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심해』**
오래 물어온 동시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안온, 다정, 무해의 삼박자는 영영 이뤄질 수 없는 이상향인가. 이 세계에 만연한 폭력은 영구히 사라질 수 없는, 그저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할 힘인가. 마치, 자연질서처럼.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을 합의된 도덕 이전으로 되돌려 밀어넣는, 이 힘의 질서는 상당한 동력을 요구한다.
침묵, 동조, 모든 반항의 묵살. 마지막으로, 그 안의 존재 모두를 끝없이 제물로 밀어넣기. 끝없이 소모될 것. 그러면서도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또 밀려들어갈 것. 다수가 동조하는 모순은 스스로의 모순을 부정, 아니, 주장할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듯, 현실의 입체감을 모조리 거세해버리는 힘으로.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그러므로, 해야 하는 일, 지켜야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포기해버리면 그것은 다른 이에게 맡겨지게 된다. 더 약하고 더 순응하는 사람에게, 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에게. 저항도 마찬가지다. 침묵의 대가는 폭력이 되어 떠넘겨진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고여 썩어갈 때까지.
p.85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걸 만들던 직원은 엄지만 남기고 손가락이 몽땅 잘려 나갔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근무가 진행된단 말인가? 남이 다치든 말든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철저하게 진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핏물이 가득한 제품을 포장하고 출하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설정이랄지, 배경이랄지. 뭐든 가장 중요한 소재를 알려주고 시작한다는 것은 심상찮은 떠벌림이 아닌 이상 그보다 더 중요하게, 절박하게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하고 싶은'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이 작품도 그렇다.
작가는 상상을 빌려 묻는다. 현대사회는 이 "상상"을 상상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이것은 현실의 모사다. 아니, 선 너머의 것이다. 지하실, 평범한 일상을 살짝 비껴선 곳에 버젓이 놓인 것, 인식하지 않으니, 침묵하니 존재하지 않는 것. 죽음이 수단이 되고 몸이 돈이 되는 것.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시도는 시도로 남았다. 영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고, 하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끊임없이 폭력에 시달리고 마모되어 깎여나간 탓에. 정말 그러한가. 작가는 남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넘겼다. 떠난 자를 보내는 최소한의 의식, 그가 돌아서 독자를 마주한다. 보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은 물음은, 여전히 독자의 것이다. 산 자에게는 할 일이 있으므로, 살아남겨진 세계의 것이므로.
p.149 죽음을 죽음 그 자체로 다루는 일. 죽음은 부가 가치를 가진 재산이 되어선 안 된다. 그 누구도 그걸 누릴 자격이 없다. 죽음은 오롯이 한 사람의 삶이 종료되었다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산 사람은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되니까. 죽음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자의 이익을 탐하는 순간 망자는 마지막 휴식마저 취할 수 없게 되니까.
*도서제공: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