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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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해도 될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럴 수 있기를 나는 기대한다.

2021년 5월 아들딸과 함께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림책 제목은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저자의 토모스 로버츠의 이력이 특이했습니다. 프리랜서 겸 영화감독입니다. 코로나로 생활이 어려워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토모스 로버츠는 전염병학 교수인 아버지를 대신해 일곱 살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아직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 지금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고 그 고민 끝에 [위대한 깨달음]이란 그림책을 썼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을 돌아보며 느낀 것과 깨달은 것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영화감독다운 상상력과 통찰이 가득한 책이었고,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그림책이 위대한 깨달음이라면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코로나 시대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소설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80년. 앞으로도 58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지금 코로나 시대를 돌아보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장소는 제목처럼 이태리이며, 폭을 조금 더 좁힌다면 코로나로 치명상을 입은 밀라노입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초기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이태리였습니다. 노인이 많기도 했고, 중국인 부부로 인해 이태리 전역에 코로나가 번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태리 사람의 눈에는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구별이 어렵다는 점도 생각났습니다. 소설 시작 부분에 아시아인 피자배달부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마주친 피자배달부는 "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코로나가 이태리에 번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어떤 시선으로 중국인을 보았고, 아시아인을 보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하긴 그 어간엔 이태리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행동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치명률이 낮아서 그나마 다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부산행'이나 '감기' '나는 전설이다' 등의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치명률이 높았다거나,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바이러스였다면, 코로나가 중세를 강타한 흑사병과 같은 치명률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지역 봉쇄는 물론, 생필품 품귀현상, 온갖 종류의 폭력, 차별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 정도의 치명률이라는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한 아파트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이야기를 9살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혼란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인지 9살 남자아이의 눈으로 담아냈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시는 사람의 이야기가 공존합니다. 서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이 일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 서로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사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베풀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책 표지가 보여준 것처럼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아홉 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상당히 정제된 언어와 기분 좋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이 우리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추억은 항상 달콤한 기억은 아닙니다. 때로는 쓰라린 기억, 부끄러운 기억, 고통스러운 기억, 도려내거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까지 아우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희로애락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꼭 그럴 수는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부끄러운 일과 고통스러운 일, 도려내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은 어느 때라도 돌아보기 쉽지 않은 기억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답은 분명합니다. 오늘의 고통스러운 시간, 불편하고 까다롭고 어색하고 쓰라린 시간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고, 돌아보면서 웃음 지을 수 있고, 나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려면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최선이란 단어를 더 아등바등 사는 것이나, 성공을 향해 온갖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삶으로 해석하고 싶진 않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주변 사람이 보여준 것처럼 일상에서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삶을 공유하려는 노력으로 보고 싶습니다.

지금 나의 삶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 이 상황을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정부를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과 따듯한 눈빛을 주고받고, 소소한 인사를 나누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주고받으며 살아야겠습니다. 도움받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 내미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정 부분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욕심을 줄여나가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낸다면 굳이 2080년까지 가지 않아도(나는 그때까지 생존해 있지 못할 가능성이 99% 이상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코로나 시대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땐 참 힘들었어. 하지만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고,

서로의 소중함을 알았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와 이웃을 바라보게 되었어.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삶의 지혜를 많이 발견하고

배운 행복한 시간이었어!"


코로나 시대입니다. 어려운 시간입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말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것입니다. 환경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렵고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나는 여기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낼 것입니다. 나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을 물려줄 것입니다.

언젠가 이 위기의 시간을 추억하며 참 잘 살아냈다고, 그 시간이 오히려 소중했고 멋있어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오늘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나를 조금 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해야겠습니다. 이 소중한 생각을 다시금 일깨워 준 이태리 아파트먼트, 여러분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토모스 로버츠의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그의 영상도 붙여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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