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이야기를 먼저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로 읽었습니다. 착취를 일삼는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와 인류에게 유린당하는 반려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인류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이라면 주인답게 다른 생명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류가 주인이 아니라면 난폭한 주인 행세는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언젠가 진짜 주인을 만나게 됐을 때 어떤 추궁을 당하게 될지, 그때 발붙일 곳조차 없지 않으려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도 읽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힘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 자녀가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큽니다.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힘으로 짓누릅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아이의 심리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의견이나 생각,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엔 아이를 괴물로,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고 맙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보세요. 그곳엔 당연하다는 듯 괴물같은 인간, 차마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괴물이 있습니다. 누가 그를 또는 그녀를 프랑켄슈타인으로, 괴물로 만들었을까요? 혹 부모는 아닐까요? 나의 삐뚤어진 태도와 마음을 자녀에게 심어두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는 이 이야기를 사회와 사람의 관계로도 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이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사회폭력,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개개인을 짓밟기도 합니다. 금수저 흙수저 따위의 말이 생겨나고 통용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회사와 사원의 관계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갑과 을, 열정페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 역시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마땅히 누려야할 인간다움과 인간이 받아야 할 영광을 한쪽으로 걷어치워버리고, 힘과 권위로 짓눌러대면 결국엔 프랑켄슈타인을 양산해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