯 움직이는 동안, 산유국들은 무기를 사고 반대 세력을 매수하는 대가로 부를 약탈당했다. 자원의 저주는 이러한 순환 구조에서 비롯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 구조 자체가 바로 자원의 저주였다.


경제 논리는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와 차트로 증명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없다. 분명 사람으로 인해 굴러가고 돌아가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지는 유한성과 취약함, 버는 이가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고 제약회사의 치솟는 주가는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질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너무도 쉽게 무시된다. "사람이 먼저" 라는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착취하고 흔드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들에 동조한다. 마치 초월적인 질서에 순응하면 지복의 부가 주어질 것이라는 양, 허구의 환상에 시달리는 와중에 현실의 고난이나 근원적 해결은 간단히 무시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은 여전히 쓰이지만 더이상 국가-절을 떠나 살 수 있는 개인-중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 빼앗기는 자들은 분열을 바라는 권력에 순응하고 동조한다. 순진하게 목을 내밀고 기다리는 다수와 묵살되는 항의를 타고 넘실넘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오늘도 순항중이다.
p. 144 투기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종교가 발전하면서 만들어낸 게임과 똑같은 논리를 따라야 한다. 두 게임은 모두 지배적 통념에 순응할 때 보상을 내린다. 또 두 게임에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게임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새로운 '진실'을 예상함으로써 부를 얻는다.
p.390 금융인들은 흔돈에서 이익을 얻지만,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사회 구조를 위협할 정도로 흔돈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안전망이 갖춰져 있다면 그들은 비내리는 뉴질랜드의 요새가 아니라 햇빛이 잘 드는 벨에어의 고급 주택에 머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생존 게임이 베벌리힐스 바깥에서 벌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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