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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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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제목만 보고는 추리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기호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았지만 평이 좋은 것을 보고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펼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것은 단편이 너무도 많은 것들을 압축하고 있어서 '상징'적인 것들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다 따라가고 난 뒤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의미를 찾기가 조금 막막할 때가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호의 소설은 다른 여느 단편들과는 달랐다. 일단은 '인물'과 '상황'들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술술 읽혔고, 그 인물들이 어쩐 일인지 잘 잊히지가 않았다.

 

'행정동'에서는 '행정동 건물'에서 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졸업을 한 뒤,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한 남자가 '비정규직'인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오고, 남들보다 늦게까지 일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카드를 들고 오지 않은 비정규직 여성을 보게 되고, 그 여성을 모르는 척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적부에 모든 사적이며 역사적인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는 학적부를 만들어 나간다. 이곳에서도 그의 무심함과 일상성이, 그 행정동 건물에서는 당연한 일인듯 여겨지고, 그것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 같아서 괜히 서글퍼졌다.

 

'밀수록 가까워지는'에서는 '삼촌'이라는 인물이 좀 특이하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애인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삼촌이 딱해서인지 모아 놓은 돈을 다 털어 삼촌의 어머니는 도시로 나가 일하게 하고, 여자들을 태우고 다니라고 프라이드를 사준다. 그러나 삼촌은 마치 프라이드를 애인 모시듯이 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차를 고향에 두고 사라진다. 그것을 타고 다니며 조카는 삼촌의 행적을 따라가며 삼촌의 역사를 알아가게 된다. 삼촌이 좋아한 여자와 삼촌을 둘러싼 여러가지 일들과 후진이 되지 않는 프라이드의 역사까지도.

 

'김 박사는 누구인가' 는 상담자가 김 박사이고, 스물네 살이 된 임용고시 재수생이 그에게 상담 요청을 한다. 김박사는 그녀에게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전형화된 해답을 알려준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난 내담자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위안을 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경험도 필요하지만 김 박사는 그저 입에 바른 소리만, 교과서적인 내용만을 읊어댄다. 마치 녹음기를 돌려 놓은 것처럼.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믿고, 이해받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온 마음을 다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우리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얼마나 많은 김 박사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져 있는지. 책속의 내용처럼 욕이 나올 지경인지도.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는 장님이 된 목사가 안구기증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일어난 하루동안의 일들이 길게 이어진다. 그 전화를 받은 아내의 침울한 목소리, 꼭 수술을 받아야 겠냐는 푸념, 목사로서 살아온 인생에서 '장님'이라는 사고는 마치 자신의 운명이고, 하나님이 지정해준 삶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나타나는 혼란들. 안구기증을 할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그 안구기증자의 아이는 마음이 타들어가고, 화가 나고.... 그런 상황 속에서 목사는 어둠 속에서 환한 불이 밝혀질 미래를 꿈꿔 보기도 하지만 나가야할 돈을 걱정하는 아내와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와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들 앞에서 혼란이 가중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을 받으러 가는 중에 누군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목사'라는 이름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리어져 있는지 알게 해준 단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존재 자체가 얼마나 모순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더불어서 알게 되는.

 

'탄원의 문장'은 한 여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분명한 건 여학생의 죽음이 타의에 의한 것이었고, 분명 억울하고 누추한 죽음인데도, 주인공 선생님에게는 친분이 없다는 이유로 전혀 슬픔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많은 추억을 나눈, 가해자인 P를 옹호하게 된다. P를 위한 탄원서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P에 대한 동정과 긍정들이 혼합되어진다. 그러나 P와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통해,커튼에 가리워진 진실들에 다가가게 되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신과 가깝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진실을 회피하는지에 대해 씁쓸한 문장들을 남기는 단편이었다.

 

단편들 하나 하나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어떤 망원경 같다. 뉴스에 보여지는 그저 사람에게 주어진 지위 한 단어가 아니라 그 속에 까발려진 진실. 우리는 그 진실을 파헤쳐 볼 눈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생각할 마음을 가질 힘을 길러야 한다. 또한 힘들더라도 진실 가까이에, 내면 가까이에 가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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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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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무슨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시작되어 버린다. 아버지는 떠나야 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와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정애가 남았다. 정애는 현실을 버텨내야 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른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 배고픈 동생들의 처절한 울음 소리, 정애의 몇 안되는 것들을 탐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정애는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리면, 그렇게 되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착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친구들이 뒤통수를 치고, 동생 순애가 동네사람에게 폭행을 당하여 죽고, 쌍둥이를 밴 엄마도, 일하러 갔던 아빠도..... 모두 죽어 나간다. 그 죽음 속에서 정애는 어쩌면 살아있다는 게, 먹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버텨낸다. 이것이 전부라면 버텨낼 힘을 갖지 못할 테니까. 아름다운, 지금과는 다른 뭔가를 생각하며, 아플 때마다, 견뎌내려 할 때마다 말 대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내가 죽은 줄 알았으나 곧 죽지 않은 것을 알았다. 사람은 죽지 않으면 산다. 죽지 않았으면 살아야 한다.  -32

 

노래는 멀미 나고 인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정답게 굴어야 할 때 내는 소리가 아닌가.

