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벤 라이스 지음, 원지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편지가 전해졌을 무렵이었을까 말을 달려 팻말을 먼저 꽂는 쪽이 그 땅의 임자가 되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곳으로 부와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모험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온 애슈몰 가족이 떠올랐다. 일확천금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도 힘겹고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위험 속에서 행운을 캐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 안타깝다. 애슈몰의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다.

아직 소꿉놀이가 좋은 나이의 아이들은 가끔 상상 속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이기도 한다. 애슈몰의 동생 캘리언은 그 정도가 다소 심해 보이기는 하다. 어쩌다가가 아니라 늘 상상 속 친구 포비와 딩언을 생각하니까. 캘리앤의 그런 행동에 동조하는듯 보이지만 상태가 더 심각해져 현실 속에서의 적응이 어려워질까봐 아빠는 일하던 포비와 딩언을 광산에 데려가는데 집으로 돌아온 캘리앤은 포비와 딩언이 광산에 남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걱정하다 앓아눕기까지 하게 된다. 애슈몰과 아버지는 캘리언을 위해 다시 광산으로 가지만 아버지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둑으로 몰리고 동네 사람들마저 아버지를 도둑으로 몰아가는데 캘리언은 더 창백해져간다. 여동생의 상상 속 친구를 애슈몰은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들 독자들은 캘리언의 포비와 딩언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애슈몰이 포비와 딩언을 인정해가는 여정에서 읽어가는 애슈몰이 스스로에게 품은 질문을 나 역시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포비와 딩언을 찾았다며 나서는 장면들 중 캘리앤에 대한 걱정만이 아니라 사례금을 바라는 모습에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오색영롱한 오팔을 포비와 딩언의 시신 옆에서 찾은 애슈몰이 아픈 여동생을 위해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을 위해 다 써버릴 땐 내가 다 안타깝기도 했다. 어릴 때 읽었다면 저 아까운 오팔을 하는 마음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열정의 청춘이 빛바랜 낡은 사진처럼 아쉽고 그리움이 남는 이 시절엔 보다 현실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린 여동생을 위한 애슈몰의 순수함이 아름답게만 보이기보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아이들 책인데도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의 눈과 마음으로 읽어서 그럴까? 우리 아이에게 읽히고 그 느낌을 물어봐야겠다.

맑은 눈의 애슈몰이 나를 똑바로 쳐바보며 물어온다.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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