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개정판이다.

2000년에 처음 나왔었으니 여러 사람들이 이미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책 소개를 어찌하고 있나 궁금해서 책을 읽기 전에 한 번 들여다 보았었다.

좋은 이야기들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다소 빡빡한 느낌이 있어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는 이도 있었다.

같은 내용의 책일지라도 읽는 이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작가의 저작물이나 감상은 독자의 개인적인 소유물이니 책을 읽고 달리 이야기한다 해서 그걸 남의 밥상의 반찬 타박하듯 해선 안될 것이다.

내가 본 이 책은 그윽한 향기가 났다.

그의 말처럼 일반 직장을 가진 이들이, 직장을 가지지 않은 이라 할지라도 50여일을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떠나는 이도 떠나는 이를 보내는 이도 큰 결심을 하고 떠나고 보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집에 편안히 앉아서 그가 떠난 길을 걷고 그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보고 느꼈다.

글 한 자락 한 자락이 어찌나 그윽하던지 만나 보지 않은 분이지만 구본형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 하고 짐작을 해 보았다.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면을 닦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적이다. 본질을 닦음으로써 타고난 자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59쪽에서

 

시대가 지금이라서 그렇지 배경이 옛 조선쯤이나 되었었다면 그는 분명 고아한 선비였으리라.

그의 글에는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고 향기가 있다.

머무르다 떠난 자리마다 그만의 흔적과 향을 남겨 놓았다.

그 흔적과 향이 책 속에 그득하다.

그의 글솜씨에 마음이 은근히 흔들린다.

오래전에 떠났던 나의 남도 여행을 함께 떠올리며 그때의 추억도 좋았지만 이 책으로 떠나는 남도 여행도 아름답다.

 

관리소에서 한 시간 정도 아까 그 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구절 양장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내려가며 걷다보면 푸른 호수 바깥으로 적벽이 서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콩을 잔뜩 집어넣어 빚은 두툼하고 울퉁불퉁한 송편 같다. 열 개 남짓한 돌 봉우리들이 송편 밖으로 튀어나온 콩처럼 즐비하게 서 있고, 봉우리마다 작은 산맥이 부챗살처럼 뻗어 내려 정면에 보이는 아치형 절벽 바위로 수렴한다.

-73쪽에서

 

화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들어간 가든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식당에서 시켜 먹은 메기매운탕을 먹고 남도 여행하면서 100여 곳에 이르는 곳에서 밥을 사 먹었지만 이 집만한 곳이 없다며 남도의 맛을 직접 맛보고싶은 욕구를 끌어당긴다.

 

홍도를 돌아보는 배를 타고 운무 때문에 수려한 홍도의 그 구녕들을 보지 못하는 섭섭함을 "이 양반아, 자고로 동양화에는 운무가 껴야 하는 벱이여."하고 던진 한 마디의 말에 그 말이 옳다 꼭 뚜렷이 보여야만 보았다고 할 것인가. 그 나름 은은한 풍경도 아름답고 멋지지 않을까.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일지니.

가는 곳곳마다 그가 풀어놓는 시와 윤광준씨의 사진과 그의 멋진 글솜씨가 어우러져 옛 이야기와 태백산맥 등의 문학과 인생이 함께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인생 만 한 변화의 장은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어 이곳에 있다. 노인에게는 어른인 아이가 있고, 어른에게는 아이인 아이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그 변천의 기록이듯,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굽이굽이 후회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숨막히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나 부끄러워 잊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79쪽에서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와 같이. 이 책에 대한 읽고난 느낌을.

그의 글을 빌려 마무리를 하고싶다.

남교시장 좌판에서 앉았던 긴 나무의자.

-256쪽에서

내가 앉기 전, 긴 의자 한쪽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내가 앉자 긴 의자에는 세 명이 한 일행처럼 앉아 있게 되었다. 조금 있다 그들이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잠시 후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아 순대 한 접시를 시켰다. 이번에는 그들이 떠나기 전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둘을 남겨놓고 떠나왔다.

내가 떠나온 긴 의자의 한쪽 부분은 남아 있는 사람들과 일행이 될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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