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함께 산책을 -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여행하는 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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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니체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어야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 자료와 인터넷 자료, 그리고 몇 권의 책을 참고했습니다

1.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 10. 15 ~ 1900. 08. 25)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던 니체의 별명은 '망치를 든 철학자'였습니다. 니체는 기독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고 매진했으며, 비이성적인 것은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전체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파시스트에게 왜곡되어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 니체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이라면 아마도 '신은 죽었다'라는 말일 겁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놀랍게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그것도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신은 죽었다고 말했지요. 니체가 5살이 되던 해 니체의 아버지가 심한 두통을 호소한 후 돌연 사망했습니다. 6개월 뒤에는 막냇동생마저 잃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죽자 가족은 목사의 영지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 사망 보상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이 무척이나 불행했다는 것과 교회로부터 당한 거절이 그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 것 같습니다.

3. 24살에 리츨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 바젤 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로 취임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를 무척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특히 바젤에 있는 동안 바그너와 가까운 사이로 지냈습니다. 니체의 입장에서 볼 때 바그너는 변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바그너가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결국 바르트와도 결별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바그너도 니체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4. 1889년 니체의 친구 오버베크는 바젤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불면증과 견딜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던 니체가 광기 어린 행동을 일삼았고, 괴이한 춤을 추었으며, 저속한 단어와 욕설을 남발했기 때문입니다. 1890년 정신 병원에서 나왔지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세월을 보내던 니체는 결국 1900년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지만 교회에서 기독교 장례를 치르고 목사 아버지 옆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니체는 산책을 즐겼습니다. 즐겼다는 말로는 아쉽습니다. 거의 매일 상당히 빠른 속도의 걸음으로 몇 시간씩 걸었습니다. 궂은 날씨도 산책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니체가 이렇게나 산책을 즐겼던 것은 산책 자체가 주는 유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산책을 통한 명상을 즐겼으며, 산책하면서 더 깊은 사유의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니체와 산책은 니체가 즐겼던 산책을 모티브로 하여 더 깊은 명상과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고, 명상과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입문서처럼 보입니다.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이 책에서 불교의 선과 니체의 명상을 한 묶음으로 봅니다. 불교의 선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불교에서 말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선(禪) 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아적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신집중의 수행 방법",

또는"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 수행법"

'선'이란 깊은 명상과 사색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깨우치는 수행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니체가 불교를 접하고 알았는지, 불교에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선을 알았는지, 선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산책에 접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니체가 선을 알았던 몰랐던 상관없이 니체가 즐겼던 산책, 산책을 통한 명상이 불교에서 말하는 선과 상당한 부분 닮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체와 함께 산책을]의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니체의 명상을 불교의 선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아마도 저자가 명상과 관조를 중요하게 여기고 가르치는 불교의 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이 책은 니체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1부 철학자처럼 자유로워지는 법에서 저자는 니체, 괴테, 릴케, 프롬, 부버, 다이세쓰, 도겐 선사 등 명상과 관조를 생활화했던 위인을 포함합니다. 니체만 명상과 관조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여러 사람이 명상과 관조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통해 명상과 관조의 삶이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불교에서 가르치는 선을 전파하고 싶은 열정을 숨기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2부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 법에서는 나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관조와 명상을 생활화하며, 누구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기독교의 구원과는 사뭇 다릅니다. 구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구원은 1.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 2. 하나님 없는 삶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3.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온갖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니체와 함께 산책을]은 오늘처럼 분주하고 번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명상과 관조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지나치게 일에 휘둘리거나, 욕망에 집착하는 삶을 정돈하게 합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잠깐 멈추어 서서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진지하게 일독해 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책이 지나치게 두껍지 않은 것, 읽기 쉽게 편집해 놓은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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