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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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극좌파가 본 김규항 -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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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노동이 원래부터 모든 노동보다 존귀한 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원래부터 존귀한 것은 없다. 사회가 지식인에게 육체노동의 의무를 면해주고 존경과 명예를 준 것은 지식인이 원래 존귀해서가 아니라 당대를 파악하는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식인에게 등대의 역할, 이정표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B급 좌파, 123)

 

김규항은 여기서 당위와 현실을 혼동하고 있다. 지식인이 당대를 파악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당위다. 지식인에게 특권이 주어진 것은 그런 당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일 뿐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특권을 누릴 뿐이다. 이것은 숙련 노동자가 미숙련 노동자에 비해 여러 가지로 나은 조건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숙련 노동자는 임금을 더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더 대우를 받는다.

 

지식인은 한편으로 지배계급에게 봉사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특권을 누린다. 그리고 그 능력이란 것은 당대에 대한 파악을 가로막는 능력일 때가 많다.

 

심지어 그들은 지식인 세계를 형성하고 그들끼리만 소통 가능한 암호 언어(그들이 지적 대화라고 부르는)로 그들의 서푼짜리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또한 그 서푼짜리 허영심의 냄새나는 퇴적물을 지성이니 교양이니 인문주의니 하는 이름으로 몸에 두른 채 당대 현실로부터 대중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짓는다. (B급 좌파, 123)

 

학술적인 소통의 효율과 정확성을 위해서 그런 전문적인 임시 언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언어들이 학술적인 소통 밖을 떠돌며 지적 권위를 행사하거나, 먹물들이 보통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구별하는 데 사용되는 건 참으로 재수없는 일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진리는 쉬우며 쉽지 않다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왜 불온한가』, 265)

 

김규항은 어려운 말을 하는 지식인을 경멸한다. 하지만 어려운 말은 불가피하다. 20세기의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대중들이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일반인이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 물리학은 난해한 현대 수학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 또는 학자는 그가 얼마나 어려운 말을 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올바른 말을 하느냐 여부로 판단되어야 한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과 그들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대중이 알아먹기 힘든 어려운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물리학처럼 그 철학자들의 어려운 말 속에 쉬운 말로는 할 수 없는 진리가 담겨 있다면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김규항은 그들이 쉬운 말로 할 수 있는 것을 어려운 말로 비비꼬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쉬운 말로 할 수 있는 것 즉 보통 통하는 상식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물리학이 직관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물리학의 난해함이 진리에 근접하지만 그 철학자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진리는 쉬워야 한다는 김규항의 헛된 믿음은 예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예수는 알 듯 모를 듯 하는 말을 많이 했다. 물론 알아듣기 쉬운 쉬운 말로 했다. 하지만 예수의 말에는 세상에 대한 통찰이 거의 없다. 그냥 착하게 살라는 설교 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와 예수는 그냥 착하게 살라고만 말했지 사회 체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런 식의 설교는 지겨운 조회시간의 교장의 설교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좋은 말이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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