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일상 - 천천히 따뜻하게, 차와 함께하는 시간
이유진(포도맘) 지음 / 샘터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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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거야?"

어린 시절 누나가 마시는 녹차 맛을 보고 난 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입니다. 녹차를 좋아했던 누나는 종종 녹차를 우려 마셨습니다. 티백에 담긴 녹차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아, 가끔 누군가가 고급 진 차를 선물해 줄 때도 있었습니다. 귀한 녹차를 손에 들고 행복한 얼굴로 차를 마시던 누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때도 나의 생각은 단호했습니다.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마신다는 거야?"

나이가 들어 대학에 입학한 후였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한껏 폼을 잡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전통찻집이 유행처럼 번져갔습니다. 나도 몇몇 친구를 따라 전통찻집을 찾곤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한 전통찻집에서 녹차를 시켜 놓고 몇 번이나 우려내 마셨던 일입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친구와 전통찻집에서 차 마신 이야기가 기억할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내가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은 진짜 배 터질 정도로 차를 우려 마셨기 때문입니다. 녹차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친구 따라 전통찻집에 몇 시간 죽치고 앉아 수없이 녹차를 우려내 위장을 오롯이 녹차로 채운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겐 너무나 특별한 날이어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후로 녹차를 자주 마셨습니다. 티백 안에 갇혀 있는 녹차가 대부분이었지만 녹차를 즐겨마셨습니다. 심지어 녹차에 커피믹스를 타 마시기도 했습니다. 일명 "녹커피" 나는 "록커피"라 불렀습니다. Rock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Rock-Coffee'라 불렀습니다. 카페인 덩어리라도 불러도 좋을 음료를 종종 마시며 록음악을 듣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다다 보니 차를 잘 모르지만 차를 좋아하게 되었고 종종 마시곤 했습니다. 차 소믈리에 이유진의 [차와 일상]을 읽으며 떠오른 단상입니다.



나는 차 소믈리에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소믈리에는 와인에만 해당하는 전문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크게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차 소믈리에 이유진은 오랜 시간 쌓아온 차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 들려줍니다. '아침의 차', '오후의 차', '저녁의 차', '주말의 차'라는 네 개의 범주로 나누어 빼곡하게 차 이야기, 차에 얽힌 사람 이야기를 엮어 놓았습니다.

전혀 몰랐던 세계를 엿본, 아니 자세하게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차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 때에 알맞은 차가 있다는 것, 차를 우려내는 도구도 다양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의 무식함 때문이겠지만 차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차를 배우고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차 소믈리에 엄마의 영향이겠지만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이 차를 좋아하고 즐겨 마신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기 좋아하는 차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차와 어울리는 음식을 준비해서 먹고 마시는 풍경도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녀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것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일화입니다. 차 소믈리에 이유진의 슬하에서 자란 딸과 아들이 탄산이 아니라 차를 먼저 찾고 마시는 데도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고 대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이래서 환경이 중요한 것이겠죠.

이 대목에서 차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나는 나의 아들과 딸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죠. 나는 나의 자녀가 바른 사람, 반듯한 사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유진의 차와 일상에서 다시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유진은 책에서 다양한 차를 소개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차를 마셔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실제 오후 시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차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루이보스 티를 마시기도 했고, 블랙 티와 로즈힙 그리고 애플이 기막힌 배율로 섞인 차를 우려 마시기도 했습니다. 차 이야기를 읽으면서 차 한잔 마시지 않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차를 가르치고 차를 우려내는 솜씨만큼이나 글솜씨가 좋은 이유진을 읽으면서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정갈한 언어로 향긋한 차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진 차 소믈리에를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나는 차 소믈리에 이유진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차에 얽힌 그녀의 삶, 차를 빼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을 듣고 보았고 읽었기 때문이겠지요.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도 정성 들여 우려낸 향기로운 차를 마신 듯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집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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