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지 못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직 인쇄물이 없었던 당시 모든 유대인은 노래로 만든 ≪성경≫을 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멜로디를 누가 작곡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토라에는 구두점이 전혀 없다. 하지만 노래가 끊어지는 대목이 문장의 끝임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한 자식만을 사랑함으로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여럿 가운데서 한 자식만을 편애하는 잘못은 자칫 범하기 쉬우므로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에벤’이란 ‘아브(아버지)’와 ‘벤(아들)’이라는 두 개의 낱말이 합쳐진 단어로, 곧 ‘부자(父子)’라는 말도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결합되면 바위처럼 단단해진다는 뜻이다.
유대 민족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첫째 비결은 가족 단결의 관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특이한 관계 관념이라든가,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념 등이 관계로 굳게 결속되어 있는 바로 그 점이 오늘날까지 유대 민족을 지탱시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좋은 일, 혹은 나쁜 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터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 넘어뜨려 다치게 해 놓고도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토라에는 그에 관한 하나의 가르침이 있다. 하느님이 굳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곳으로 여겨질 장소를 택한 이유에는 아주 심오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명하기 위하여 그러한 곳을 선택하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다. 특히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상태로 고생하고 있을 적에 이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층 중요하다
유대의 격언에 ‘여성의 가르침은 곧 가정의 가르침이다.’란 것이 있다. 그 때문에 십계도 여성에게 먼저 주어지고 다음에 남성에게 주어진 것이라 여겨진다.
히브리어인 ‘다아로쉬 다아로쉬’라는 낱말은 필시 ‘가르침’을 뜻하는 것이리라고 유대인들은 고찰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항상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는지, 그 연유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생활,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것을 가르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한 가지는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개방적이 방법이고, 또 한 가지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식으로 실례를 보이면서 스스로 경험을 얻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처럼 똑같은 단어를 되풀이하는 것은, 결국 위의 두 가지 교수 방법을 뜻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인간을 대할 때도 현재의 모습, 예컨대 어리석다거나 경솔하다거나, 또는 나쁜 인간이라든가 하는 단정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극히 일반적인, 평소 아무것도 아닌 듯싶던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나 집단이 오히려 큰일을 곧잘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최고의 기도 방식은 공부하는 일이다
≪탈무드≫가운데에는 유대인이 먹어도 좋은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이 정리,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것을 포함하여 일상생활의 행위 하나하나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먹기 위하여 산다.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다. 먹는다는 것 또한 삶의 일부이므로 당연히 종교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왕이 매우 값비싼 유리잔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술잔은 뜨거운 물이나 얼음물을 부으면 깨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왕은 언제나 뜨거운 물과 얼음물을 섞어서 붓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이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타협을 생활의 큰 지혜로 알고 있다. 한 가정을 살펴보더라도 부모가 교육을 지나치게 엄하게 하면 자식은 반항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사랑만 주면 자식은 불량스럽게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 양쪽을 적당히 혼합한 것만이 균형 잡힌 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무엇인가를 쌓아 어디까지 가지고 간다.’ 따위의 추상적인 비즈니스를 성립시키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대인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게를 보게 한 다음 하루가 끝났을 때, 자식이 "아버지, 오늘 제가 올린 매상은 이만큼이에요."라고 말하면, 그 아버지는 "그건 네가 판 것이 아니야.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왔을 뿐이지. 고객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까지 팔아야 돼."라고 말한다.
이것 무슨 뜻일까? 알기 쉽게 말하자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낮에 우산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가뭄이 끝나 비가 내리는 날엔 우산이 없으면 곤란할 것이고, 또 언제 우산을 살까 하고 신경을 쓴다는 것도 골치 아픈 노릇이니, 지금 사 두시는 게 여러 모로 이득일 겁니다.’라고 설득하여 고객에게 우산을 팔 수 있는 게 진짜 상인이라는 말이다.
