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재발견 - 기쁨이 있는 곳을 찾아라
한승욱 지음 / 슬로우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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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했다고 하죠. [멈춤의 재발견]을 보는 순간 제목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 문을 두드렸습니다. 표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표정하고 무채색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멈추어 섰습니다.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멈춤을 통해 밝게 빛나는 나비를 주목합니다. 멈춤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춤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멈춤의 재발견] 은 남다른 포스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잔뜩 기대했는데 기대만 못할 때, 영 아쉬움이 남을 때 하는 말입니다. 책의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책은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놓고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일종의 공갈빵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멈춤의 재발견] 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가득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한승욱의 일생을 감칠맛 나는 언어로 담았습니다. 마치 육즙 가득한 고기를 먹는 듯한 느낌마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자 한승욱은 1인 기업가이자 칼럼니스트이며 작가인 구본형 소장의 제자였고, 인문고전으로 내공을 탄탄히 쌓은 준비된 작가였습니다.

책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자 한승욱은 추락한 버스에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었지요.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갔었던 사건이고,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을 저자는 멈춤의 시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디딘 직장 생활도 멈춤의 시간으로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고 아쉽게도 나의 사회생활은 교회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교회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원목으로 일하면서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분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굳이 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면 '치열하다'라는 단어를 꼽고 싶습니다. 직원 중 한 분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직장 생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자의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물을 뒤집어쓴 사건이나, 발을 헛디뎌 추락한 사건도 보기에 따라 다른 사람이 겪지 않는 일이며 치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에 더 이상 자네를 위한 자리가 없네'라는 말 한마디로 수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정리해고당하는 삶이란 치열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가장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 막막함, 그 답답함을 몇 줄 언어로 담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한승욱은 그 막막함과 답답함으로 점철된 멈춤의 시간을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시간으로 재해석합니다. 이쯤 되면 저자는 재해석의 달인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활자를 따라가면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웃을 바라보는 저자의 깊고 온화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서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편견을 걷어치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선이 고맙고 따사로웠습니다. 사건과 사람을 대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문득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저자를 멈춰 세운 사건사고가, 불어닥친 재앙 수준의 일들이 낭비되지 않았던 것은 그 멈춤을 원망하지 않고, 멈춤의 시간에 자신을 탓하거나 타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은 저자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멈춤의 시간을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재해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멈춤을 재해석하는 저자의 사고의 근력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저자가 스승으로 모신 구본형 씨를 비롯한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사람들과 직장에서 만난 동료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살아온 시간,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일들과 우연한 만남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속도가 생명인 것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멈추어 서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언어로 담아낸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면서 생긴 사고의 근력이자 마음의 힘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입니다. 빠른 것이 능력이자 힘으로 추앙받는 시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빠름은 곧 미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전혀 다른 가치로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한 번은 멈추어 서서 주목해서 보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멈추어 서서 자세히 오래 보아야 발견할 수 있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더운 여름 잠깐 멈추어 서서 [멈춤의 재발견] 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놓치고 살았던 여유를 회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승욱의 [멈춤의 재발견]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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