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 곡 쳐보랄까봐 겁내하며 기타를 들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이 된 조카에게 넘겨주면서 속으로는 많이 아까워했었다. 그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기타의 붐이 온다 EP북은 처음 들어보았다. 싱글앨범과 정규앨범의 중간 형태를 EP 라고 하는데, 여기에 음악 관련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합쳐서 'EP 북'이라고 한단다. 얇은 책 한 권과 음악 시디 한 장. 표지도 두껍지 않고 다소 밋밋한 느낌마저 주는 너무도 얇은 책. 얇은 두께보다 훨씬 더 많은 감성을 담은 책이었다. 시디를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니 훨씬 감미롭게 들린다. 음악도 글도.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음악을 만든 이의 속내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릴 적 추억과 일상과 지나간 사랑이야기, 꿈꾸는 사랑이야기, 환상적인 동화같은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들만의 무늬를 짜 맞추고 색깔을 띠고 있었다. 피터는 6학년때 삼익에서 나온 기타를 선물받고 처음 배운곡 A key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떠올리고 처음 작곡한 곡 윤동주의 '오줌싸개 지도' 이야기를 하며 대학에서 성당 반주를 한 추억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향인 영국 토키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싱클레어와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한 50쯤 되면 검은색 가죽 바지와 점퍼를 입고 산타나처럼 기타를 치고 싶다며 자신의 아이가 아버지 직업 쓰는 칸에 기타리스트라고 썼으면 좋겠고 아들을 낳으면 꼭 기타를 가르쳐 같이 연주하고싶다는 킴벌리의 이야기. H. 기타쿠스로 모이고 곡을 만들고 카페 체화당과 원주카페 나무의 오픈 콘서트와 세계를 다니며 음악을 안고 흘러다닌 이야기며 기타쿠스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고싶은 일들, 사랑했던 이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어찌보면 살짝 사기꾼 같고, 어찌보면 도통한 기타리스트 같은 수의 볕 좋은 오후의 스승님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손으로 쓴 듯한 글씨체도 마음에 들었고 토키에서의 피터의 옛 애인 앤과의 재회 이야기도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함께 듣는 음악에서 웬지 그의 마음이 선율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글과 음악이 함께 있어 좋았고, 나중에 다 읽고 다 듣고 다시 어둔 밤 음악만 들을 때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좋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반쯤 취기가 오를 때 들을 수 있을만한 이야기들을 EP북을 통해 읽고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몰라도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주고 음악과 함께 흐를 숭 있어 좋았다. 싱클레어와 기타쿠스, 그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쉽사리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