-32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참일 때 일어난 난리통에, 정애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버려지듯 1980년대의 광주로 간다. 콩나물 장사를 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그곳에 정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애는 성폭행을 당하고, 반쯤 미쳐 지낸다.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면서. 정애의 유일하면서도 따뜻한 친구였던 묘자도 광주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엄마 가게에서 가게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아무것도 없었던 묘자는 아무것도 없는 남자를 따라 가 살림을 차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둘만 있으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들은 금세 사라져 가고, 모두가 미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묘자는 우연히 정애를 만나게 되고, 정애가 정신이 반쯤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묘자는 남편을 살해하고, 감옥살이를 시작한다.

 

여전히 정애는 뭔가를 빼앗기며, 노래를 부르며, 햇빛과 바람 속을 헤치며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정애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모두들 궁금해하지만 정애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바람이 있는 곳에, 소리가 있는 곳에, 햇빛이 있는 곳에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묘자가 있는 감옥에도 정애는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한 개인, 정애라는 인물만 따로 떼놓고 보면 정애는 참 아름답고 강하고 멋진 여성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어진 환경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뭔가를 하며 일궈내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은 돼지를 훔쳐 달아나고, 동네를 잘 돌봐야할 사람들은 정애를 호시탐탐 노리며 겁탈을 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찾아간 광주에서는 수많은 폭력과 멸시 속에서 살아내야 했다. 아무리 제 자신이 강인하다 할지라도, 세상에 가격한 칼을 피할 길은 없었다. 때론 피투성이가 되었고, 때론 죽은 듯이 보였다. 그런 정애는 '노래'로, '소리'로 버텨냈다. 그러다 더이상 버틸 힘이 사라졌을 때, 정애는 빛 속으로, 바람 속으로,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이 정애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마 대숲에 바람이 불면 어디선가 정애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거리를, 피멍으로 물들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가슴을 잊지 말아달라는 정애의 처절한 노래 소리가 아니었는지. 우리는 언제나 그 시간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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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유언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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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만 접해본 나로서는 과연 그의 에세이는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총 9부로 구성된 이 에세이의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을 읽었을 때는 정말 몇 번이고 앞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소설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가 무슨 의도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점차 책의 중반부로 접어들자 그제서야 조금씩 그가 말하는 일관된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고, 과연 그가 거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유머란 이런 것이다.

 

유머란 이 세계의 도덕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신성한 빛이다. 유머란 인간사의 상대성에 대한 도취요, 확실한 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이한 즐거움이다. p.50

 

그가 사랑하는 작가 카프카의 '성'이라는 작품을 매개로 그가 생각하는 작품의 구성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가 얼마나 비슷해질 수 있는지(그 구성과 형식 그리고 역사에까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스트라빈스키에 이어 야나체크까지 이어진다. 하나의 음악 작품과 소설 작품을 전체적인 구성과 문장, 길이와 글자 수(음악의 경우에는 음 길이)로 세분화 시켜 설명하는 그의 분석은 어떤 장인 정신을 표방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시대별로 표현하는 예술, 절제하는 예술에 대한 차이와 비교를 쉽게 설명하며 보여준다. 필요할 때면 음표를 보여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재미나게 읽기 시작한 것은 바로 5부 부터였다. 그게 쉽게 읽혀진 이유는 헤밍웨이의 유명한 단편 '흰 코끼리 같은 언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만 내가 읽은 작품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헤밍웨이의 이 작품은 내가 재미나게 읽었고, 나도 아리송하게 생각한 부분들이 많았다. 도대체 '그 사건'이 무엇이길래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것은 '낙태'에 대한 이야기였고, 어쩌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어떤'(모든) 대화이기도 했다. 쿤데라의 상상력은 여기서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을 읽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 그것은 바로 모호함 속에서 뻗어나가는 상상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보편적이고도 구체적인 혹은 추상적인 이 대화들을 읽어 내려가며 각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명확하게 헤밍웨이가 무엇을 의미하며 써내려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보고 느끼며 상상하는 것은 각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모호했던 많은 단편들, 짧기 때문에 표현해낼 수 있었던 애매함들을 이제야 나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했다.

