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거칠부 지음 / 책구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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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한 해 전 2019년 여름이었습니다. 대학생 6명과 나를 포함한 어른 3명이 총 9명이 16박 17일 유럽 비전트립을 떠났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다시 독일로 와서 귀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기온이 38도를 웃돌았습니다.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마드리드에서 톨레도, 톨레도에서 풍차마을 콘수에그라, 콘수에그라에서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자하라, 코르도바, 세비야까지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도착지마다 하루 15킬로에서 많은 경우 20킬로 가까이 걸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또다시 이곳에 방문한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거니와 더 많은 곳을 보며 느끼고 싶어 일정을 빠듯하게 잡았습니다. 스페인은 해가 늦게 져서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자려고 누우면 보통 자정에서 1시 사이였습니다.


대학생들의 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일정이 빠듯하고 힘들어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때 이런 고생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보겠냐며,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미친 듯이 걷고 운전하고 눈과 마음에 더 많은 장소와 사람과 느낌을 담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체력이 고갈되도록 다니고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코피까지 흘려가며 따라왔다고 하더군요.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페인 일정을 마치고 포르투갈에서도 일정은 빡빡했습니다. 노숙자, 집시 마을, 마약촌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통기타 하나로 반주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즉흥적으로 10수회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우면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피곤했지만 몸과 마음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끓어올랐습니다. 독일에 갔을 때 비로소 여유 있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청년들은 그제서야 한숨을 몰아쉬며 비전트립에 더 깊이 몰입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사진을 보면서 그 시간을 그 장소를 그때 만났던 사람을 추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스페인 말라가의 왕의 오솔길.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16박 17일의 짧지 않은 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내며 갈등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돌아다니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잘 극복했던 그래서 더 소중한 기억으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의 이 짧고 럭셔리한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길을 걸은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읽으며 그 순간이 떠오른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네팔, 파키스탄, 티베트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K2와 같은 이름은 늘 마음 저 구석에서 생각만 해본 이름이자 장소였습니다. 그곳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드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전문 산악인들에게만 허락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가끔 가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거칠부를 만나기 전까진 말입니다.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라는 책은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수천 킬로를 걸어 다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녀가 거기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마음을 훔쳐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기록하거나, 글솜씨가 좋다면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담은 그녀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나의 상황과 환경을 생각하면 내가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땅을 눈과 마음에 담지 못하고 그곳을 밟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더 욕심이 났습니다(물론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지요. 언젠가 내가 그곳을 눈과 마음에 담고 나의 두 발로 밟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히말라야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을 뿐 아니라 뛰어난 글 솜씨로 그녀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멋지게 담아낸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있다는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책은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광활하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파키스탄 일반 정보를 소개합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빼곡하게 제공합니다. 굳이 히말라야가 아니라도 파키스탄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각 챕터를 마칠 때마다 거칠부는 트레킹 지도와 고도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기록으로 남길 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 생각했습니다. 각 챕터마다 그녀가 만난 숨 막히는 풍경을 멋진 사진으로 촘촘하게 담아두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히말라야를 눈에 담은 것 같은, 그곳을 밟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미국 여행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진작가라 하더라도 자연을 다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1/10 심지어 1/100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동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광활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거칠부가 탐사하듯 다녀온 흔적은 각 장으로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Chapter 1. 벌거벗은 산 ㅣ낭가파르바트 페어리 메도우 / 루팔

Chapter 2. 빙하 대탐험 ㅣ비아포 - 히스파르빙하

Chapter 3. 신들의 광장 ㅣK2 트레킹 - 곤도고로라

Chapter 4. 비밀의 정원 ㅣK6, K7 베이스캠프 / 아민브락 베이스캠프

Chapter 5. 파미르 오아시스 ㅣ 심샬 파미르

Chapter 6. 위대한 풍경 ㅣ 스판틱 베이스캠프

Chapter 7. 위태로운 길 ㅣ 라톡 베이스캠프

Chapter 8. 야생화 천국 ㅣ 탈레라 / 이크발탑


나에겐 모두 낯선 이름이지만 산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럭셔리한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힘이 듭니다. 가족이라도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물며 고산지역을 낯선 사람과 다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도 고백합니다. 인상에 비해 좋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었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하고, 서로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입니다. 참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아마도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히말라야라는 지구의 지붕을 탐색한 사람다운 단단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말라야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그 넓고 광활한 곳을 오르내기 위해 체력은 필수입니다.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비상약에서부터 여벌 옷과 등산화까지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면 끝까지 해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그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마음을 나누는 절묘한 줄타기를 해내야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뿐 아니라 히말라야 트레킹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히말라야와 같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을 여행한다면 인생을 더 깊이 돌아보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거칠부의 시선을 따라 가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친절해야겠지요. 그렇다고 속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멋지게 완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여벌의 신발과 비상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히말라야와 같은 산을 트레킹 하기 위해선 팀을 꾸려야 합니다. 짐을 나르는 포터가 있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며,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일에 충실할 때 아름답고 멋지게 여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 걷는 사람,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이란 여정은 히말라야보다 거칠고 높고 광활합니다. 그 길을 잘 걸어내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걸어갈 동료가 필요합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으며, 친구나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일 수도 있겠죠. 각 사람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신뢰할 때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쩍쩍 입을 벌린 크레바스나 휩쓸려 내려가는 강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리를 건너야 할 때도 있겠고,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갈 때도 있을 겁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 길을 건넌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다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때를 돌아볼 날이 있겠지요. 참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살았던 시간으로 추억하기 위해, 그때 웃으며 이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지금을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읽으며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잘 걸어가기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습니다. 힘겨운 시간을 지나는 분들,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 언젠가 히말라야를 밟아볼 마음을 가지신 분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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