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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이기호의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제목만 보고는 추리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기호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았지만 평이 좋은 것을 보고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펼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것은 단편이 너무도 많은 것들을 압축하고 있어서 '상징'적인 것들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다 따라가고 난 뒤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의미를 찾기가 조금 막막할 때가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호의 소설은 다른 여느 단편들과는 달랐다. 일단은 '인물'과 '상황'들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술술 읽혔고, 그 인물들이 어쩐 일인지 잘 잊히지가 않았다.
'행정동'에서는 '행정동 건물'에서 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졸업을 한 뒤,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한 남자가 '비정규직'인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오고, 남들보다 늦게까지 일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카드를 들고 오지 않은 비정규직 여성을 보게 되고, 그 여성을 모르는 척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적부에 모든 사적이며 역사적인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는 학적부를 만들어 나간다. 이곳에서도 그의 무심함과 일상성이, 그 행정동 건물에서는 당연한 일인듯 여겨지고, 그것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 같아서 괜히 서글퍼졌다.
'밀수록 가까워지는'에서는 '삼촌'이라는 인물이 좀 특이하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애인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삼촌이 딱해서인지 모아 놓은 돈을 다 털어 삼촌의 어머니는 도시로 나가 일하게 하고, 여자들을 태우고 다니라고 프라이드를 사준다. 그러나 삼촌은 마치 프라이드를 애인 모시듯이 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차를 고향에 두고 사라진다. 그것을 타고 다니며 조카는 삼촌의 행적을 따라가며 삼촌의 역사를 알아가게 된다. 삼촌이 좋아한 여자와 삼촌을 둘러싼 여러가지 일들과 후진이 되지 않는 프라이드의 역사까지도.
'김 박사는 누구인가' 는 상담자가 김 박사이고, 스물네 살이 된 임용고시 재수생이 그에게 상담 요청을 한다. 김박사는 그녀에게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전형화된 해답을 알려준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난 내담자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위안을 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경험도 필요하지만 김 박사는 그저 입에 바른 소리만, 교과서적인 내용만을 읊어댄다. 마치 녹음기를 돌려 놓은 것처럼.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믿고, 이해받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온 마음을 다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우리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얼마나 많은 김 박사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져 있는지. 책속의 내용처럼 욕이 나올 지경인지도.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는 장님이 된 목사가 안구기증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일어난 하루동안의 일들이 길게 이어진다. 그 전화를 받은 아내의 침울한 목소리, 꼭 수술을 받아야 겠냐는 푸념, 목사로서 살아온 인생에서 '장님'이라는 사고는 마치 자신의 운명이고, 하나님이 지정해준 삶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나타나는 혼란들. 안구기증을 할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그 안구기증자의 아이는 마음이 타들어가고, 화가 나고.... 그런 상황 속에서 목사는 어둠 속에서 환한 불이 밝혀질 미래를 꿈꿔 보기도 하지만 나가야할 돈을 걱정하는 아내와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와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들 앞에서 혼란이 가중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을 받으러 가는 중에 누군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목사'라는 이름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리어져 있는지 알게 해준 단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존재 자체가 얼마나 모순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더불어서 알게 되는.
'탄원의 문장'은 한 여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분명한 건 여학생의 죽음이 타의에 의한 것이었고, 분명 억울하고 누추한 죽음인데도, 주인공 선생님에게는 친분이 없다는 이유로 전혀 슬픔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많은 추억을 나눈, 가해자인 P를 옹호하게 된다. P를 위한 탄원서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P에 대한 동정과 긍정들이 혼합되어진다. 그러나 P와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통해,커튼에 가리워진 진실들에 다가가게 되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신과 가깝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진실을 회피하는지에 대해 씁쓸한 문장들을 남기는 단편이었다.
단편들 하나 하나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어떤 망원경 같다. 뉴스에 보여지는 그저 사람에게 주어진 지위 한 단어가 아니라 그 속에 까발려진 진실. 우리는 그 진실을 파헤쳐 볼 눈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생각할 마음을 가질 힘을 길러야 한다. 또한 힘들더라도 진실 가까이에, 내면 가까이에 가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