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나는 이 당연한 말이 점점 더 자랑스러워집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한국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6년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랩실에 가보니 많은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SAMSUNG"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혼자 낄낄대는 저를 본 같이 일하던 미국인 학생 한 명이 왜 웃냐고 물어왔습니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야 너 이거 어느 나라 제품인 줄 아니? 이제 갓 20살을 조금 넘긴 그 남자 학생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호라, 한국을 안단 말이지? 속으로 생각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뭔가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웅장해지려는 찰나. "JAPAN"이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어찌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던지.

"SAMSUNG"은 한국 기업이라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믿질 않더군요. 한국에서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냐고 연신 물어왔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교실을 둘러보니 에어컨도 한국 제품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전자제품 깡그리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깜짝 놀라는 것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느려터진 미국 학교 랩실에 대해 불평을 쏟아놓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영화를 다운로드하면서 바로 볼 수 있다고 침 튀겨가며 이야기했습니다. 한참 쏟아내고 나니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일본"이란 한 단어 때문에 이렇게나 열을 내야 하다니?? 내가 이렇게나 애국자였단 말인가?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괜히 일본이 더 얄미워졌습니다.





나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음, 솔직히 말하면 여러 번 일본 땅을 밟긴 했습니다. 나리타 공항 땅을 여러 차례 밟았지만 비행기 환승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 아는 이유지만 이상하게 일본에는 정이 잘 가지 않습니다.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 얄밉기 짝이 없습니다. 도대체 저들 머리에는 무엇이 들었기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때론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질 않나, 온갖 수작질을 통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그들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껴안고 심각한, 정말 심각한 피해를 입은 나라와 국민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면 좀 좋으련만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저들을 보면서 도무지 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는 사고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레 독일과 비교할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안 되는 거야! 독일을 좀 보라고!!"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일본과의 경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일전이라면 축구는 반드시,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구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력의 차이가 명백하지만 그래도 일본에는 지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WORLD BASEBALL CLASSIC에서 일본을 이겼을 때의 쾌감이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에 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일본을 얼마나 알까? 일본 사람의 정서를 얼마나 알까? 일본이란 나라와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이해는 공감과는 분명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얼마나 노력했나? 그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나 이해하고픈 마음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었으니까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피지기 백전 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일본과의 관계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일본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해야 일본과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일본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의 정서와 일본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일일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만약 이 생각에 동의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나왔습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의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이란 책입니다.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작가 한민 씨가 일본 땅을 밟은 시간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일본에 살아 보지도 않은 한민 씨가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들의 정서를 깊고 넓게 무엇보다 정확하고 예리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루스 베네딕트 역시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채 일본이라는 나라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국화와 칼]이란 책을 썼지요. 어쨌거나 기가 막힐 정도의 예리한 통찰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파헤칠 뿐 아니라 그들의 심리까지 꿰뚫어 보여주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특별히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일본을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의 작품을 - 드래곤 볼, 슬램덩크, 북두신권, 무엇보다 미래소년 코난 등-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큰 틀에서 보면 무척 닮았을 뿐 아니라 같은 영역에 속합니다. 인종적으로도 닮았으며, 언어도 닮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대표적인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이나 일본인 모두 집단 내에서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닮은 구석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을 닮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큰 덩어리로 묶을 때 같은 범주에 들어갈 따름이지, 그 안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작가 한민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집요하게 파고들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나 한국과 일본이 다르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이란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공감하거나 그들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도 이 부분을 크게 강조합니다. 아마도 일본 편에 섰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크게 와닿고 유익했던 점은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과 내 겨레와 내 나라를 이해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를 설명하려니 당연히 우리나라의 특성, 우리나라 사람의 문화와 정서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고, 그 배경을 치밀하게 연구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어원을 찾아보기도 하고,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톺아보면서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진단했습니다. 이 부분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으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 먹방이 이렇게나 유행하는지, 쎈 언니가 왜 이렇게나 많은지, 온라인 게임을 왜 이렇게나 잘하는지, 왜 이렇게 우리는 떼창을 잘하며 떼창으로 내한 가수를 감동시키는지, 왜 욕을 이렇게나 많이 하는지, 왜 밤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며 카페에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이 왜 이렇게나 독특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보는 이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주제가 넘쳐납니다. 갑질 VS 이지메, 정 VS 아마에, 선을 넘는 한국인 VS 선을 긋는 일본인, 화병 VS 대인공포증, 산으로 가는 자연인 VS 방으로 들어가는 히키코모리, 한을 품은 한국 귀신 VS 자리를 지키는 일본 귀신, 삼세판 씨름 VS 단판 스모, '날 넘고 가라' 한국의 스승 VS '나만 따라 해라' 일본의 스승, 분노하는 한국인 VS 혐오하는 일본인, 한국의 어울림 VS 일본의 와, 한국의 알다 VS 일본의 와카루까지....책의 세부 내용을 전부 다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와 정서를 비교하는 일이 이렇게나 재밌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이렇게나 가까운 나라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문화와 정서의 차이로 인해 이렇게나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층 심리입니다. 말 그대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를 톺아봅니다. 왜 우리에겐 이런 정서가 있고 문화가 생겨났는지, 왜 저들에겐 저런 정서가 있고 그런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다소 학문적인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저자 한민의 역량과 지적 함량을 엿보기에 충분한 장이었습니다.




책을 마치면서 저자 한민은 한국을 종의 나라로 일본을 칼의 나라로 묘사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의 성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

인플루언서'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한국인들은 누가 나를 무시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면 화병이 납니다.

현실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차이가 날 때

굉장한 불편감을 느끼고

그 차이를 메꾸려고 무섭게 노력하기도 하지만,

안되겠다 싶으면 허세로라도 자신의 영향력을 과장하죠.

특히 한국에 목소리 큰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과 크고 멀리까지 가는 소리를 내는 종,

따라서 종이야말로 모든 것을 자신의 세계 안에 아우르고 싶어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주위에 널리 퍼지기를 원하는

한국인들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상징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과연 언제부터 이런 사람들이었을까요?....

일단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을 만든 시기가

최소 통일신라 시대고요.

이미 단군신화에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우리가 이런 건 생각보다 오래전부터였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선은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369p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본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그야말로 탁월하며 압도적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를 더 깊숙하게 더 정확하게 더 바르게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최소화할 때 우리는 더 좋은 나라, 더 강한 나라, 더 매력적인 나라로 발돋움할 테니까요.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란 나라(개인적으로 참 정 안 가는 나라지만)를 더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강점을 알고, 약점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그들을 존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할 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외쳐 봅니다.

한국인답게 떼창으로 소리 질러 보면 더 좋겠지요

지피지기 백전 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한민 작가의 브런치 글도 한 토막 추가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