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정원 구경 - 사적인 정원 16곳에서 배우는 가드닝 노하우
박희영(양평서정이네) 지음, 박원순 감수 / 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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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정원 구경하실래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남의 집 정원 구경. 어딘가 수줍고도 설레는 말입니다. 담장 너머를 살짝 엿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 기다리던 초대를 드디어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정원이라는 공간은 집보다 더 사적인 데가 있습니다.

집 안은 어쩌다 들어갈 수 있어도, 정원은 그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이니까요. 어떤 꽃을 심었는지, 어떤 나무 아래 의자를 놓았는지, 어디에 작은 온실을 마련했는지—그 모든 선택이 그 사람의 취향이자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러니 남의 집 정원을 구경한다는 건, 그 사람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자 박희영은 유튜브 채널 '양평서정이네'를 운영하는 가드닝 크리에이터입니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12년 양평에 작은 집을 짓고 마당에 식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정원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시간이 조용히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고, 이제 정원 일은 그녀의 삶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정원을 삶으로 살아온 사람이, 전국의 사적인 정원 16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사진이 압도합니다. 텍스트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사진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로 손이 갑니다. 이 책은 읽는 책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보는 책입니다.

잡지를 넘기듯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입니다. 유리온실 옆에 탐스럽게 피어난 흰 꽃들, 나무 데크 위에 놓인 낡은 의자와 멀리 보이는 산, 넝쿨이 타고 오르는 오벨리스크—사진 한 장 한 장이 어느 한 사람의 세계입니다.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가꾼 세계.




소개된 정원들의 면면도 다양합니다. 규모는 50평에서 8600평까지, 지역은 경기도부터 제주도까지, 환경은 도시 한가운데의 마당부터 깊은 산속까지 제각각입니다.

꽃이 춤추듯 피어나는 '힐가든', 흙 만지는 기쁨을 알게 된 '초록가든', 노란 고양이가 사는 독특한 구조의 '째즈폴네', 장미 컬렉터 아내와 목수 남편이 함께 가꾼 '우드베일리가든', 4대가 함께 가꾸어 온 '카페 다루지', 멸종 위기 식물을 보살피는 드넓은 '솔매음정원', 꽃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정원 산책', 세 사람의 마당과 한 사람의 취향으로 완성된 '세림의 정원'까지.

각 정원마다 그 정원을 가꾼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어서, 정원을 보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이 됩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정원의 화려함보다 그 정원에 깃든 삶의 결을 더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완성된 정원이 아니라 가꾸어가는 정원, 전문 조경이 아니라 주인이 손수 일군 정원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각 정원에는 시행착오의 흔적이 있고, 세월의 켜가 쌓여 있으며, 그 집식구들의 체온이 배어 있습니다. 어떤 정원은 아이를 위해 다시 꾸미는 중이고, 어떤 정원은 플로리스트였다가 가드너가 된 사람이 식물 언어로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원은 한 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서 변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목차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정원에 붙은 이름들—힐가든, 메이네, 초록가든, 째즈폴네, 홀리가든—이 어쩐지 정겹고 개인적입니다. 누군가의 별명 같기도 하고, 작은 가게 이름 같기도 합니다. 공식 명칭이 아니라 그 정원을 가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들입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에 이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정원을 가꾸지 않습니다. 화분 하나를 오래 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손에서 내려놓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정원이 단순히 식물을 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글로 그 세계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어떤 사람은 기도로 만들지만—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땅과 흙과 계절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봄이 오면 달라지고, 여름이 지나면 또 달라지고, 해마다 조금씩 풍성해지는 세계.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이 책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책 표지의 사진부터 이미 그 세계로 초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알리움의 보랏빛 꽃봉오리, 흰 꽃들의 군락, 나무 그늘 아래 드리운 해먹 같은 천막—단번에 어딘가 조용하고 좋은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기분이 한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남의 집 정원을 구경했을 뿐인데, 내 마음 어딘가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은 느낌. 좋은 책이 주는 선물입니다.

정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운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라도, 혹은 그냥 지금 잠시 어딘가 조용한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분이라도—이 책을 천천히 넘겨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느 쪽에서 펼쳐도,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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