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 특서 어린이문학 1
이상권 지음, 전명진 그림 / 특서주니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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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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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년 전부터 내리 호랑이 족 수험생이 산신령이 되었다.

이러다가는 우리 늑대족 산신령의 맥이 끊어지는 것 아니냐?

어찌하여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말해 보거라!"


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가 탄생한 모티프입니다. 호랑이족에서 태어난 어린 백호는 영문도 모른 채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눈꽃이 피다'라는 어미 호랑이는 아기 백호를 허절구라는 사람이 사는 집 누렁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꽃이 피다는 결국 아기 백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떨결에 백호를 기르게 된 허절구는 얼마 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형 '허 산'은 병마로 생명을 잃고 말았지요. 허절구는 동생 허 산이 백호와 쌍둥이처럼 뒹굴며 노는 것을 보고 백호에게 '산'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백호가 허 산이 되었습니다. 허 산이에게는 동생 허 강이 생겼고, 동생 허 강이에게는 백호 형님 허 산이 생겼습니다.


백호 허 산은 마을에서 단연코 인기였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백호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고 강아지 젖을 먹고 자랐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백호 허 산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여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허 산과 함께 있으면 저절로 봉인 해제가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허 산에게 술술 털어놓게 되지 뭐예요... 허 산은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거나 섣부르게 답을 내놓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들어줄 따름이었지요. 누구의 이야기라도 잘 들어주고, 공감하고,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허 산은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같은 호랑이었답니다.

게다가 허 산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털어놓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늘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그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하는 허 산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단번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허 산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별스러운 이야기, 어른이 보기엔 하찮은 이야기까지 말이에요. 그것도 하찮다거나, 별스럽다거나, 유난스럽다는 표정이나 말없이 진지하게 들어주었답니다.

백호 허 산의 삶은 우여곡절이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랍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허 산을 강탈하듯 빼앗아 갔으니까요. 그곳에서도 허 산은 그 욕심쟁이의 말을 다 들어 주었습니다. 아무런 평가나 비판 없이 말이에요.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욕심쟁이는 허 산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허 산을 원하게 되었답니다. 산이는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겐 항상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는 말만 해주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살피면서 자신이 원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었어요.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허 산 때문에 역병 귀신도 억울한 마음을 풀었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산짐승과 마을 사람까지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되었어요.

허 산의 경청하는 태도와 지혜로운 대답과 너무나 인간적인(인간이 아니라 백호인데 말이에요) 충고를 따른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심지어 곡마단에 소속해 있던 동물들까지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허 산은 아무 욕심 없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고 충고했지만 자기 마음을 살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동물도 있었어요.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과 동물도 있었어요. 그들의 삶 전체가 불행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 자신만이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진짜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가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이야말로 불행한 삶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요.

허 산은 다른 사람에게만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자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어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허 산은 모든 산신령의 추천을 받아 다음 산신령으로 추대를 받았답니다.

산신령은 영광스러운 자리, 누구나 오르고 싶은 자리였습니다. 경쟁률이 무려 수백만 분의 1이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자리였어요. 그러나 산이는 그 자리를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왜냐고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산이의 마음은 산신령의 자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서 지금처럼 자유롭게 사는 삶을 향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국 산이는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의 삶을 살았어요. 그야말로 행복한 삶, 살아낼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았답니다.


이상권 작가의 [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자녀와 우리의 자녀에게로 마음과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질문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부모나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우리의 자녀가 떠올랐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정의해 놓은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요지경이다 보니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건물주가 되고 싶은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놀고먹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니면 배당주가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투자 잘해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라는군요.

요즘엔 연예인이 꿈이라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뿐 아니라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에 나오는 반쪽이 곡마단에 나오는 수많은 동물이 연예인이 되고자 죽도록 연습하는, 그것도 본인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마르고 닳도록 연습하는 연습생의 이야기처럼 읽혔습니다. 사육사들은 그들을 제단하고 자릅니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려 합니다. 각 동물의 개성을 존중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인지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 동물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뛰어난 재능과 개성을 가진 우리 자녀가 떠올랐습니다.


건물주, 배당주, 또는 연예인. 글쎄요. 그것이 진짜 자기 마음이 들려주는 삶이며 이야기인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인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 전혀 귀 기울여 듣지 않은 선택처럼 보입니다. 이상권 작가는 지혜로운 백호 허 산을 통해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을 건네도 또 건넵니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좋은 거야!"

나의 마음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될 때도 있답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하고 주변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연습도 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조율하는 연습도 필요해요. 학교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나를 더 잘 발견하고, 나의 재능과 나의 관심과 나의 마음이 흘러가는 곳을 잘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도 해야 하고, 독서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경험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말만 따라서는 안 돼요. 설령 부모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덮어놓고 부모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결국 나의 삶은 사라지고 말아요. 부모님이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어요. 물론 나 역시 부모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요.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해요. 산이 말해 준 것처럼 우리 마음이 흘러가는 곳이 어디인지, 나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신중하게 잘 살펴보아야 할 책임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있어요.

나의 마음을 잘 살핀 후에 나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면 후회가 없을까요? 꼭 그렇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후회가 덜 할 거예요. 내가 원한 삶이었으니까요. 그 삶을 통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내가 살아가는 곳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멋진 삶, 최고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의 삶을 탐구해야 할 우리의 자녀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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