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그물코 스타킹 모아드림 기획시선 122
김미연 지음 / 모아드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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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언어의 유희이고 그래서 시인은 언어의 유희를 만드는 창조자라고 생각해왔다. 언젠가 난해함으로 며칠을 수수께끼를 풀듯 반복하고 또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시란 때로는 포근하게도 다가오고, 때로는 풀어야 하는 암호로 다가도 온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집 한권을 읽었다. 시인의 말로 시작하는 곳에서 부터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 있다.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을 애를 낳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하지 않는 그래서 독자에게 쓸려가는 것을 낳아 기르겠다고 표현하는가 보다.

언어의 유희가 곳곳에서 살아난다. 내가 다니는 직장과 항문에 연결된 직장이 같이 놀아나고, 돈과 똥이 또 같이 놀아난다. 직장에 임금(賃金)만을 위해 용쓰는 못난 임금도 있다.

산골 정씨가 쌈이나 한번 싸 먹으라고 보내준 배추가 젖살 잘 오른 포동한 아기로 묘사되고 짚으로 잘 묶어서 부도탑으로 거듭난다. 시인이 고르는 언어가 시상의 나래를 편다.

시인에게 여자란 새끼, 꽃, 영계, S라인, 아내, 밭, 지는 여자, 폐계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며느리 보고 다그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시를 많이 읽지 못한 나이기에 산문형식을 빌어쓴 몇 편의 시는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산토끼 전화번호와 지독한 벌레에서 정확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시도 산문형식을 빌어쓸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지금은 폐교가 된 어느 초등학교 연극을 보고 마을 전체를 한 권의 춘향전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지는 해를 밧데리 다 되가는 해로 묘사하기도 한다. 시멘트 바닥에 비치는 하현달이 땅바닥에 방치된 핏물 빠진 달이 되기도 한다.

시인에게는 아침이 오는 것조차도 지난 밤 힘껏 잠을 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잠은 휴식이 아니라 무임금의 노동이어야 하고, 힘껏 잠을 잔 사람들은 다 밤을 아침으로 지구를 옮기는 짐꾼이었단다. 그리고 잠근다에서 잠이란 용어를 따왔기 때문에 일어나면 열쇠를 동원해 풀어야 한단다.

내가 시인이 된 것처럼 큰 소리로 읽어 보기도 했고, 나도 시를 한번 써볼까 하는 것도 잠시, 내주제에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상상이지만 시인이 되어 마음껏 느껴본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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