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에 콕콕 박히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다. 몇몇 문장을 소개하는 것이 미덕이리라.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15p)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20p)
"그도 꽃다운 시절이 있었고 결혼을 했다. 천지신명께 백년해로를 맹세했고 친척 친구들에게 앞날의 축복받으며 착한 여자의 지아비가 되었고, 지금 이 구걸도 그 무겁고 무서운 지아비 노릇이다라는 생각이 뭉클하니 내 심장 언저리를 뜨겁게 했다." (4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적당히 조화된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46p)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흐느끼고 싶은 잔잔한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치올랐다." (64p)
"조금 덜 바빠져야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한가하고 싶다." (67p)
"너무 잘해주는 친척 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74p)
"가장 궁핍했던 시절을 넉넉한 마음 하나로 가장 부자스럽게 살게 해주신, 그래서 그 시절만 회상하면 저절로 환한 미소가 떠오르게 해주신 어머니가 새삼스럽게 자랑스럽다." (91p)
"그건 이미 단풍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 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이 거기 이었다." (115p)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 (1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