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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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하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죽음이 저 멀리 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이며,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죽음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을까?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까?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고 탄식하며 허무하게 살아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그와는 정반대의 결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길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공식은 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에 함몰된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이자 미국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죽음을 지켜본 의사 이유진 씨가 [죽음을 읽는 시간]이른 책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섣부른 결론은 아닙니다. 호스피스 전문가이자 정신과 의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죽음을 대면한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삶을 공유하고,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하면서 내린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입니다.

천 번의 죽음과 천 번의 삶을 기록한 책 죽음을 읽는 시간


죽음이란 단어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좋은 죽음을 말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지만 죽음이란 말 자체가 가진 무게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죽음을 대면해야 하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국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 인간다운 죽음을 생각해야 할 운명입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이유진은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시선을 진지한 언어 동시에 매우 겸손하고 따뜻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어쩌다 보니 최근 죽음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따뜻한 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특별히 좋은 죽음,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그녀의 시선과 마음가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무력함, 사람마다 제각각인 죽음에 대한 반응, 그에 대해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인간적으로 담아놓았습니다. 의사로서 환자의 마음을 만지기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의료 행위와 약을 통해 친절하게 돕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전문가의 수고와 친절함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이유진 작가가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닐 것입니다. 책을 읽고, 이유진이란 사람을 읽으면서 그 안에 스며든 무엇으로 읽어냈을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나 진지하게 솔직하게 접근하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죽음을 수없이 목격하고, 손에 잡을 듯 죽음 가까이에 있었던 이유진은 수없는 죽음을 목격한 후 오히려 삶에 대해 말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상실감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평생 겪어내야 할 예외 없는 아픔이다.

잃어가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이 고맙고 애틋해진다.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내 삶을 한 번쯤 더 돌아보고

남은 삶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채워갈 의지를 품어보게 된다.

결국 덜 아픈 이별을 위해 나의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이다. 111p.

죽음이 예고되었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가 되어주었던 이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남겨질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179p.

죽음의 공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후회 없이 살다가 언제일지 모를

그 끝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이다. 185p

죽음, 그 자체보다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삶을

우리는 더 두려워해야 한다. 200p

매일 밤 잠에 들 때 우리의 삶은 잠시 멈춘다.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받고

의식을 잃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흐르지만 우리의 삶은 멈춘다.

수면과 마취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죽음의 경험이다.

죽음을 미리 연습하며 우리는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205p


목사로 살면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성도의 죽음 앞에 서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성도를 방문하기도 하며, 그들의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할 때조차 목사이기 때문에 어렵게 입을 열어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보다는 조금 더 죽음을 대면할 기회가 많고, 생각할 기회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삶이 버거울 때면 일찍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곤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생각,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 지나치게 고통받지 않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의 하나님께 종종 좋은 죽음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죽음을 읽는 시간]을 읽으며 다시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더 깊숙이 죽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유진의 말처럼 죽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지금 오늘 여기서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피워야 할 꽃을 힘껏 피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자신만이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낼 때,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변합니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가 더없이 허전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비록 죽음이 갈라놓지만 함께한 소중한 추억과 기억으로 남아 죽음을 뛰어넘습니다. [죽음을 읽는 시간] 좋은 죽음을 위해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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