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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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쥐 vs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면? 다소 황당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무엇보다 지금 지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긴 어려워 보입니다. 지구에서 최후까지 생존할 생명체를 꼽으라면 바퀴와 쥐를 꼽을 수 있다는 점도 얼마든지 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는 천재 작가이자 기막힌 관찰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이란 소설의 테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라고 하니 "상상이 현실이 된다"라는 문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가 신뢰받는 작가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뉴욕으로 주 무대가 바뀝니다. 프랑스와 유럽 전역이 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과 고양이 개와 돼지는 배를 타고 뉴욕으로 도망치듯 출항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쥐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위성이 없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정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소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고 미국으로 출항한 것입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희망은 산산이 조각나고 맙니다. 그곳은 더 강력한 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미국 쥐는 더 큰 덩치와 강력한 근육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용맹했고 헤엄을 칠 줄도 알았으며, 게다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말입니다.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고 전쟁하는 동안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쥐들은 급격히 번식했을 뿐 아니라 각종 쥐약에 내성을 가졌습니다. 지성을 갖춘 지도자의 지휘와 근육질에 강력한 이빨을 가진 쥐 떼는 고양이나 개, 돼지와 사람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쥐가 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를 적으로 삼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아무런 두려움 없이 끝없이 몰려드는 쥐 떼를 감당할 수 있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탱크에 잠깐 밀려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단 하루 만에 탱크의 약점을 발견하고 탱크를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제3의 눈(사람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인공 장치)을 가진 티무르(프랑스 쥐의 수장)과 조직폭력배 두목을 연상케 하는 알 카포네(미국 쥐 수장)이 있습니다. 이 두 수장은 용맹할 뿐 아니라 침착한데다 상당한 지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탁월한 지도력까지 갖추어서 쥐를 군대처럼 조직하고 운영합니다. 무엇보다 티무르는 인류의 정보를 다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인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사람과 고양이는 쥐들이 올라올 수 없는 고층 빌딩에 거주하며 어떻게 이 난관을 풀어갈지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은 고층 건물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쥐들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몰려 있는 마지막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고양이와 사람은 쥐들을 제거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시도합니다. 안타깝게도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지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나운 쥐 한 마리를 생포한 것.

주인공(주인공은 고양이입니다) 바스테트는 이 쥐에게 제3의 눈을 달아주자고 제안합니다. 그가 제3의 눈을 갖고 지구와 자연과 인류의 문화유산을 목격하면 일종의 배반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바스테트의 말대로 과학자들은 그 쥐에게 제 3의 눈을 달아주고 그에게 폴(Paul, 기독교에서 바울, 또는 바울로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예수를 박해하다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된 인물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은 그야말로 배신자입니다)이란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가 쥐를 배신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누가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이 될까요? 쥐일까요? 아니면 고양이? 아니면 또다시 인류? 행성 두 번째 책을 빨리 펼쳐야겠습니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소설을 쥐는 바이러스 고양이와 인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는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인 다른 생명체로 대입해 보았습니다. 쥐가 창궐하고 번식하고 진화하면서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멸종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이제 남은 생명체라곤 쥐와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전부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고 지배자로 행세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이고, 지금 지구의 풍경을 보아도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좋은 지도자가 있을 때 모든 백성이 평화롭게 살았던 반면 탐욕스러운 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와 목소리로 증언합니다. 이 상황을 지구에 대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일까요? 아니면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지도자일까요?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지도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내성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고, 지독하고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부산행]과 같이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아니면 끔찍한 치명률을 가진 감기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도 있겠지요. 제2 제3의 코로나가 덮치지 말라는 법도 업습니다. 악랄하고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 아래 신음하던 민중이 견디다 못해 일어나 세상을 뒤집은 사건의 판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소설을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인류가 보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 후 풍자적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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