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동안 곳곳에 예수와 교회 이야기가 등장한다. 내가 자이니치라고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누구나 느끼는 바가 있다. 피곤함이다. 예수 믿으면 이상하게 피곤함을 느낀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빼앗아갔다. 교회가 시발점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회는 도매금으로 매도당했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예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당하기 일쑤다. 성경을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 있다.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면 박해받는다는 말씀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자이니치로 살아가면 미움받는다. 손가락질 당할 때가 있다. 예수쟁이로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정체성. 경계선에 머무는 삶이란 피곤할 따름이다. 소설 파친코는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피곤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편견 없는 세상을 동경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간다. 지구의 유구한 역사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자이니치이다. 하지만 눈치 보며 사는 자이니치, 차별받는 자이니치, 편견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이니치가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우리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자이니치로 살지만 꽤나 근사한 노매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부조리한 세상, 그 안에서 겪는 피곤함과 안타까움은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판일지도 모를 일이므로.
소설 파친코는 드라마로 나왔다. 아직 보지 않았지만 등장인물을 상상하며 읽었다. 영상으로는 어떻게 담아냈을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기회가 닿으면 소설을 떠올려보면서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