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결투
마누엘 마르솔 지음, 박선영 옮김 / 로그프레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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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를 양쪽으로  펼치면 검붉은 황야가 펼쳐진다. 가운데로 강물이 흐른다. 왼쪽에 뿔 달린 버팔로 해골이 놓여 있다. 강가에는 덤불이 자라고 있다. 왼쪽 협곡 가장자리는 바코드처럼 보이는 선들이 수직으로 그려져있다. 검은색 앞면지를 넘기면 왼쪽 페이지에 백주의 결투라고 적힌 제목이 나온다. 오른쪽 밝은 하늘에 커다랗고 붉은 해가 떠 있다. 밝은 낮에 결투가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선인장과 덤불이 굴러다니고,  뱀이 버팔로 해골을 칭칭 감고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웨스턴 부츠를 신은 남자의 발이 등장한다. 미국 서부 시대에 볼 수 있는 롱부츠다. 활을 당기고 있는 붉은 피부를 가진 남자의 팔이 다음 페이지에 나오고, 권총을 든 손도 클로즈업 돼서 나온다. 인디언의 얼굴과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가 화면 가득 채운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이제 결투가 벌어지려나 싶은데 난데없이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다음으로 ‘잠깐 이건 불공평해’라는 글자가 보인다. 처음 글자가 나왔는데,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 머리 위에 적혀 있다. 쏘려고 총을 흔드는데 총부리 위에 앉아 있던 청둥오리가 날아가며 똥을 싸고 둘의 결투는 중단된다. 이후 둘은 선인장인지, 하늘을 나는 쟁기인지, 포크인지 모를 구름을 보고, 가운데로 흐르는 강으로 모여드는 자기말들을 붙잡는다. 이들은 독사와 버펄로의 방해를 받으면서 결투를 하지 못한다. 인디언과 총잡이는 낮 동안에 결투를 할 수 있을까?
덤불은 붉은 발을 가진 남자의 다리에 달라 붙어 있고. 그 남자가 서 있는 왼쪽 땅쪽에 버팔로 해골이 놓여있다. 이 땅의 주인은 인디안이라는 걸 알려주는 신호이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의 허리에는 버팔로 무늬가 그려진 총집이 걸쳐있다. 그 남자는 인디언의 땅에 들어와 버팔로를 잡고 물품을 만들어 쓰는 자라고 알려준다. 그는 활을 들고 있는 인디언을 향해 총을 들고 겨누면서도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인디언은 오히려 활시위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며 “이제 됐어?”라고 묻는다. 인디언이 하늘 위 구름을 보며 선인장처럼 생겼다라고 감탄을 할 때, 카우보이모자 쓴 자는 “내 눈엔 포크 같은데”라면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물리적인 공간만 차지 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이름도 바꾸고 싶어하는 속셈을 드러낸다. 미국과 인디언은 곳곳에서 부딪혔다.  백인이 식민지를 만들면서 인디언은 사라지고 소멸돼 갔다. 작가는 만일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며  과거를 소환한다. 미국인이 강을 건너가 인디언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학살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질문이다. 지금과 다르게 미국인과 인디언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 마누엘 마르솔이 상상한 세계를 보자. 그들의 말은 각각 주인에게 깃털 머리장식과 카우보이 모자를 코를 맞댄 후 오른쪽으로 함께 가게 했다. 두 남자도 말을 따라했다. 카우보이는  강 왼쪽에서 인디언을 공격하려던 뱀을 쏘아죽이고, 버팔로의 공격으로 위험해진 남자는 인디언의 품에 안겼다.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자리가 바뀌고, 낮 대신 어둠이 깔렸다. 백주의 결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앗다. 카우보이는 모자를 벗어놓고 인디언 옆에 앉아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아. 하늘을 날던 선인장 말이야”라고 한다. 그는 인디언의 문화를 이해하고  귀를 기울인다. 문명화된 사람들의 포크가 아닌 인디언의 방식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백주의 결투는 중지되고 검은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처럼 THE END라는 글자가 보이고 화살은 오른쪽으로 권총은 왼쪽을 향한다. 더 이상 그들은 백주의 결투를 벌이지 않고 끝내버렸다. 책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엔딩 크레디트처럼 출연진, 촬영장소, 게스트와 함께 얽힌 에피소드도 보여준다. 곰 두 마리가 등장하고 강 왼쪽에 살던 인디언과 강 오른쪽의 카우보이는 함께 피했다.  둘다 강 오른쪽에 있는 오두막의 지붕위에 나란히 있다. 그 둘이 앞으로 지내는지를 미래를 보여준다. 시작처럼 뒷면지는 검정색으로 마무리했다. 결투 없던 시절로 돌아갔다.
스페인 그림책 작가 마누엘 마르솔은 허멘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보고 영감을 받아 <아합과 흰 고래>로 데뷔했다. 카우보이가 인디언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는 설정은 <<모비 딕>과 비슷하다. 영국인이 몰살한 인디언 부족 피쿼드 족에서 이름 따온  ‘피쿼드 호’를 항해하던 이슈메일은 야만인으로 생각하던 퀴퀘그와 같이 지내면서 우정을 나눈다. 마르솔은 한쪽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을 인디언과 카우보이를 통해 구현했다. 작가는 책 제목을 영화 <백주의 결투>에서 따왔다. 작가의 영상작업 경험을 그림책에 적용했다. 등장인물이나 소재를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발끝, 손, 팔, 머리와 같은 식으로 클로즈업하고 영화처럼 만들었다. 인디언 전쟁 역사에 관심 있는 이에게 추천한다. 아직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비 딕>을 읽은 독자라면 마누엘 마르솔이 허먼 멜빌처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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