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허 산은 마을에서 단연코 인기였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백호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고 강아지 젖을 먹고 자랐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백호 허 산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여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허 산과 함께 있으면 저절로 봉인 해제가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허 산에게 술술 털어놓게 되지 뭐예요... 허 산은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거나 섣부르게 답을 내놓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들어줄 따름이었지요. 누구의 이야기라도 잘 들어주고, 공감하고,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허 산은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같은 호랑이었답니다.
게다가 허 산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털어놓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늘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그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하는 허 산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단번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허 산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별스러운 이야기, 어른이 보기엔 하찮은 이야기까지 말이에요. 그것도 하찮다거나, 별스럽다거나, 유난스럽다는 표정이나 말없이 진지하게 들어주었답니다.
백호 허 산의 삶은 우여곡절이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랍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허 산을 강탈하듯 빼앗아 갔으니까요. 그곳에서도 허 산은 그 욕심쟁이의 말을 다 들어 주었습니다. 아무런 평가나 비판 없이 말이에요.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욕심쟁이는 허 산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허 산을 원하게 되었답니다. 산이는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겐 항상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는 말만 해주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살피면서 자신이 원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었어요.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허 산 때문에 역병 귀신도 억울한 마음을 풀었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산짐승과 마을 사람까지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되었어요.
허 산의 경청하는 태도와 지혜로운 대답과 너무나 인간적인(인간이 아니라 백호인데 말이에요) 충고를 따른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심지어 곡마단에 소속해 있던 동물들까지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허 산은 아무 욕심 없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고 충고했지만 자기 마음을 살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동물도 있었어요.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과 동물도 있었어요. 그들의 삶 전체가 불행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 자신만이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진짜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가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이야말로 불행한 삶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요.
허 산은 다른 사람에게만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자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어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허 산은 모든 산신령의 추천을 받아 다음 산신령으로 추대를 받았답니다.
산신령은 영광스러운 자리, 누구나 오르고 싶은 자리였습니다. 경쟁률이 무려 수백만 분의 1이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자리였어요. 그러나 산이는 그 자리를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왜냐고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산이의 마음은 산신령의 자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서 지금처럼 자유롭게 사는 삶을 향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국 산이는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의 삶을 살았어요. 그야말로 행복한 삶, 살아낼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