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DNA -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
앤드루 로버츠 지음, 문수혜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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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인류가 전쟁 없이 평화를 누린 날이 과연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역사 자료를 연구한다면 그런 날이 얼마나 턱없이 부족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전쟁이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전쟁 중입니다(휴전은 종전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로 눈을 돌리면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이 신음하고,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지만 전쟁을 끝낼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은 장악했습니다. 카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여인과 어린아이는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현장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로 다큐, 책과 상상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쩌다 보니 2차 세계 대전에 관심이 많고, 특히나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관심이 많습니다. 2019년 여름엔 대학생을 이끌고 독일 본토를 방문, 유대인 학살 기념관과 유대인 학살 기념공원, 악명 높았던 작센하우젠 수용소를 방문했습니다.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졌으며, 숙연해졌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한국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13살 어머니가 12살 되던 해 한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나의 고향 통영에서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할아버지가 마을 이장이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온 마을을 채운 피난민과 군인을 보았습니다. 네것 내것 없이 물자를 공유하고 음식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군인이 몰려와 식사하던 때를 기억하셨습니다. 자다가 깼더니 그 많던 군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바로 옆 산에서 밤이 새도록 총성과 폭탄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날이 밝자 산에서 수많은 시체와 부상병을 마을로 후송하는 장면도 고스란히 목격하셨습니다. 머리에 총을 맞은 군인도 목격하셨습니다.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군 지휘부가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통영에 들어왔던 모든 공산군을 섬멸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전투에서 패했다면 어쩌면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 마을에는 저 유명한 백마고지에서 살아돌아오신 어르신이 한 분 계셨습니다. 다리에 총을 맞아 절뚝거리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으론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오신 이후 한동안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늘 비명을 지르고, 악몽에 시달리셨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오셔서도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옆자리를 주먹으로 치셨다고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 셈입니다. 현충일이 되면 군복을 차려입으시고 훈장을 다신 어르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은 사병 출신인데 장군들이 선배님으로 깍듯이 모셨을 뿐 아니라 먼저 경례를 붙이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만약 그 어르신이 글 쓰는 재주가 있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의 참상을 오롯이 몸으로 겪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으셨으니까요.




전쟁의 승패는 지휘관(지도자, 리더)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승자의 DNA의 저자이자 런던 킹스칼리지 전쟁사 교수인 앤드루 로버츠 역시 이 점을 주목합니다. 300년 전쟁사를 연구하며 그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지도자이자 지휘관을 면밀히 연구했습니다. 그의 연구 대상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지도자입니다.

1장: 왜 누구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하는가

- 겸손한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2장: 나는 항상 15분 앞서 있었다

- 타고난 포식자 호레이쇼 넬슨

3장: 결핍은 어떻게 운명을 역전시키는가

- 울보 수상 윈스턴 처칠

4장: 오직 자기 자신을 믿어라

- 승리의 설계자 조지 마셜

5장: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 위대한 방패 샤를 드골

6장: 계획은 무용하나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 550만 군의 지휘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7장: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 타협 없는 사자 마거릿 대처

8장: 거짓말을 하려면 최대한 크게 해야 한다

- 20세기의 지배자 아돌프 히틀러

9장: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 공산권의 일인자 이오시프 스탈린


모르기가 어려운 사람의 명단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의 흔적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 훌륭한 이야기꾼의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들의 속 사정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쉽게 말해 재밌다는 뜻입니다.

또한 각 사람마다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말도 안 되는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성품이 얼마나 괴팍한지, 그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영웅적인 이야기로 미화하지 않고 그들이 진면목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끝자락에서 저자 앤드루 로버츠는 자신이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지도자가 갖추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1. 몰입 - 승리할 미래를 통째로 외워라

2. 신념 - 더 굳세게 믿는 자가 이긴다

3. 언어 - 모든 위대한 존재는 문학가다

4. 근성 - 단 한 대도 얻어맞지 마라

6. 겸손 - 싸움은 최후의 수단이다

7. 책임감 - 그 누구도 당신 대신 비난당해 줄 수 없다


이 주목할 만한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히틀러와 스탈린에게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교사도 교사니까요) 위대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앤드루 로버츠는 "위대함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그는 9명의 사람으로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후천적 노력으로 누구나 위대한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낯설고 이상한 세상에서도 승리자의 멘탈, 승리자의 DNA를 갖춘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저자 앤드루 로버츠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혹하다. 지금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전쟁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잔인하고 냉정한 세계의 질서에 압도되어 울타리를 쌓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사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며,

움막을 걷어차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기 살기로 맞서는 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전자의 삶을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안전하며 실패할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승자의 DNA 333p.

모든 위대한 문학가와 인문학자가 그렇듯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우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계속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승자의 DNA 334p


전쟁 영웅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그들은 모두 비합리적으로 살아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따라간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을 뚫어내려고 미친 듯이 살아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겠지요. 이 당혹스럽고 낯선 세상, 전쟁과 같은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비합리성을 보이는 사람. 이 위대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또다시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미친 것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삶도 꽤나 근사한 삶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승자의 DNA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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