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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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란 과연 무엇을 이르는가? 있지만 없는 존재. 숨처럼 공기처럼 그 존재가 희미해 말해도 들리지 않고, 있어도 없는 듯이 여겨지는 탓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 이름 없는 배경이 되는 존재. 주체가 아닌 배경, 일상의 한 조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

나이 든 여자. 수수한 망토를 두른 작달막한 여자, 휠체어를 탄 여성 노인과 그 보호자, 수수한 중년 여성. 언뜻 보고도 그들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는 이는 장담컨대, 아무도 없다. 지극히 '평범하고 무해해' 보이는 여자들이기 때문에. 아줌마, 할머니. 알아봤자 뭘 얼마나 알겠어요? 해봤자 뭘 하겠어요?

p.21 그녀는 얼굴 앞에 태블릿을 들어 올렸지만 이 멍청한 기계는 인식할 수 없다며 잠금 해제를 거절했다. 주디스는 나이 든 여자로서 겪곤 하는 수모를 또 한 번 당한 것 같아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현대의 세상은 주디스를 마치 완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대했고 망할 컴퓨터조차 그녀가 자기 자신과 충분히 닮아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했다.

p.73 오랫동안 그녀는 가정주부, 아내, 그리고 엄마로 살았다. 모두 훌륭한 역할이었고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축복받은 것은 행운이라고 스스로 되뇌어 왔지만, 사실 그녀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정의된 것임을 계속해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엄마, 〈신부〉의 부인, 그리고 〈가정〉의 주부였다.


대작이든 기념비적 흥행작이든 간에, 잘 알려진 수많은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의 대부분은 현실을 반영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신성한' 임무에 대체로 성실하게 임해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격 드센 기지배, 허영 많은 아가씨들이 '철'이 들어 '정상가정'의 부품이 되거나, 어디서나 흔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없는 셈 쳐지는 데 이골이 난 나머지 그들 자신조차 이상한 줄을 모르고 살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온갖 여자들을 이름도 없이 냅다 '아줌마', '할머니'의 틀에 가둬놓는 일에.

그러므로 까탈스럽고 해괴한 태도는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는 동시에 그들의 고유한 속성으로 낙인찍히는 그야말로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현실에서도, 창작물에서도, 그 안의 여성들에게서도.

p.229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이름도, 방향성도 없이 떠도는 느낌이었다. (...) 자신의 인생에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였기에, 그녀는 현재 아는 유일한 진실에 매달렸다. 자신은 가정주부이며, 이 상황에서 자신이 정신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까지 존재했던 주부들 중 최고의 주부가 되는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잔혹한 사회 고발 같겠지만, 이건 의외로 꽤나 영국식 정통파 탐정소설이다. 달가워하지는 않아도 일단 말을 걸면 대답은 하는 떨떠름 매너와 차와 술은 거절하는 법이 없는 '점잖은' 사람들. 갈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사건에 기꺼이 덤벼드는, 매력적이고 선하면서 괴짜인 주인공. 그의 비범한 관찰력과 추리력, 은둔을 좋아하는 성격까지.

차분한가 하면 짓궂은 구석이 있고, 정의감 30에 흥미 70 정도의 희한한 동기로 종횡무진한다. 숨기려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두뇌싸움, 사랑스럽고 능청맞은 동시에 때로는 거짓말처럼 대담해지는 동료들에 폭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툭, 찔러주는 섬뜩함 한 스푼. 빠진 것 없이 꼭꼭 챙겨담은 뉴클래식이라니. 마카롱김치찌개 같구나... 근데 이제 희한하게 맛있는...

p.33 주디스는 천성적인 낙천주의자였다. 이런 본성은 그녀를 정의하는 주된 특징이었지만, 그녀는 또한 최대한 모든 것에 솔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말로가 여전히 활기차긴 하지만, 영국의 다른 모든 마을처럼 지난 10년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사람들의 선함은 그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주디스가 중심가 끝에 다다랐을 때 자전거를 벽에 기대 놓으면서 스스로에게 상기시킨 사실이었다.

p.59 벡스가 벽장을 나오자 왠지 난감하고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쪽이 벽장에 숨은 상태로 처음 만난 중산층 여성 둘이 그 만남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에티켓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있지만 없는, 말해도 들리지 않고, 있어도 없는 존재가 빈틈을 찌르고 판세를 뒤집는 쾌감을 더한, 그야말로 이제 와서 만난 게 억울할 정도로 유쾌한 탐정소설이다. 거기에 섬뜩한 뒷맛 한 스푼까지. 시작부터 차기작을 기다리게 하는, 우아하고 유쾌한데다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평에 손색이 없다.

첫 장편으로 평화로운 마을을 단박에 대형사건의 늪에 빠트렸으니, 다음 목적지를 기대할 수밖에. 웃자니 맵고, 울자니 웃긴 구석이 있는 젠틀하고 괴팍한 영국식 유머와 함께, 다음 탐정의 등장을 기다린다. 다음엔 어느 동네의 범인과 괴짜가 온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게 될까.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드는 독자를 어떻게 따돌리고 도망칠지.

p.13 만일 누군가가 바로 그 순간 강가에 있었다면, 그리고 저택을 올려다봤다면, 아주 작고 풍만한 몸집에 마구 헝클어진 흰머리를 한 70대 후반의 여성이 맨몸에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망토를 두르고 거실 창 앞에 선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여러 면에서 주디스는 슈퍼히어로가 맞았다. 아직 그녀 자신만 모를 뿐이었다.

p.245 「우린 안 보여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말한 그대로예요. 우리는 〈늙은〉 여자들이잖아요.」 「마흔 넘은 여자들은 아무도 신경 안써요.」 (...) 「사실 우리가 아니라 나머지 세상이 문제인 거예요. 사회는 나를 그냥 작고 늙은 여자로만 생각하죠. 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보이지 않아요. 그걸 이용하면 돼요.」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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