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도 산하작은아이들 45
이자벨 미노스 마르틴스 글, 야라 코누 그림, 최혜기 옮김 / 산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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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파도> 이자벨 미노스 마르틴스 글, 야라 코누 그림/ 36/ 11,000/ 산하 / 2014 원제 UMA ONDA PEQUEININ

 

책 바다에서 작은 소년과 파닥파닥 물장구

 

소년이 물속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작은 소년은 조심스럽다. 발목까지 오는 바닷가에 서서 발로 물을 튕기면서 이게 바다라며 논다. 다음 장면에서 소년은 헤엄을 치고 있다. 느닷없이 그 작은 소년은 이 책이 바다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때 독자에게 소년을 따라 바다의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모서리까지 헤엄치라고 말을 건넨다. 어느 순간 작은 소년은 새로운 걸 찾겠다며 깊은 물속으로 내려간다. 소년이 책 바다 깊은 곳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책을 덮어버리겠다 하고, 파도타기도 싫다고 하고,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다며 화를 내고 바다를 멀리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소년이 겁내지 않고 물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작가는 독자에게 책을 읽지 말고 온몸으로 느끼라고 요청한다. 글자가 한 줄로 배열되어 있는 책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그림책 전체에 걸쳐서 바다에 줄을 그어놓았다. 책인지 바다인지 혼돈스러운 파랑색 사각 공간에서 헤엄치라고 주문한다. , 소년이 물장구치면 바닷물이 책 밖으로 튕겨 나오니까 물에 젖게 된다고 귀띔을 해준다. 이때 독자는 책을 코끝에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짜디짠 바닷물 냄새를 맡을 준비도 한다. 독자의 역할은 경험자로서 끝나지 않는다. 책바다에서 무서운 걸 보고 두려워하는 소년을 위해 책속으로 들어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라고 이끈다. 독자가 겁을 내는 소년처럼 파닥파닥 물장구치지 않고 머리부터 물속으로 넣으면서 뛰어들 때 작가에게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받는다. 용감한 독자 덕분에 소년은 이제 바다 위만이 아니라 깊숙한 공간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된다. 독자는 소년을 도와주는 존재다.

손으로 만지면서 오돌도돌한 질감을 느껴보게 하는 책이 아니다. 글로 설명하는 방법도 아니다.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독자에게 알려주는 메타픽션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책을 읽고 있는 독자와 대화하면서 상상력을 이용하여 차가운 물, 짠 바닷물의 맛, 바다 냄새를 맡으라고 한다. 어두컴컴한 책바다 속으로 들어가길 겁내는 소년과 함께 풍덩 들어가게 만든다. 수많은 밑줄이 그어진 바다모습 책에서 소년이 수영하며 만드는 물결은 그림이자 이라는 글자가 된다. 얼마나 재미있게 볼지는 결정권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저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괄호 속에 보여준 혼잣말도 듣고, 안내받은 대로 이야기 처음과 후반부 그림의 다른 점을 찾아보고 싶은 사람은 책 바다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다.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은 그림책 작가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미국 그림책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이 <작은집 이야기>에서 글의 배열을 그림으로 만든 작품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독자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고 싶어한다. 포르투갈 작가 이자벨 미노스 마르틴스가 글을 쓰고, 브라질 작가 아라 코누가 그림을 그렸다. 이자벨은 이야기 창작을 위해 젊은 화가들과 출판사를 설립했다. 의기투합해서 어떤 작품을 또 만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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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 네 이름 -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너에게
구스티 지음, 서애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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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 네 이름> 구스티 글그림/ 148/ 16,800/ 문학동네 / 2018 원제 MALLKO Y PAPA

더 많이 내줄수록, 더 많이 받아


스페인 일러스트레터이자 애니매이터 구스티의 <말코, 네 이름>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 말코와 함께 한 시간을 담은 그림책이자 에세이다. 작가에게 블로냐 도서전 라가치 특별상 대상을 안겨주었다. 구스티는 말코가 태어났을 때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한다.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라는 문구를 한 화면 가득 쓰며 갈등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몇 해 전, 구스티는 신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신은 그의 간절한 바람에 응답하고, 보통 아이보다 두 배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말코를 보낸다. 구스티에게 말코는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자기의 성을 파괴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작가는 아이 낳는 일을 두고 포토샵으로 되살리거나, 망친 그림처럼 찢거나 지울 수 없다고 속상해한다.


