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약간은 뭉뚱하나 콧날의 날카로움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며
간혹 고개를 숙일라치면 얼굴의 균형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보이는 코에

얇은 윗 입술에 비해 두터운 아랫입술이 살짝 앞으로 밀려 나오면서
정렬되지는 못하였지만 유난히 하얀 윗 앞니가 보인다.

모나게 튀어나온 턱 그리고 턱선을 따라 올라가며 홀쭉하게 야윈 뺨
인형같이 큰 눈은 튀어 나올듯이 위태해 보이며, 꼬리가 축쳐진 쌍꺼플에는 피곤함이 배여있고
얇게 에스자형으로 반원을 그리며 치켜 올려 그려진 눈썹에는 빈시간의 나른함이 보인다.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한웅큼의, 비에 젖은 갈색 머리카락은 한쪽 눈을 뒤덮고
그 가느다란 모발 사이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서는 광채가 번득이며
땀에 밴 거므스럼한 좁은 이마위로는 숱 적은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있다.
 
하나,둘,셋...열
콩알만한 빨간 플라스틱 단추가 목서 부터 배꼽까지 촘촘히 꿰매진
이전에는 빨강색이었으나 이젠 빛 바랜 주황이 된 짧은 체크무늬 남방.
움직일때 마다 풀어 헤친 남방자락사이로 빈약한 가슴이 살짝 보인다.

진한 청녹색 청바지의 철제 앞 단추는 떨어져 나가고 너덜거리는 천조각 사이로 고정쇠만이 보이며
반쯤 열린 쟈크가 마치 두툼한 골반에 걸쳐놓기 위하여 찢어 논 것처럼 보인다.

왼손 엄지는 바지속으로 깊게 꽂혀 있으며 그 손등으로 굵고 푸른 정맥이 터질듯이 팽창해 있다.
가늘고 긴 검지와 중지엔 청녹이 쓴 퇴색한 얇은 금빛 반지가 끼여져 있다.

좁은 골목으로 내려가는 흉물스런 콘크리트 계단 아래, 납작한 한옥 처마 밑에서 그녀가 날 올려다 보고 있다
입을 약간 벌린 채 먼가 말하고 있는 듯 하였나 빗소리와 골목까지 따라온 거리의 소음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
감기다시피한 왼쪽눈은 머리카락으로 가렸으나 그게 더 애처롭게 보인다.
멈추어 서서 그녀를 마주 보나 정지된 동공은 나를 뚫고서 먼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산든 오른팔이 서로 맞 닿아있으나 그녀에게선 아무런 열기를 느낄 수 없다.
그저 눈을 내리 깔고 걷고 있는 그녀의 머리만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릴뿐.

한 우산밑에 있으나 그녀에게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공장지대의 메쾌한 개스 냄새와 그리스 냄새, 기름에 쩔은 땅냄새 그리고 이상하게도, 녹아들어가는 전기 용접봉의 냄새로 가득찼던 골목에서
비 맞은 흙의 습기찬 아련한 고향 집 마당 냄새가 난다.

이제 골목이 끝나고 익숙한 소음이 몰려온다.
우산을 벗어나 골목 건너편 건물로 그녀는 빗속을 걸어 간다.
그녀 머리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김이 올라간다.
가만히 입술을 달싹해 본다.
하나님..모두 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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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스님 글은 참 좋은데...
소통이 잘 안되는 듯하여 댓글 달기를 주저하게 됨.

그래도 오늘은 이 말만.

슬프고, 아프고, 저릿한 글이네요.
그녀를 보는 당신 마음이 그랬었나요...?

hanalei 2007-08-29 23:00   좋아요 0 | URL
그 이상이죠. 알아봐주시니 역시...

마늘빵 2007-08-2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 저녁으로 뭘 드신겁니까... 어렵습니다. 근데 왜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

hanalei 2007-08-29 23:00   좋아요 0 | URL
알아야만 은행에 갈 수 있습니다.

마늘빵 2007-08-30 00:25   좋아요 0 | URL
-_- 은행에요??? 뭔가 한참 생각했습니다. 크크. 명동을 말씀하시는거군요. 크크크크.

2007-08-29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alei 2007-08-29 23:02   좋아요 0 | URL
넹넹 철지난 훈늉한 곡이죠.
편집이 워낙 심해 어려운걸겁니다. 해설판 필요하세요?

chika 2007-08-3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질문 하나.
'The스'님이라 이름지으신 뜻이 뭔가요?;;;
- 참고로... 전 자알 지내려고 발악,중입니다. ㅎㅎㅎ (이게 왜 참고야? ㅡㅡ;;)

hanalei 2007-08-30 13:34   좋아요 0 | URL
힌트 --> 따우님 카테고리 이름을 보셔요

잉크냄새 2007-08-3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중식의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hanalei 2007-08-30 18:50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합니다. 김중식님 글은 제가 읽어보지 못해서...쩝쩝

잉크냄새 2007-08-31 12:39   좋아요 0 | URL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씨氏
홍등紅燈 유리방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씨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적敵을 만들어 창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들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안동김가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지인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서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서해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중국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인도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