유대인 비즈니스맨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계획을 짜서 갖가지 물건을 판다. 그 경우에 추상적인 사고방식이 불가결하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상에서 올바른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옳은 행동을 제시하기 위해 한 민족에게 그와 같은 모범적 역할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온 세계가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면 유대인은 이미 선민이라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유대인들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천주의 십계를 토대로 하여 유대인들이 지켜야 될 갖가지 규율 가운데는 ‘무엇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부정하는 형식이 많다. 천주의 십계에는 일곱 가지 부정적인 금지 조항이 있고 세 가지만 종용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유대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무엇 무엇을 하라.’ 식의 명령조만 늘어놓으면 인간은 자중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 여긴다. 거꾸로 ‘이것만은 하지 마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전부 자유이므로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금기 사항이 많음에 대해 부자유스런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들의 행위는 그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실은 이쪽이 더 자유롭다.
인간이 만들어질 때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진 최초의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대인 사이에서 섹스는 결코 죄가 아니다.
두 번째 명령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였다. 다시 말해 ‘세계를 자기 소유로 하라. 세계를 이해하여 인간의 갖가지 지혜를 끌어내라. 요컨대 진보하라.’는 명령이었다.
유대인들은 괴로움이나 고통까지도 여러 모로 인간의 삶에 유효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사계절이 있기에 나무는 시들고, 물고기며 고양이, 개도 언젠가는 죽는다. 만물에는 끝이 있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많아져서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악이라는 부정적인 것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에덴동산을 찾아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세상을 만들었다. 그다음엔 인간이 자신들에게 알맞도록 세상을 가꾸어 나가야만 된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빵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밀을 존재케 했다. 인간 역시 세상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밀은 잠재적인 빵이며, 인간도 하나의 가능성을 비장한 잠재적인 원료이다.
그 밖의 자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은 모두 동물적인 요소를 지닌 동시에 ‘가능성’이라고 하는 하나의 ‘신성함’을 지닌 요소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성공하는 비결은, 그들이 극도의 개인주의자라는 점에 있다.
요컨대 어느 타인과도 상이함을 의미한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기하나 대수처럼 자로 재듯이 너무나 틀에 박힌 그런 것에는 서툴지만, 대신 인습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발상을 해내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호프마’란 단어는 ‘유머’와 ‘영특한 지혜’를 동시에 의미한다.
유머를 적절히 구사할 줄 알고 또 이해하는 사람은 지적인 두뇌가 뛰어나게 발달한 사람이다.
실상 유머처럼 폭넓은 창조력과 번득이는 기지가 요구되는 것도 드물다. 또한 그것은 매우 교육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물이든 한편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잽싸게 그 둘레를 빙그르 돌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건요, 그 학교에서 장난을 쳤다간 끝장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글쎄, 입학하던 날 벽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잖아요!"
당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의 양계장에도 나가죠? 하지만 매일 양계장에 간다고 해서 당신이 닭이 되는 건 아니잖소?
유대의 속담에 ‘운 나쁜 놈은 빵을 떨어뜨릴 때 반드시 버터 바른 쪽이 아래가 된다.’는 것이 있다.
"이봐, 잠깐만. 그 백화점의 다른 진열대에는 밍크나 아스트라칸 모피가 잔뜩 쌓여 있었다는데, 어째서 겨우 2달러짜리 블라우스를 훔쳤나?" 그러자 아브라함이 괴롭다는 듯 내뱉었다. "그 소리는 이제 제발 그만하십시오. 체포될 때까지의 두 달 동안 매일 마누라한테 그 일로 추궁당했다고요."
태풍이 일자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선체는 그야말로 나뭇잎처럼 제멋대로 바다 위를 떠돌았다. 갑판 위에는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런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비규환의 수라장 속에서도 헬름 시에서 온 사람들만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선객 중의 하나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무섭지도 않소?" 헬름 시에서 온 사람들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전혀 두렵지 않아요."
그 사이에도 배는 휘몰아쳐오는 파도에 휩쓸리며 널을 뛰듯 심하게 요동치고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같이 삐걱거렸다. "배가 산산조각 날 것 같아요!" 모두들 아우성을 쳤으나 헬름 시에서 온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했다. "왜 우리들이 배를 걱정해야 합니까? 우리 소유도 아닌데."
"당신은 나보다 더 심한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어떻게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고통을 잘 참는지요?" 그러자 다리 다친 환자가 대답했다. "설마 당신은 내가 저런 돌팔이 의사에게 상처 난 다리를 내밀었으리라 생각하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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