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이 여섯 가지가 어떻게 어머니랑 이어지는 걸까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씨니까 기막히게 연결시켜 냅니다. 지성에서 연결된 것이긴 하지만 어떤 것은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귤, 똑같은 뒤주, 똑같은 바다이지만 그 안에 누군가와 연결되면 스토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의미가 풍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전체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두 번째는 이마를 짚는 손
세 번째는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
네 번째는 나의 문학적 자서전입니다.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웁니다. 세상 사람이 꼽은 가장 아름다운 단어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단어가 "Mother(어머니)"였다고 하죠. 오래전 군인을 찾아가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여는 음악이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이 음악이 나오면 국군 장병은 숙연해졌습니다. 달구 똥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내는 장병도 있었고, 이를 악물고 버티는 장병도 보았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그만큼 따뜻하고 넓고 깊고 높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의 지성 이어령 님은 그만의 깊고 넓고 예리한 언어로 어머니와 관련한 여섯 가지 은유를 이야기합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머니와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사물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를 보여주는 깊은 글에서 어머니 향이 나는 듯합니다.
이마를 짚는 손은 감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어령 님은 독특하게 감기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는 겸상하지 않고, 사귀지도 않고, 가까이하지도 않겠다고 말합니다. 감기에 걸려본 사람이라야 타인의 따뜻한 손길을 체험할 수 있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느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진다는 데 이유를 둡니다.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면서 감기라는 질병을 통해 나의 열기와 타인의 체온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이어령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지 그가 주목해서 본 누군가의 이야기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어령 작가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고급지고 따뜻한 털 모자와 팽이를 바꾼 사건 때문에 한 소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년 시절 겪은 그의 이야기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일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그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털모자 같은 것을 들고 팽이 같은 것을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독자의 견해로 남겨둡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고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어령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 이 챕터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노아와 아브라함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나의 생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으며, 성경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참 깊게 다가왔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가지 결을 제공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나의 문학적 자서전입니다. 이어령 작가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땅 파기에 비유합니다. 워낙 비유를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신다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땅 파기를 문학과 연결시키고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는 간결함과 탁월성은 독특하기도 하거니와 무릎을 치게 만들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땅 파기라는 작고 소소한 일을 전혀 다른 각도로 보는 시선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시선'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어령 작가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땅속을 파보는 것은 땅속을 보기 위함이며, 저금통장을 깨뜨린 것 역시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저금통장 속이 궁금해서였습니다. 인형이나 장난감을 찢고 깨뜨린 것 역시 아무것도 없는 그 속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시선"이라는 이 단어가 어쩌면 이어령 선생님의 문학 세계를 잘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어령 작가의 글을 찾아가며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과 사물, 세상을 바라보고 뜯어보는 작가의 시선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그 아름다움을 적절한 언어로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담백하면서 예리하게 담아내는 능력은 정말 놀라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낳은 지성의 시선을 배우고, 그 시선과 생각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하는지 배울 뿐 아니라 이제 고인이 된 이어령 선생님과 책을 통해 대화 나누고 싶은 욕심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