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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극좌파가 본 최재천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비판>>
을 클릭하시면 상세한 비판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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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매체에 담았던 것들이라 제 글들은 종종 시사성을 띱니다. 그러나 보니 다른 동물들도 그런데 우리도 이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되도록 범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때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8쪽)
시사성을 띤다고 해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만약 최재천이 한국에서 사회생물학 또는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전파하고 싶다면 자연주의적 오류에 맞서서 제대로 싸워야 한다.
게다가 최재천이 자연주의적 오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다음을 보자.
그러나 이런 유사성을 보고 우리네 정치 성향이 개미 사회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개미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걸어온 곤충의 일종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87쪽)
우리네 정치 성향이 개미 사회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냥 과학적 오류지 자연주의적 오류가 아니다. 즉 개미와 인간이 계통학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오류(과학적 오류)를 범한 것이지 개미나 인간에 대한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오류(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다.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이 다음과 같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호주제가 만일 부계로 이어지는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면 생물학적으로 뒷받침하기 대단히 어렵다. 자연계의 그 어느 동물 사회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부계란 찾을 수 없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206쪽)
호주제에 대한 최재천의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서는 「어느 극좌파가 본 최재천 –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비판」에서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