후회하는 구스티와 달리 부인이나 큰 아들은 의젓하다. 부인 아네는 있는 그대로 나올 권리가 아이에게 있다는 걸 느,끼고 임신 중 양수검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형 테오는 얼굴이 초록색이든 빨간색이든아니면 개미 더듬이처럼 기다란 귀를 가졌다 해도 아무 상관없이 내 동생이 최고야라고 말한다. 구스티는 테오에게서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을 본다. 아내와 큰 아들에게 교훈을 얻은 구스티는 이제 변화하면서 말코의 세상에 뛰어든다. 구스티는 아이에게 택시, 응급차, , 트레일러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종일 옆에 붙어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도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노는데 익숙하다. 말코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건 어울리고 싶다는 신호라는 걸 알아챈다. 그는 말코의 특질과 성격을 계속 해서 배우고, 탐색한다. 그 결과 말코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랑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배운다. 좋아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매력을 느끼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비록 아무도 말코의 빛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구스티는 볼 수 있다.


말코를 돌보는 과정은 너무나도 특별하여 한 가지 방법으로 보여줄 수 없다. 구스티는 낙서로 끄적거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오려 붙이고 연결해서 그림을 그린다. 만화컷으로 말코와 보내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총천연색 펜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한다. 아이와 종일 노느라 차분하게 그릴 시간이 없어서인지 구스티의 선은 매번 삐뚤거린다. 인위적으로 다듬으려는 시도 없이 자연스럽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걸 구스티는 이제 알고 있다. 작가는 말코와 노는 장면을 작은 만화컷으로 조각내어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놀면서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우므로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놀이를 하는 모습이 애니메이션처럼 다가와 독자를 사랑의 감정에 녹아들게 한다.



작품을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구스티의 성장기로 볼 수도 있다. 조건 없는, 티끌 한 점 없는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었던 구스티는 원하는 바를 얻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어진 걸 기꺼이 받는다는 뜻이라고 배운 내용을 독자에게도 전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질병을 가진 게 아니라 선물을 작게 받은 것뿐이라고 말한다. ‘정상이란 무슨 뜻일까요라는 구스티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분에게도 추천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봐도 좋겠다. 장애인이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더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장애를 가진 부모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배우면서 성장하고 싶은 어른이 읽어도 좋다. 더 많이 내줄수록 더 많이 받는 심장의 마법을 엿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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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가 빠졌어!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3
안토니오 오르투뇨 지음, 플라비아 소리야 그림, 유아가다 옮김 / 지양어린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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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가 빠졌어> 안토니오 오르투뇨 글, 플라비아 소리야 그림/48쪽/11,000원/지양어린이/2017 원제 DIENTES

앞니 빠진 아이의 두려움을 봐주세요.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일곱 살 나탈리아의 앞니가 빠졌다. 피 흘리는 나탈리아를 보고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의사 선생님은 치료해 주면서 새 이빨이 곧 나온다고 아이를 위로해 준다. 한편, 반에서 제일 덩치 큰 우고는 나탈리아의 이빨 사이에 난 구멍을 볼 때마다 ‘앞니 빠진 덜렁이’라고 놀린다. 속상한 나탈리아는 자기 집 토끼 파스를 시켜 손을 깨물게 하겠다고 위협을 하지만 우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새 이빨이 얼마나 지나야 나오는지 묻는 나탈리아에게, 아빠는 사람의 몸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어준다. 아빠는 모든 사람의 피부 아래에 해골이 있고, 다른 아이들도 너처럼 이가 빠진다고 설명한다. 안심하는 나탈리아는 종이에 해골 그림을 그린 후, 눈이 있어야 하는 동그란 검은 구멍에 우고라는 이름을 적는다. 다음 날 우고는 책가방에서 해골 그림을 발견하는데 이제 어떻게 될까요?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앞니가 빠질 때만이 아니라 뾰족한 주삿바늘이나 매운 고추를 볼 때도 무섭다. 놀리는 친구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놀란 토끼처럼 아이의 눈은 빨개지고 귀가 솟구친다. 빳빳해진 양쪽 귀 색깔도 다르다. 작가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어떻게 주위 환경을 보는지를 알려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른의 머리가 반쯤 가려있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도 어깨 위부터 보이지 않는다. 빨간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 얼굴로 화면이 가득 채워진다. 아이는 강아지 다리보다 작은 크기로 나온다. 이빨 빠지는 일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른 옆에서 아이는 점점 작아진다. 아이가 공포를 느낄 때 개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설명하기 시작하자, 아이는 두려움의 원인을 알아낸다. 이때 개의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레비 필폴드의 <블랙독>에서 두려워할 때마다 덩치가 커지고 별거 아니라는 걸 알면서 다시 작아지는 개의 모습과 비교해 봐도 재미있겠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신체 변화, 심리적인 두려움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빨 빠진 아이들의 심정이 표정에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빨이 빠질 때쯤 나이의 아이들이나 부모가 보면 좋겠다. 밖으로 보이지 않는 이빨의 형태도 모눈종이에 옮기고, 사람의 뼈, 인체 장기나 토끼 뼈를 그려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울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떨어지는 눈물과 손바닥을 펼친 장면을 통해서 독자는 아이의 심리적인 상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아이들마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다르다는 점도 알려준다. 나탈리아는 빠진 이빨 때문에 두렵지만 우고는 해골을 보고 무서워한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면서 물어볼 때 어른이 관심을 두지 않는 장면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눈은 불투명 흰색으로 처리하여 아이를 보지 않는다는 걸 암시한다. 무섭다고 우는 우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선생님도 같은 화면에 등장시켜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을 보여준다.

