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맨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슬로우맨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턱을 벌릴 수 없기 때문에 소리를 칠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갈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그에게 맞는데.

그조차도 할 수 없는 처절한 절망.

슬픔이 그를 찔러온다. 가슴에 겨눈 칼처럼....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타임캡슐에 담아놓으려 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쓸까.

그 편지를 열어볼 때 흐뭇한 마음으로 열어볼 수 있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리라.

지금 바라는 것처럼 더 많이 나이 들어 손자 손녀를 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얼굴을 보기만 해도 마주보고 미소가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싶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네델란드계 백인의 아들로 태어나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수학, 영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강의하다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와 정년퇴임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

2003년 노벨상 수상, 한 작가에게 두 번은 수상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두 번의 부커상 수상.

예사롭지 않은 이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이 작가를 몰랐지? 왜 읽어보지 못했지?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가 났고 흐렸다 깨었다 일어나는 의식이 온전히 자리를 잡을 때쯤

그의 다리는 이미 무릎도 건지지 못하고 잘려나갔다.

끝이 없는 밤이 찾아온 것처럼 더디게 가는 시간 끝에서 마리야나가 걸어들어왔다.

침잠된 그의 시간을 깨우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인으로 생각한.

 

하지만 그의 새로운 사랑은 안타깝게도 그 자신 혼자만의 것이었을 뿐

가족들의 생계의 일부를 책임지기 위해 고객을 찾아온 마리야나에게 그는 고용인일뿐이다.

조키치 부인인 마리아나에게 그 아들의 장학금을 내어놓겠노라 하며 그의 사랑을 고백해보지만...

그런 그의 삶을 틈을 비집고 들어온 또 한 여인.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좋지 못한 심장을 가진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등장한다.

 

마리야나를 향한 그의 애달픈 사랑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며 코스텔로는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는데...

만약 코스텔로가 지금처럼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지 않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가시 돋친 말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성과 따스한 손길을 지녔다면 이야기의 방향이 또 달라졌을까?

다른 상태에 있는 생면부지의 은퇴한 사진사에게서 위안을 찾으려는 여자,

그 나름의 재난을 당하고 그 나름의 상황에 따른 그 나름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남자.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이야기 전개를 방해하는 듯 등장해서 사건을 끌어가는 인물과 그들의 불편한 관계때문이었을까.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삶의 기쁨과 환희를 또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의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의 오늘은 죽은 자의 어제이고 살아갈 자의 내일이라는 말처럼

하루 하루 엮어가는 일상이 타임캡슐안에 넣을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훗날 돌아보며 미소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고했노라고 스스로에게 어깨두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리도록 애잔한 감동을 주기에 노을이 아름답다고들 하는 것처럼 천천히 천천히 가슴을 파고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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