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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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세계사를 바꿀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세계사를 바꾼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역량과 열정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세계사를 바꾸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 사람을 낳고 기른 부모, 가르친 선생님, 주변 이웃, 같은 꿈은 꾼 동역자, 그를 후원한 사람, 그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을 생각하면 혼자서 세계사를 바꾸었다는 말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열정과 지혜와 끈기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변화가 시작되고,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된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얼마든지 세계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했던 생각입니다. 




이 책은 워디언 케이스(The Wardian Case)라는 식물 상자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으며, 역사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고, 결국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톺아본 책입니다. 일단 식물 역사와 이동에 이런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를 추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 감동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따라가 가면서 없었던 호기심이 피어올랐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들렀던 식물원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곤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고요. 


"맞아, 내가 보았던 수많은 식물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들인데...

발이 달리지 않은 식물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동하게 되는 걸까?

그 과정이 간단하진 않을 텐데, 병충해가 따라오는 일도 있었을 텐데,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토착화된 식물도 있을까?"

한 번 피어오른 생각은 봇물 터지듯 흘러넘쳤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돋아났습니다. 이 책은 식물이 어떻게 이동을 하게 됐는지, 그 길고 긴 항해와 척박한 이동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식물을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일에 사용된 워디언 케이스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려줍니다. 





식물에 관심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면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수개월에 걸쳐 채집 탐험을 떠난 사람들의 열정도 있었다는 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채집한 식물을 수 천 킬로 떨어진 누군가의 거실로 이동하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워디언 케이스의 역할과 기능, 그 좁은 곳에서도 살아남은 식물의 생명력에도 감탄했습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워디언 케이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워디언 케이스를 만든 너새니얼 워드라는 사람의 끈기와 지혜와 열정에도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발명품이 그렇듯 워디언 케이스도 밝은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식물 이동은 단지 식물만 이동하는 것은 아니지요. 포도나무를 초토화시키는 "필록세라"라는 해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는 필록세라가 없었습니다. 필록세라가 북미 대륙에 서식하던 해충이었으니까요. 포도나무 품종개량을 위해 북미 자생종 포도나무를 유럽으로 들이는 과정에 필록세라까지 포도나무에 묻어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로 프랑스 포도원의 3/4이 사라졌습니다. 이 해충 때문에 세계 주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저 유명한 보르도 포도나무가 말라죽어버려서 스페인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스페인 리오하 와인이 탄생했지요. 유럽 와이너리들이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일도 생겼고요.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게 되었고, 브랜디 대신 위스키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식물의 이동으로 인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식물의 이동은 병충해의 이동을 수반했고, 병충해의 이동은 토착 식물의 지형을 바꾸었지요. 토착 식물 지형이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람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법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떤 면에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문장이었습니다. 나중 이 문장이 거짓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 얼마나 자연에 기대어 사는지 알게 해 준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사라져도 개미는 생존할 수 있지만,

개미가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

이 문장을 조금 바꿀 수 있습니다. 식물과 사람으로 말이지요. 

"사람이 사라져도 식물은 생존하지만

식물이 사라지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다."

식물은 사람이 생존하는데 필수입니다. 이산화탄소를 소비해 주고 산소를 만들어 줍니다. 공기를 정화해 주고 물을 공급해 줍니다. 홍수나 산사태, 지진을 막아주기도 하고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수많은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토양의 유실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태양 에너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어 줍니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임산물과 농산물 형태로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바이오매스입니다. 바이오매스를 바이오 에너지로 바꿀 수 있기도 하지요. 대략 전 세계 에너지의 30% 정도를 폐기 바이오매스로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식물은 그야말로 신이 주신 선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워디언 상자 하나가 세계 식물사를 바꾸었고,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앞으로도 식물은 인류 생존에 지대한 공헌을 할 뿐 아니라 에너지 재생에서도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식물원에 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식물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식물 상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식물의 이동이라는 독특하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내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면밀하게 조사한 연구를 담아낸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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