나라마다 젖니가 빠질 때 전해지는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봐도 재미있겠다. 멕시코에서는 빠진 이를 베개 밑에 숨겨놓고 생쥐가 몰래 가져간다고 한다. 화면마다 구석구석 낙서처럼 작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찬찬히 볼 때마다 새로운 그림을 만나게 된다. 독자가 작품에서 손을 떼지 않고 오랫동안 간직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림책 속에서 그림이 계속 이어져서 여러 번 봐도 새롭다. 면지에서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장면 역시 개성 있다. 멕시코 출신 안토니오 오르튜는 글 작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한다. <머리 찾는 사람>은 2006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 머리 없는 사람의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그림책에서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소설가로서의 작가의 상상력이 반영되었다.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그림 작가 플라비아 소리야도 멕시코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출판사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하고 있다. 작품 속 머리 없는 사람의 모습은 어른의 무관심이나 아이의 심리적 불안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두 작가가 짝을 이루어서 조화롭게 의미를 부여했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후속 콤비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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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의 결투
마누엘 마르솔 지음, 박선영 옮김 / 로그프레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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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양쪽으로  펼치면 검붉은 황야가 펼쳐진다. 가운데로 강물이 흐른다. 왼쪽에 뿔 달린 버팔로 해골이 놓여 있다. 강가에는 덤불이 자라고 있다. 왼쪽 협곡 가장자리는 바코드처럼 보이는 선들이 수직으로 그려져있다. 검은색 앞면지를 넘기면 왼쪽 페이지에 백주의 결투라고 적힌 제목이 나온다. 오른쪽 밝은 하늘에 커다랗고 붉은 해가 떠 있다. 밝은 낮에 결투가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선인장과 덤불이 굴러다니고,  뱀이 버팔로 해골을 칭칭 감고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웨스턴 부츠를 신은 남자의 발이 등장한다. 미국 서부 시대에 볼 수 있는 롱부츠다. 활을 당기고 있는 붉은 피부를 가진 남자의 팔이 다음 페이지에 나오고, 권총을 든 손도 클로즈업 돼서 나온다. 인디언의 얼굴과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가 화면 가득 채운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이제 결투가 벌어지려나 싶은데 난데없이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다음으로 ‘잠깐 이건 불공평해’라는 글자가 보인다. 처음 글자가 나왔는데,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 머리 위에 적혀 있다. 쏘려고 총을 흔드는데 총부리 위에 앉아 있던 청둥오리가 날아가며 똥을 싸고 둘의 결투는 중단된다. 이후 둘은 선인장인지, 하늘을 나는 쟁기인지, 포크인지 모를 구름을 보고, 가운데로 흐르는 강으로 모여드는 자기말들을 붙잡는다. 이들은 독사와 버펄로의 방해를 받으면서 결투를 하지 못한다. 인디언과 총잡이는 낮 동안에 결투를 할 수 있을까?
