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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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읽고 싶었습니다. 책을 사들고 난 후에 난 읽지 않았고, 지금도 읽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해질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내가 봐도 내가 참 웃기는 인간인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나는 애니 딜라드의 자연의 지혜를 읽고 싶었습니다. 절판된 책이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할 수 없다고 하니 더 구해서 읽고 싶었습니다. 중고책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구매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재고가 남았는지 조사해 달라고까지 부탁했습니다. 아쉽게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나 오래된 서점에 재고가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여러 서점에 전화를 걸어 재고 조사까지 부탁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렇게까지 했나 싶어서 또 우습긴 합니다. 결국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그렇게나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읽으면서는 그렇게나 읽고 싶어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애니 딜라드의 자연의 지혜는 내가 얼마나 변덕스러운 인간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책꽂이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소로의 월든을 이제 읽어야 할 차례입니다. 소로를 좋아하면서도 소로의 월든을 읽지 않은 인간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으면서 소로를 읽어야겠다는 확신, 이젠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비로 온 세상이 습습한 느낌처럼,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으며 월든이 내 마음 여기저기에 습습하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서천 국립생태원에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국립생태원을 구경하다가 소로의 집을 본따 만들어 놓은 장소를 만났습니다. 아내와 아들딸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고 나는 기어이 그곳으로 가서 소로를 떠올렸습니다. 그가 살았던 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상상해 보았고, 그가 남긴 말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장소 앞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심심찮게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요즘, [월든]이란 책이 많이 읽히는 요즘의 시선이 아닌 당시의 시선에서 보면 소로는 한마디로 골때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립생태원 어느 한쪽 구석에서 만난 소로의 흔적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 하나는 저자 박혜윤이 글을 잘 쓴다는 것입니다. 단박에 써내려간 글인지, 곱씹으며 쓴 글인지, 얼마간의 퇴고를 거친 글인지, 출판사와 어느 정도로 옥신각신했을지가 조금 궁금하긴 했습니다. 나의 눈에 보기에 글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저자 박혜윤은 기자 출신이었습니다. 게다가 교육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글쓰기가 저자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법한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생각 하나는 저자가 소로를 좋아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소로의 월든을 진심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월든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로의 월든을 좋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 박혜윤이 월든을 읽으며 소로의 생각을 따라잡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과 소로와 대화를 시도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 점도 저자가 소로나 소로의 월든을 좋아한다고 짐작하게 한 이유입니다. 결정적인 이유 하나는 그녀 역시 소로처럼 워싱턴 주 시골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자 출신이었다가 교육 심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시골 촌구석으로 들어가 빵 굽고, 야생 블랙베리 따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도 없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커피와 와인도 거절하고 산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도대체 왜?" 책을 읽으며 내가 만난 저자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아니면 "이렇게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실제로 살아보니 재밌기도 하고 말이야" 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내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삶의 본질적인 면과 대면해 보려는 것이었다."


저자 박혜윤의 독백 같은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글을 읽으면서 소로의 저 말이 떠올랐습니다. 실제 물어보면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혜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삶의 본질적인 면과 대면해 보기 위해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땅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의 시선에서 볼 때 상당히 골때리는 삶을 선택한 이유를 소로의 저 문장이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란할 것 없이 특별한 일 아니란 듯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내가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한번, 아내와 아들 딸과 또 한 번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두 번에 걸친 유학생활을 하면서 숨넘어갈 정도로 느려터진 인터넷을 경험했습니다. 차라리 없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른 느림 그 자체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온종일 가족과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함께 가야 하고, 무엇을 하든 함께 해야 하는 때를 살아보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유학생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느릿느릿하게 살아가는 삶을 경험하면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다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고 있었던 사회를 냉정한 시선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한국 바깥에서 바라본 한국은 '거대한 도가니'처럼 보였습니다. 뭔가 하나가 유행하면 전국적으로 유행합니다. 음식, 옷, 액세서리 등 거의 모든 것이 전국적으로 유행을 탑니다. 사람은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미국에서의 삶은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 득실득실한 나라처럼 보였습니다.


저자 박혜윤처럼 시골로 들어가 일종의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면 더 잘 보일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엔 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나의 시선에서 볼 때 저자의 가족은 몰라도 저자 박혜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사람처럼 보입니다. 오해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단 책이 재밌습니다. 독특한 장소에서 독특한 방식과(지금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다르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선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서 흥미롭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글이 정갈하고 담백해서 읽는 맛도 깊습니다. 지나친 경쟁구도에 지친 분들이라면 쏙 빠져들어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나도 해볼까? 라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 여기서 잠깐, 나의 경험에서 비롯한 어줍잖은 충고를 하자면 용기만으로 덤벼들 일은 아닙니다. 매번 돈이 없어 피곤하고, 온갖 불편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다른 삶의 방식이 있고, 그것이 살아낼 만한다는 것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일종의 회귀본능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하고, 결국 그 시간을 이겨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가 있다면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도전해 보시길 충고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지나치게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구조에 휩쓸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입니다. 아마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으면 소로의 [월든]으로 눈과 마음이 쏠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니 딜라드의 [자연의 지혜]에도 관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법한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나답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어 보고, 사회의 구조나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나의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볼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나은, 진짜로 살아내야 할 삶이 아닐까요?


지금 세상을 의심하게 만들어 주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객기 한 번 부려볼까? 하는 호기로운 마음 품게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저자 박혜윤이 사는 집에 가서 그녀가 만든 통밀로 만든 빵을 사먹고 싶습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즐겁게 읽었다고 떠벌이며 그녀가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블랙베리도 따서 먹어보고 싶습니다. 가끔씩 사는 소식 전하며 살고 싶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책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짐작하셨겠죠?


월든

월든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21.05.03.

자연의 지혜

자연의 지혜
저자: 애니 딜라드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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