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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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작고 사소한(?) 편견 하나를 고백해야겠다. 나는 ‘흑역사’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를 대자면 석달열흘을 화내고도 모자랄 긴 것과 예의상 답할 수 있는 짧은 것까지 다양하겠으나, 여기서는 ‘비극을 흥미로운 무언가로 소비하고 넘어가 잊어버려도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정도가 적당하리라. ’다크 투어‘를 기꺼워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머리속으로 그간 차라리 안 보고 못 본 것으로 넘기고 싶었던 제목들이 스쳐지나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여기서도 그 흔해빠져 지겨운 편견으로 가득한 소리를 하려고... 결론부터 말하면, 짜잔. 기우였습니다. 괜한 걱정을 했어요. 짧지만은 않았던 고민의 시간을 단박에 끝낸, 서문의 문장을 조금 옮겨둔다.


p.10 잊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 'misplaced'는 어떤 대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잠시 찾지 못했을 때 쓰는 단어다. 이 낱말은 잃어버린 대상을 곧바로, 적어도 언젠가는 다시 찾으리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p.13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곳곳의 ‘버려진 장소‘ 를 따라 인간의 어리석음과 극히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거대한 자연의 반발 또는 녹슬고 부서져가는 잔해들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불보듯 뻔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각 장의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소개되는 장소들은 각각 예정된 운명에 의해, 시류를 따라잡지 못하고 도태되어, 시간에 무게에 잠식되거나 영광의 뒤로 밀려나서, 세상이 변했고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에도 마침표가 찍힐 때가 도래했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장소가 되었다. 혹은 그 때 그 곳이 품고 있던 소리와 이야기를 서서히 잃어가는 중이다.


폐허, ‘버려진 장소‘란 무엇인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잠시 주목되어 쓰이다 그 목적을 다하거나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는 바람에 발길이 끊긴 곳인가? 더이상 쓸 수 없게 된 곳인가? 그도 아니라면 잠시 믿어진 ’영원한 영광‘의 후광을 잃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인, 인간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잊혀진 곳인가? 어느 쪽을 택하든, 인공물이든 자연이든, 인간의 역사와 맞닿은 이상 장소에는 이야기가 부여된다. 그러므로 늘 그랬듯이, 이야기에서는 배울 것이 있다.

저항할 수 없거나 그렇다고 여겨지는 흐름은 결국 인간에 의해 촉발되고, 의미를 부여받으며, 붕괴하거나 망각된다. 그것을 역사의 뒤안길이라는 상투어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장소에 이야기가 부여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곳에 머무르고 또 존재했으며 기억했거나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잊혀짐은 끝이 아니라 다만 버려짐, 즉 주의를 벗어나는 것이다. 아무도 그 장소를,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을 때, 잊혀졌다는 사실마저도 잊혀질 때, 비로소 끝이 도래한다.

완전한 망각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망각되고 있음은 일종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원래 상태로, 잊히기 전의 상태로, 잊혀져야했던 이유를 명확히 직시할 수 있으며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p.10 "시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다만 버려질 뿐이다"라는 말처럼, '버림'은 되찾음'이나'돌이킴'의 가능성을 분명히 안고 있다. 끝난다는 것은 죽는 것, 마무리되어 더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버려진 것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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