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위로 - 흐린 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장일 지음, 남수현 그림 / 넥서스CROS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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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고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에게 등 떠밀려서 참석한 세미나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서 성서를 기록한 내레이터의 의도를 파악하자는

제목도 길고, 호기심도 생기는 세미나였습니다.


다른 흑심도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시는 유수한 목사님들이

대거 참석하실 것 같단 생각은

뛰어나신 분들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고, 

말도 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자라게 만들었습니다.

은근히 그 자리가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출간한 제 책도 몇 권 챙겼습니다. 

뭐라도 드리면서 인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강사 교수님께 한 권 드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 책을 꺼내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강의가 다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 옆자리에 계신 폭넓은 독서와 해박한 지식으로 똘똘 무장한 이재현 목사님께 한 권을 드렸고, 강의실 정리하시는 목사님들께도 한 권씩 드렸습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장일 목사님이었습니다.


마른 체형에 모자를 쓰고 있었던 장 목사님의 첫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까다로워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꺼내서 드리면서도 괜히 죄송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중 다른 자리에서 장 목사님께서 이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책을 읽고서야 장 목사님에 대한 오해가 이해로 바뀌었습니다. 크론 병을 앓고 계셨다는 것과 그로 인해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야 집중력 있게 강의를 듣고, 함께 식사를 하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핍, 나는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곤 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류에겐 결핍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한한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신을 공급자의 위치에 올려놓았으니 모든 영역에서 결핍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요. 우리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모든 결핍은 우리의 원래 위치가 어딘지 알려주는 바로미터이며 무한한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확성기라고(루이스 흉내를 내면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핍이 무엇인지, 결핍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나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한다는 말이 있지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전자를 더 선호합니다. 저의 생각이 얼마나 얕은지, 제가 사용한 결핍이란 단어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대 초반 그것도 군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이 크론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그 후 17년 동안 사투를 벌인 장 목사님은 그야말로 인생이 결핍과의 동거라고 해도 좋을 테니까요.


무지를 깨우기 위해 크론병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가장 흔히 호소하는 증상은 설사, 복통, 체중 감소이며, 전신 쇠약감식욕 부진, 미열 등의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관절염, 피부 증상 (결절홍반, 괴저농피증), 안구 병변 (홍채염포도막염), 섬유화 등이 일어나 담관벽이 두꺼워지면서 담관이 좁아지거나 협착이 생기는 경화성 담관염, 신장 결석 등의 장관외 증상도 비교적 자주 나타난다. 증상의 종류와 정도는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며, 증상은 서서히 또는 급속히 나타난다."








글은 저자를 닮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글을 보면 저자의 성품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법이지요. 17년 동안 결핍에 시달렸고, 그 결핍이 가져다준 굴곡을 생각하면 날이 서고, 극도로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 목사님은 결이 달랐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여기저기 위트와 유머가 흩뿌려져 있습니다. 개그맨을 꿈꿨던 목사님 다움이 책에 여실히 묻어납니다. 재밌다는 말입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과 통찰도 가득합니다. 목사라는 직업병(?)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를 성경과 끊임없이 연결하며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을 한 뼘 더 끌어올려 주고, 한 뼘 더 깊게 만들어 줍니다. 성경이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고, 일상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보여줍니다.


자신의 아픔을 이렇게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글을 읽어가던 중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결핍을 이렇게 담담하게 이렇게 담백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목사님의 용기와 글 솜씨에 홀딱 반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 잠깐 산책을 하던 중 나의 부모님과 내 친구 김동선 목사가 떠올랐습니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나의 부모님과 김동선 목사가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자녀를 먼저 보냈다는 것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말한 참척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녀를 잃은 일이 그 무엇보다 깊고 치명적인 결핍이 아닐까? 어디에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분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독생자 예수를 잃으신 분이기에, 자녀를 잃는 아픔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시기에, 그 결핍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결핍을 정확하게 아실 뿐 아니라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장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장 목사님의 결핍이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이 가고, 결핍 때문에 허덕이는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시며, 결국 그 결핍을 넉넉하게 채우고 흘러넘치게 하실 하나님께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결핍을 직시하고 그 결핍을 채우도록 부름받은 교회로 나의 시선이 흘러갔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부족함과 결핍을 지적하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무한한 공급자이신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참고로 저는 잇는교회 담임 목사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 교회라고나 할까요). 장 목사님의 결핍의 위로를 읽으면서 결핍을 채우시는 하나님과 결핍을 채우도록 부름받은 교회를 생각할 수 있어서 더 즐거운 책 읽기였습니다. 목사님의 의도 중 하나이길 내심 기대해 보기도 했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벽돌 책 난무하는 시대에 볼륨감은 없지만 내용은 볼륨감으로 차고 넘칩니다.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목사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일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살아가야 할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일목사님

#결핍의 위로

#결핍에서 피어난 넉넉함

#결핍으로 본 인생

#결핍과 더불어 사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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