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제멋대로이고 욱하는 성격을 많이 죽였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 남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오히려 이건 결혼하고 나서 더 많이 바뀐 부분이다.

내가 싫은 건 상대방도 싫으니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나도 하지 않았다.

남편과 살며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결혼하기 전의 25년보다, 남편과 산 10년 동안 나는 더 많이 변했다.

제멋대로 날뛰던 야생동물이 이제야 길이 든 느낌이다

씨앗은 꼭 2세만으로 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멋진 사실을 남편을 통해 배웠다

결혼 생활이란 나 자신을 더 잘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지하지 못하고 살던 생활 습관이나 사소한 좋고 싫음을 누군가와 부딪히면서 깨닫곤 한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닮아 가는 것 또한 부부다.

실제로 중년의 부부를 보면 외모가 비슷해서 ‘남매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 습관이나 성격이야 같이 사니까 비슷해진다고 하더라도, 외모까지 비슷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아마 매일 상대방의 얼굴을 보다 보니 표정이나 얼굴을 찡그리는 습관 같은 게 닮아 가서 그렇지 않을까?

살아 있는 것이 뭔가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간단한 존재일 뿐이야.

사실 나도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한 모든 선택들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행복에는 나 혼자만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 남편과 나, 이렇게 둘이었다.

행복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행복은 아주 가까이, 맞잡은 손에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 같이,
지금처럼 늙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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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말고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은 없나요? 연극을 좋아하는 거랑 연극을 업으로 하는 건 다르답니다."

"연극 말고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동물을 좋아하고, 누군가를 살뜰히 보살피고 챙기는 일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저녁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나의 꿈을 꾸준히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꿈을 모두 잡은 사람이었다.

반드시 꿈꾸던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들은 나의 정체성을 입맛대로 규정하겠지만 이제 의식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는 그 현실과의 타협은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꿈과 현실 모두를 잡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눈 뜨는 게 기다려지는 삶을 매일 반복하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꿈은 소위 말하는 본업으로만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최정상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일에 욕심을 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박쥐라고 욕하면 어떤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박쥐다.

서른을 넘어서자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다들 "누가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수동적으로 살다 보니 능동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힘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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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싱글 라이프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멋진 부부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세상엔 멋진 부부 라이프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그런데도 남자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뽑았다. 그렇다. 이건 염장 지르는 글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 4년 결혼 10년, 도합 14년을 함께 했지만 여전히 알콩달콩하고 몇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낸다

"어차피 둘이서 뭘 같이 하는 것도 아닌데, 나 없어도 되지 않아?"
"아니야. 그래도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달라."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도 엄마랑 뭘 특별히 같이 하진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런 느낌인 걸까?

나는 운명론자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고 죽을 사람은 죽고 살아갈 사람은 살아간다고 믿는다.

10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쩡하게 길 가다 떨어진 벽돌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는다.

하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인연으로 발전시키는 건 결국 인간의 의지다.

그 후로도 맛있는 걸 먹을 때나 멋진 풍경을 보거나 재미있는 걸 볼 때마다 남편이 생각났다.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는 더 많이 생각이 났다.

이건 남편이 좋아하는 맛인데, 먹어 보면 아마 눈이 둥그레지겠지? 이렇게 멋진 곳에 함께 오고 싶다. 이 얘기를 해 주면 ‘키기긱’ 하고 얼굴을 접어서 웃겠지?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너 없으면 죽느니 마느니 하며 눈물을 질질 짜고 격렬하게 이빨을 부딪쳐야 사랑인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었다.

저울질은 나쁘다지만, 모든 선택은 저울질의 결과이다.

물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을 때 짬짜면을 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꼭 하나를 택해야 할 때도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건, 저울질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다.

30대가 넘어가면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과 의례 같은 질문이 있다. 바로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이다. 만약 결혼을 했다고 하면 그다음 질문은 자녀의 유무다.

그는 종종 무해한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귀찮을 것 같은 상황에서 거짓으로 답변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회사에 다니시나요?’라고 물어오면 ‘네’ 하고 대답한다. 실제로는 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아니요’라는 답변에 이어질 질문과 뒤따라야 할 설명이 귀찮아서 대충 긍정하는 것이다.

나 한 몸 건사하기 힘든 팍팍한 세상, 이대로도 나쁘지 않은데 굳이 아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갈수록 대기는 나빠지고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고 빈부 격차는 뼈저리게 와 닿는데, 내가 억만장자여서 2세에게 물려줄 재력과 권력이 없다면 그건 2세에게도 고통이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종족 번식의 의무를 앞세우기에는 이기적이고, 예측불허인 아이 인생을 감당할 자신도 없어서 둘이 사는 삶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그 행복을 모를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후회하게 될 지라도 지금 이 계단에 서서, 지금 손에 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의 고양감이 필요 없는 잔잔한 행복.

