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 봐요 - 판사 김동현 에세이
김동현 지음 / 콘택트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시력을 잃는다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일입니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상상하기 싫다고 해서 상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되니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2019년만 해도 일상을 빼앗기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피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상상하지 않았지만 상상하기 싫은 일이 불쑥 우리를 찾아오는 세상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는 일도 다르지 않겠지요.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리는 기분을 느낍니다. 판사 김동현 씨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단 십 분 만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이 증발해버렸습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그의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 [뭐든 해 봐요]는 판사 김동현이 시력을 잃고 난 후의 삶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시력이나 청력을 잃거나, 불의의 사고로 평생 휠체어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세상이 무너지고, 이전의 모든 것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기분을 느낍니다.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아갈 의지나 소망이 전혀 없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상실의 아픔과 장애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갑니다. 밥도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밥을 먹습니다. 맛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맛을 느낍니다. 다시는 웃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어떤 사람은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아픔을 뛰어넘고 이겨내기도 합니다(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매일 상실, 장애, 아픔을 직면해야 하니까요. 주변 사람의 시선에서 볼 땐 아픔을 뛰어넘고 이겨내고 뚫어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나의 눈에는 김동현 판사가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집중력과 타협으로 어느 날 찾아온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문제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판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담담하게 기록했을 뿐이지 그 과정이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업습니다. 책 한 권 때문에 노심초사해야 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그의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사회인지 그의 경험을 읽고 들으면서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들기도 했습니다. 김동현은 '쇼다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고요. 그것도 시력을 상실한 채. 초기에는 한 달 9만 배 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해내고도 김동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냥 덤덤하게 말합니다. 독자이자 한 사람으로 나는 그의 이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쇼다운 경기 모습


나의 작은 형은 중증 장애인입니다. 휠체어와 자동차, 전화가 형님의 발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을 겪으면서도 본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형님을 보고 있으면 존경의 마음이 생깁니다. 몇 해 전부터 통영 환경 연합회 회장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 선촌 마을 바닷가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영 환경 연합회의 수고로 바닷물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져 버린 잘피가 다시 생겼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여기저기 누비며 하나님 지으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물다 떠난 자리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우리 자녀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바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습니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판사 김동현 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소탈한 그의 성격에서,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뚫어낸 그의 인품에서 깊은 향기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 (97p.)

"인간의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다." (158p.)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기대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 인(人)이다." (174p.)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포용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212p.)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263p.)

(Leave No One Behin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