 

 

쿤데라는 좋아하는 작가(작품)와 작곡가(음악)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며 그들의 본질을 파악해내려고 한다. 또한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본질을 흐트려 놓고, 그들이 주장하려고 했던 것들에 반하는 작품 해석에 대한 애석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이 흩뿌려 놓은 유언들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더이상 남아 있는 자들이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유언이라는 것은, 죽은 뒤에 남겨진 것이라는 것은 더이상 살아있는 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아 아닌 것이다. 그 '배신 당한 유언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쿤데라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마련해 놓은 작품의 세계 속으로 푸욱 들어가게 만든다. 그것은 '느린 독서' 그러니까 두 번, 세 번을 통한 독서를 통해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한다. 단 한 번의 것으로는 쿤데라의 에세이조차도 그의 뜻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을 거라는 예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신 당한 유언들'을 앍고 싶은가. 그렇다면 재독을 권한다.

끊임없는 재독만이 당신이 진짜 알고 싶은 작품에 대한 본질을 알게 해줄 것이다.

쿤데라의 성찰 속으로 빠져 들어 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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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파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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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긍정이란 어디서부터 샘솟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버려진 물건들을 찍는 마일스 헬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선셋파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게 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각기 다르지만 뭔가 하나쯤은 헐빈한 느낌의 젊은이들. 그들의 조합은 꽤나 훌륭해 보였다. 거기다 각 장마다 달라지는 시선으로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구성 방식을 취했고, 마지막 장에는 모두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마일스는 스물 한 살에 집을 나왔다. 자신의 의붓형인 보비와 말다툼을 하다 사고로 죽어버리는 순간, 그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듣다가, 자신이 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여겨져 집을 나온다. 약 7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 중퇴자, 무기력함, 삶의 무의미함.... 그러한 기운들로 둘러싸인 그에게 삶의 빛이 흘러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필라'를 만난 것. 필라는 어린 소녀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었고, 마일스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만 필라의 언니는 미성년인 필라와 사귀는 마일스에게 부당한 요구들을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선셋파크'로 향하게 된다.

 

과거의 자신과의 유일한 끈인 '빙 네이선'은 마일스의 친구이다. 그는 마일스에게 '선셋파크'로 올 것을 권유하고, 그들은 불법적으로 비워진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앨리스와 엘렌도 그들과 합류하게 된다. 그들은 각자 가장 독립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나간다. 각자 맡은 집안일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그 외의 시간들은 혼자만의 시간들로 채우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고민하는 앨리스는 이제 더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빙은 실은 오래전부터 마일스를 사랑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마일스의 삶은 필라라는 존재로 인해 완전히 탈바꿈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온전히 자신의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것을 의미했다. 오로지 자신의 생을 유지하는 것에만 쏟았다면 이제는 필라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원조를 해주는 역할을 기꺼이 자처한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인 것처럼.

 

빙 네이선은 7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마일스와 편지를 주고 받은 모든 내용들을 그들의 부모님께 전달했다. 그들의 부모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뜻 그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모리스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다니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때까지 기다렸다. 꼭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일스는 모리스에게 연락했고, 부재중이란 응답을 받게 되어 자신의 생모인 메리-리를 먼저 만나게 된다. 배우로 살고 있는, 마일스가 태어난 지 6개월만에 마일스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간 여자, 메리-리.

 

그러던 어느 날, 선셋파크에서 나가달라는 통보 편지가 오기 시작하고,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불법 침입자이자 무단 거주자인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빙 네이선은 경찰들에게 저항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잡이고, 마일스는 피해 있다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모든 게 끝장 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가득한 그는 온통 도망갈 생각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수하라고, 뭐든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마일스는 그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난 7년 반 간의 시간들,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었던 자신의 손, 그리고 아버지와 필라, 자신의 생모와 키워준 윌라를 실망시키게 될 거란 생각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함께 찾아왔다. 삶을 긍정하게 되는 힘,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하며 도망다니는 것이 아니라 맞닥뜨리는 것이라는 알게 된 것 같은 그런 상쾌한 느낌의 희망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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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5월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신간을 고르면서 확인한다.

정신 없이 달려오니 이 자리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내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배수아의 작품이 나왔다. 주변엔 그녀의 글을 읽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한번도 그녀의 글과 만나보지 못한 나로써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도대체 어떤 밤과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요즘 나는 한국작가의 소설에 끌린다.

예전엔 무조건 외국 소설을 좋아했다.

간단한 어투, 나에게 어떤 물음을 던지지 않는,

자연스럽고 쉽게 읽히는 외국소설.

 

그러나 이제는 한국사회 속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그보다는 더 평범하지만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싶어졌다. 아마 이기호의 단편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 같다.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보고 반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인 로맹가리.

두 명은 같은 인물이었고, 같은 종목에서 두 번 상을 받은 작가이고,

그의 언어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고,

그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언제든 내게 기대되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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