인생은 곡선 그래프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

그리하여 인생 그래프의 평균값은 다들 비슷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인생은 지금까지 큰 굴곡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커다란 변화가 두렵기만 하다.

어쩌면 내 인생 그래프가 크게 휘청이지 않을까?

내리막밖에 없는 건 아닐까? 정말 부질없는 걱정이긴 하지만, 내게는 변명이 필요하다. 이대로 살아가기 위한 변명.

여기까지 생각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나중엔 둘만 남게 되는데, 굳이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너무 힘들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있는 건 반려자이지 않은가?

생의 어떤 순간순간에, 때로는 계획하지 않는 선택을 후회했지만 그건 아주 미미해서 내 삶의 방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땐 그랬지’ 수준의 감상이었고 후회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아쉬움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모든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었다.

내 상황을 불행하다고 보면 불행이었고, 행복하다고 보면 행복이었다.

어쩌다보니 딩크족에 발을 걸치게 됐지만 그 또한 내가 선택한 내 삶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능력과
매력을 발굴하고 개발하기도 했다.

애교는 부부에게 있어 틀림없는 하나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잘못을 애교로 얼버무리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지만, 부부 관계는 옳고 그름과 실리를 따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야 하
는 관계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 까르르거리며 잘 산다. 남들에게는 애교를 꼭꼭 숨긴 채.

결혼해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인생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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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이미지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

트리거 워닝은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특정 콘텐츠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쓰인다

트리거 워닝

트리거 워닝은
우리 문화가 이제야 비로소
트라우마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긴박한 필요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시다.

글이나 영상에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알리는 표시 - 트리거워닝

트리거가 눌렸다
-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게 하는 자극을 받게 되는 상황.

수치심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생 전부를 규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수치심을 없애고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전 세계적인 운동의 일환이다.

이 책은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집필한 교과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사람들이 들려주는 솔직한 이야기에는 진정한 힘이 있다.

신체와 마찬가지로 정신도 노력하면 점차 건강해지고 강해질 수 있어.

다만 자기에게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기까지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

나는 내 마음을 가꾸고, 더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내가 못생겼다는 기분이 드는지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기애로부터 우러나야 해.

몸을 어떻게 돌보는지는 정신건강과 직결되어 있어.

나는 매주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도시를 벗어나곤 해.

자연과 여행은 나에게 정말 중요하거든.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 그 순간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

명상을 해봐. 나도 자주 깜빡하긴 하는데, 진짜로 큰 도움이 돼.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영원히 계속되겠지.

말썽꾸러기 강아지를 훈련하는 것처럼 뇌의 나쁜 습관들을 되짚어가며 고쳐야 해. 평생이 걸리겠지만.

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

이것이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야.

어떤 기분이 드는데 그걸 막을 수 없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마.

대신에 지금 느끼는 감정을 받아들여 봐.

그런 감정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잘 헤아려봐.

결국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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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말을 끊거나 가로채지 않기 위해, 혹은 남의 대화에 끼어들어 흐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

여기에는 ‘대화의 1-2-3 법칙’이 도움이 된다. 이 방법은 특히나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① 자기의 말은 1분 동안만 하고

② 상대방의 말은 2분 동안 들어 주고

③ 3분 동안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쳐라

"말할 때 지나친 겸손은 미덕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자기 장점과 의견을 피력하세요.

자기가 잘난 점은 인정받고 자기만의 생각은 주저하지 말고 표현하세요.

자신의 장점도 부정하고 의견도 말하하지 않는 것을 겸손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이런 태도는 상대방으로부터 거부감을 일으켜서 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시라노 드 벨주라크는 평생 겸손으로 포장된 자기 비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를 제안한 상사는 이렇게 대답한 직원을 ‘참으로 겸손한 친구군’이라고 생각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원래 직장 상사는 이 직원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 기대가 깨져 버린 상사는 사람을 잘못 봤나 싶어서 다른 직원을 찾게 된다.

특히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과한 겸손은 제 살을 깎아먹는 행위다

어떤 사람은 입에 ‘저 때문이에요’를 달고 다닌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실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죄송해요. 내가 부족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자기 비하일 뿐이다.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자기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은 신뢰하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손수 자신의 구두를 닦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말했다.
 
"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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