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으로 가는 길
소피 커틀리 지음,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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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불가능하지만 진실한 이야기.

아무도 못 믿을 이야기.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 이야기.

살아 있음을 알게 하고, 살아갈 이유를 들려주는 이야기.

우리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모험과 도전이 있는 삶을 원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오래전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정글북을 읽었을 때 내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이야기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떨림과 흥분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숨 쉬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장면을 상상합니다. 주인공이 뛰어든 모험에 나도 함께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험하고 도전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야기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성장소설, 어린이 동화, 어린이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미지의 섬으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도 같은 떨림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표지 속 주인공 다라와 나나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던 아이였습니다. 저마다의 한계와 문제를 가득 안은 채. 다라는 심장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마음껏 뛸 수조차 없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고, 수술받고 난 후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따름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술 후 달라질 자신의 모습이 진짜 자신일 것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석기시대에서 온 나나는 여자아이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여자아이. 여자아이라는 껍질을 벗고 사냥하고 자신답게 살고 싶은 아이.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사회통념(석기시대의 사회통념은 유리천정이 아니라 티타늄 천정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이란 벽 앞에 서 있는 아이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향해 도주해버린. 오빠를 찾아 나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이입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다라와 나나는 자신이 부딪힌 현실, 자신을 옥죄고 가두려는 현실에 부딪히기로 작정합니다. 둘 모두에게 미지의 섬이었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갈 수조차 없었던 래스린 섬을 향해 둘은 각자의 모험과 도전에 나섭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황금 토끼가 길을 열어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둘은 래스린 섬을 눈앞에 둔 곳에서 만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난 셈입니다.



그곳에서 둘은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래스린 섬을 향해 갑니다. 무지막지한 파도를 뚫고, 생명을 걸고, 각자의 이유를 끌어안은 채. 그곳으로 가는 길 자체가 둘에게는 엄청난 모험이자 생명을 걸어야만 했던 일이었습니다. 항상 일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지요. 이 둘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고 맙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래스린 섬에 도착하고, 서로의 꿈을 찾아 힘겨운 싸움을 합니다. 짧은 만남 속에서 서로를 돕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손을 잡아주며 모험에 오릅니다.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과 휘말리고, 사건을 뛰어넘으면서 둘 사이에는 우정이 싹틉니다. 서로의 소중한 물건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사건이 해결될 즈음 그들 눈앞에 다시 나타난 황금토끼를 만납니다. 황금토끼는 만난 다라는 다라의 세상으로 가고, 나나는 나나의 세상으로 갑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이 둘은 영영 헤어집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을 래스린 섬 동굴에 남겨둡니다. 일종의 벽화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진실이었다는 것을 서로에게 전하기 위해.



삶과 죽음을 오간 모험을 끝낸 다라는 더 이상 이전의 다라가 아닙니다. 여전히 심장은 건강하지 않고, 혼자서는 맘껏 뛸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가 '정상'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건강은 없을지 몰라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술 후만 바라보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다라는 지금도 다라이며 앞으로도 여전히 다라라는 것을 스스로 깨쳤습니다. 어떤 환경과 형편에 있어도 다라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동력을 얻었습니다. 너무나 멋진 모험과 도전이 가져다준 선물이었습니다.



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빠와 가족을 죽이려는 콘도르. 너무나 강력해 보였고 잔인해 보였던, 그래서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콘도르에 맞섭니다. 그것도 콘도르의 아들과 함께. 이 둘은 두려움에 맞서고,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을 끊어버립니다.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벽을 뛰어넘었고, 도무지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티타늄 천정에 부딪칩니다. 그 결국은 상상하시는 대로입니다.








왜 이 책이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모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해묵은 사실도 다시금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충분히 강하고 지혜롭고 스스로 도전하고 모험하면서 더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사회 통념, 유리천정, 온갖 편견이 옭아매는 세상을 향해 힘껏 부딪쳐야 한다고,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나와 나나, 그리고 나나의 애완 늑대 친친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고, 온몸을 휘감는 두려움을 오롯이 맛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라와 나나는 결국 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했고 이겼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쳤고, 또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문제를 더 이상 문제로 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자녀가 이렇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문제와 장벽에 부딪칠 수 있는 용기. 임계점을 향해 나아갈 뿐 아니라 임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향해 도움을 손길을 내밀 수 있고, 함께 티타늄 장벽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자녀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여지와 공간을 제공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결국 다라가 집으로 돌아왔고, 나나가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구원한 것처럼 우리 자녀들도 결국 부모에게로 돌아올 테니까요. 그것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없이 성장한 모습으로.



무엇보다 어른들도 모험과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이야기로 충만한 삶은 무언가에 도전하고 모험할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삶이니까요. 사회 통념이 있고, 여러 가지 견고한 장벽이 있고, 수를 헤아리기 힘든 지독한 편견이 있지만 우린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힘든 일이겠지요.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정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대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 끝에 우리는 너무나 가슴 벅찬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이야기, 누구도 믿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는 세상이 변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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