덤불은 붉은 발을 가진 남자의 다리에 달라 붙어 있고. 그 남자가 서 있는 왼쪽 땅쪽에 버팔로 해골이 놓여있다. 이 땅의 주인은 인디안이라는 걸 알려주는 신호이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의 허리에는 버팔로 무늬가 그려진 총집이 걸쳐있다. 그 남자는 인디언의 땅에 들어와 버팔로를 잡고 물품을 만들어 쓰는 자라고 알려준다. 그는 활을 들고 있는 인디언을 향해 총을 들고 겨누면서도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인디언은 오히려 활시위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며 “이제 됐어?”라고 묻는다. 인디언이 하늘 위 구름을 보며 선인장처럼 생겼다라고 감탄을 할 때, 카우보이모자 쓴 자는 “내 눈엔 포크 같은데”라면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물리적인 공간만 차지 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이름도 바꾸고 싶어하는 속셈을 드러낸다. 미국과 인디언은 곳곳에서 부딪혔다.  백인이 식민지를 만들면서 인디언은 사라지고 소멸돼 갔다. 작가는 만일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며  과거를 소환한다. 미국인이 강을 건너가 인디언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학살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질문이다. 지금과 다르게 미국인과 인디언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 마누엘 마르솔이 상상한 세계를 보자. 그들의 말은 각각 주인에게 깃털 머리장식과 카우보이 모자를 코를 맞댄 후 오른쪽으로 함께 가게 했다. 두 남자도 말을 따라했다. 카우보이는  강 왼쪽에서 인디언을 공격하려던 뱀을 쏘아죽이고, 버팔로의 공격으로 위험해진 남자는 인디언의 품에 안겼다.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자리가 바뀌고, 낮 대신 어둠이 깔렸다. 백주의 결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앗다. 카우보이는 모자를 벗어놓고 인디언 옆에 앉아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아. 하늘을 날던 선인장 말이야”라고 한다. 그는 인디언의 문화를 이해하고  귀를 기울인다. 문명화된 사람들의 포크가 아닌 인디언의 방식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백주의 결투는 중지되고 검은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처럼 THE END라는 글자가 보이고 화살은 오른쪽으로 권총은 왼쪽을 향한다. 더 이상 그들은 백주의 결투를 벌이지 않고 끝내버렸다. 책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엔딩 크레디트처럼 출연진, 촬영장소, 게스트와 함께 얽힌 에피소드도 보여준다. 곰 두 마리가 등장하고 강 왼쪽에 살던 인디언과 강 오른쪽의 카우보이는 함께 피했다.  둘다 강 오른쪽에 있는 오두막의 지붕위에 나란히 있다. 그 둘이 앞으로 지내는지를 미래를 보여준다. 시작처럼 뒷면지는 검정색으로 마무리했다. 결투 없던 시절로 돌아갔다.
스페인 그림책 작가 마누엘 마르솔은 허멘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보고 영감을 받아 <아합과 흰 고래>로 데뷔했다. 카우보이가 인디언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는 설정은 <<모비 딕>과 비슷하다. 영국인이 몰살한 인디언 부족 피쿼드 족에서 이름 따온  ‘피쿼드 호’를 항해하던 이슈메일은 야만인으로 생각하던 퀴퀘그와 같이 지내면서 우정을 나눈다. 마르솔은 한쪽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을 인디언과 카우보이를 통해 구현했다. 작가는 책 제목을 영화 <백주의 결투>에서 따왔다. 작가의 영상작업 경험을 그림책에 적용했다. 등장인물이나 소재를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발끝, 손, 팔, 머리와 같은 식으로 클로즈업하고 영화처럼 만들었다. 인디언 전쟁 역사에 관심 있는 이에게 추천한다. 아직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비 딕>을 읽은 독자라면 마누엘 마르솔이 허먼 멜빌처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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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가 새를 잃어버렸대! 상상 그림책 학교 22
이자벨 아르스노 지음, 엄혜숙 옮김 / 상상스쿨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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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가 새를 잃어버렸대!> 이자벨 아르스노 글그림/44쪽/12,000원/상상스쿨/2018 원제 COOLETTE’S LOST PET

