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한국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13살 어머니가 12살 되던 해 한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나의 고향 통영에서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할아버지가 마을 이장이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온 마을을 채운 피난민과 군인을 보았습니다. 네것 내것 없이 물자를 공유하고 음식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군인이 몰려와 식사하던 때를 기억하셨습니다. 자다가 깼더니 그 많던 군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바로 옆 산에서 밤이 새도록 총성과 폭탄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날이 밝자 산에서 수많은 시체와 부상병을 마을로 후송하는 장면도 고스란히 목격하셨습니다. 머리에 총을 맞은 군인도 목격하셨습니다.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군 지휘부가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통영에 들어왔던 모든 공산군을 섬멸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전투에서 패했다면 어쩌면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 마을에는 저 유명한 백마고지에서 살아돌아오신 어르신이 한 분 계셨습니다. 다리에 총을 맞아 절뚝거리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으론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오신 이후 한동안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늘 비명을 지르고, 악몽에 시달리셨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오셔서도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옆자리를 주먹으로 치셨다고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 셈입니다. 현충일이 되면 군복을 차려입으시고 훈장을 다신 어르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은 사병 출신인데 장군들이 선배님으로 깍듯이 모셨을 뿐 아니라 먼저 경례를 붙이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만약 그 어르신이 글 쓰는 재주가 있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의 참상을 오롯이 몸으로 겪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으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