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빠진 이야기
수나노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2007년 5월 목요일 자정께였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수요일 저녁 예배당에 다녀오면서 먹었던 김밥이 체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실은 그 전날부터 속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종종 체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내도 나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기분 좋게 김밥을 먹고, 밤 시간을 호젓하게 보낸 후에 잠에 들었습니다. 세상 모르고 자던 나는 흔들어 깨우는 아내의 손길과 끙끙대른 소리의 합작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내가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습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손을 따고, 체할 때 주무르는 곳을 주물렀습니다. 목사라고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놀랍게도 기도 후 아내가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나에게도 신유의 은사가 생긴 것일까? 라는 일종의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것도 기도로 아내의 아픔을 낫게 했다는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다시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2시쯤 아내가 다시 흔들어 깨웠습니다. 식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구푸린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배가 아파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병원에 가겠냐고 물으니 그렇겠다고 했습니다. 평소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하는데 자발적으로 병원에까지 가겠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새벽에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나는 맹장염을 의심했고, 간호사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도무지 맹장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몸짓 발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간호사는 알았다는 말만 한채 나가버렸습니다. 아침에 의사가 와야만 한다는 말만 남기고 말이죠. 이 일이 미국 유학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의 의료체계가 이상하단 말만 들었지 실제 경험하니 한국과 너무 달랐습니다. 아침에 의사가 와서 진단을 끝내고 맹장염 수술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내는 고통에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새벽 2시 반이 채 되지 않아 병원에 들어왔지만 오후 4시 정도에 겨우 수술을 시작했으니, 그 시간 동안 아내는 오롯이 고통당해야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아프면 참 난감합니다. 대략난감이란 말이 딱 어울립니다. 수나노의 어깨 빠진 이야기를 읽으며 아내와 나의 웃지 못할 이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나와 아내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작가 수나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난감이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난감함을 맛보았을 겁니다. 겁도 났을 것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심경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가 수나노는 과테말라에서, 멕시코에서, 산에서, 호텔, 그 이외 자신의 어깨가 빠졌던 모든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그 사건이 생긴 정황과 주변 사건까지, 어깨가 빠지면서 생긴 에피소드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아마도 그 사건이 수나노에게 기억할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하긴 자신의 어깨가 빠졌고 그것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당했으니 쉽게 잊어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어깨가 이렇게나 쉽게, 이렇게나 자주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습니다. 운동선수(축구선수 박주영, 격투기 선수 정찬성 등)들이 습관성 어깨 탈구 때문에 고통당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들은 적이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이렇게나 아픈지도 몰랐습니다. 쉽게 빠지고, 쉽게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무지의 탓입니다.


어깨 빠진 이야기에 얽인 사건이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즐거워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약간의 죄책감마저 들지만 실제로 재미 있었습니다. 수나노 작가가 이것을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의도한 바가 있다면 성공하셨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작가의 아픔을 가볍게 대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글솜씨가 훌륭했기 때문이며, 어깨 빠진 이야기에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이야기가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어깨 빠진 이야기들로 구성된 책입니다. 저자가 언제 어깨가 빠졌는지, 어느 나라(여러 나라에서 어깨가 빠졌습니다. 이 점도 매우 특별합니다)에서 어깨가 빠졌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깨가 빠졌는지 상세하게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깨가 빠진 사건과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매우 솔직하게 썼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참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솔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분으로 읽었습니다. 자기답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법한 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니 혈혈단신으로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넘나들었겠지요. 멕시코가 그렇게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참 대단한 여성이다 싶었습니다. 이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는 아줌마의 대열에 합류하셨더군요. 자녀가 습관적으로 어깨가 빠질까봐 걱정하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쾌하게 읽을 수 있게 써주셔서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전투력 만렙 여성의 이야기(본인은 손사래 칠 수 있겠지만)를 읽으며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 그것도 습관적으로 어깨가 빠지는 여성을 힘차게 응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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