'잃어버린 새를 찾으면서 친구를 만드는 아이들

노란색 옷을 입은 꼬마 소녀 콜레트는 집집마다 높은 담장으로 이루어진 동네로 이사를 왔다. 콜레트는 동물을 기르고 싶다고 조르지만, 엄마는 안 된다며 나가서 새 친구들을 찾아보라고 한다. “에이”하고 투덜거리는 콜레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잔뜩 화난 콜레트는 ‘깨지기 쉬움’이라고 적힌 빈 종이 박스를 발로 힘껏 걷어 찬다. 담장 밖으로 넘어간 박스는 날아가는 새를 깜짝 놀라게 한다. 커다란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간 콜레트는 “너, 뭐하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망설이다가 기르던 동물을 잃어버렸다고 꾸며낸다.




콜레트와 새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된 아이들은 그 동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달라고 한다. 콜레트는 앵무새의 모습을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아이들은 새를 찾아주겠다며 동네를 다니며 다른 친구를 한 명씩 더 불러낸다. 점점 무리가 늘어나 아이들은 7명까지 된다. 콜레트는 친구를 만들 때마다 앵무새의 색깔이나 이름, 몸크기를 하나씩 추가해 나간다. 콜레트의 상상 속에서 그 앵무새는 온 세상을 여행하며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친구로 변신한다.



그때 “콜레트! 저녁 먹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귀를 귀울이고 있던 7명의 친구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는데, 콜레트는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낯선 동네에서 살게 된 콜레트에게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반복해서 “안 돼”라는 말을 하는 존재다. 커다란 대문을 열고 나가기 두려워했던 콜레트가 동네 아이들을 만나서 마음의 문을 열 때마다 바깥에서 노랑색과 하늘색을 발견한다. 흑백으로만 이루어졌던 공간에 노랑색 우체통, 노랑색 물뿌리개, 파랑색 나뭇잎이 차례로 등장한다. 콜레트의 노랑색 옷과 파랑색 앵무새에게 있던 색깔이다. 콜레트와 아이들은 서로의 말을 듣고 ‘멋진 생각’ 또는 ‘그림을 보면 놀랄 걸’과 같은 대화를 하며 감탄한다. 엄마의 반응과는 정반대다. 콜레트는 작품에서 얼굴도 나오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게 ‘깨지기 쉬움’이라는 박스 집어들려고 했다. 그때 친구들은 콜레트의 이야기를 믿고 더 듣고 싶다고 말을 건다. 이제 콜레트는 집 담장 구석에 수북이 쌓인 빈 박스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골목길에서 당당하게 친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깨지김 쉬움이라는 엄마의 안전장치가 콜레트에게 더 이상 필요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을 둔 엄마가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높은 담장 안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상상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아이는 ‘안 돼’라는 말 대신 자기 이야기를 듣고 호응, 공감, 감탄해주기를 원한다. 콜레트의 친구들이 믿어줄 때 아이는 앞부분에서 작은 크기로 나왔던 앵무새를 담장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들었다. 이처럼 콜레트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고 자란다.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도 같이 흥겹게 상상놀이를 해보면 좋겠다. 앞뒤 속표지에 동네의 집 담장으로 구분되어 나와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대문을 열면서친구를 만난 장면을 떠올려 보자. 노란색 콜레트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다른 친구의 집이 있는지 부모와 아이가 같이 찾아보면 즐거운 놀이가 될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로 말을 걸어도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엄마와 아이가 같이 알게 되지 않을까.



노랑색과 파랑색으로 꾸며진 정글 속에서 나무줄기를 타고 놀기 시작하자, 드디어 콜레트는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던 노랑색후드를 벗어버린다. 노랑색과 파란색이 새롭게 등장하는 화면마다 집중해서 본다면 엄마는 아이 내면의 변화를 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느낄 작품이다.



이자벨 아르스노는 흑백톤으로 간결하게 사용하고고 두 세개의 색을 최소한으로 배치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비평가에도 호평을 받지만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다. 아이들이라면 만들어낸 이야기를 진짜처럼 말하면서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부모의 경우 선입관에 치우쳐 아이가 볼 그림책을 선별하는 건 아닐까. 부모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아이손에 이 작품이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 때문에 부모와 아이 사이에 거리가 있는걸까 스스로 판단의 기준을 점검해보면서 읽어도 좋겠다. 작가의 다른 작품 <내 동생 버니지아 울프>, <거미 엄마,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 <유리는 여기에 있어>, 뉴욕 타임스 베스트그림책으로 선정된 <제인 에어와 여우>을 나란히 놓고 이자벨 아르스노의 매력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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