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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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남자들이 유머 코드가 궁금하세요?

허풍 심한 남자들이 세상이 궁금하세요?

그렇다면 북극 허풍담을 읽으실 때입니다.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1권부터 읽은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5권째부터 읽어서 그런가 싶었습니다. 읽다 보니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했으니 1~6권 시리즈 중 어느 것을 먼저 읽는다고 해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북극 허풍담 시리즈입니다.




북극 허풍담이지만 허풍치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덴마크식 농담일까? 추운 극지방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의 일상에서 이런 농담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상상까지 겹쳐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을 담아낸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렴 어때요.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모든 소설이 사람 사는 세상 풍경을 묘사하기도 하고, 고발하기도 하고, 비유와 은유로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극 허풍담 역시 허풍이 가미된 이야기지만 덴마크와 북유럽, 또는 북극 지방을 살아가는 사람의 문화와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풍자적으로 담아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점은 이 농담과 이 분위기와 정서가 극지방을 사는 사람의 것일까 아닐까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읽힌다는 점입니다. 일단 등장인물이 남자 중심입니다. 물론 여성이 나오기는 하지만 중심축에서 비켜나가 있습니다. 그만큼 남자의 이야기로 그만큼 남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격한 공감과 손뼉 치며 맞장구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몇몇을 열거해 본다면 파이프 담배 하나 때문에 별별 짓을 다하다 결국 주먹다짐까지 하고 서로 잡아죽일 듯 싸운 남자 이야기. 화해하는 방식도 빼놓을 수 없죠. 화해하는 방식도 심할 정도로 남성미 뚝뚝 떨어집니다(꿀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먹다짐이죠. 서로 잡아죽일 듯 주먹다짐을 하고 더 이상 움직일 여력조차 없을 만큼 싸운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합니다. 이 지점은 여자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남자들의 이야기이자 허풍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목축업을 개척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읽다 보면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를 잡으러 갔다가 소 흉내나 내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무 준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남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느닷없이 휴가를 떠나는 이야기나, 스키를 타고 길을 가다 거의 죽을 뻔한 이야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은밀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남자들의 이야기, 어울리지 않게 뜨개질을 하는 남자와 그 남자에게 얽혀 있고 숨어 있는 입을 다물 수 없는 무용담까지. 북극 허풍담은 오롯이 남성의 세상을 탐구하고 탐험하며 소개하는 소설로 다가왔습니다. 허풍과 진지함과 유머가 절묘하게 뒤범벅 댄 채로...




처음엔 호기심에 이끌리며 읽었습니다. 두 번째는 남자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세 번째는 좀 더 각별하게 다가온 깨우침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큰 욕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거창한 일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즐겁게 살아갈 뿐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과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관계를 맺고, 가진 것이 얼마든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소탈함과 단출한 멋을 재발견하게 해준 소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만족할 줄 알며 주변의 소소한 것(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들은 말도 안 되는 기후와 지독한 외로움을 뚫어냅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적어도 그 사람이 사는 곳의 풍경은 지금처럼 욕심과 이기심에 찌든 모습은 아닐 거란 확신도 생기더군요.




북극 허풍담을 소개한 어느 글귀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읽다 보면 전권을 다 구매하게 될 것이라는 소개 글입니다. "설마 그렇기까지야 하겠어!"라는 것이 저의 첫 소감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궁금하거든요. 재밌기도 하고, 우리 삶을 단순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이것 역시 통상적인 의미에서 남자 이야기, 남자의 시선이라 생각합니다).

소탈하고 털털하게 사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딱 제 취향입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복잡한 수 싸움과 계산으로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온갖 계획을 세우는 일에 진빼지 않고 소박하고 소탈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면서도 무용담을 가진 삶을 사는 남자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별별 생각을 다해보았습니다. 어려운 말 아닙니다. 읽어도 좋을 좋은 책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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