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싱글 라이프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멋진 부부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세상엔 멋진 부부 라이프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그런데도 남자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뽑았다. 그렇다. 이건 염장 지르는 글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 4년 결혼 10년, 도합 14년을 함께 했지만 여전히 알콩달콩하고 몇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낸다

"어차피 둘이서 뭘 같이 하는 것도 아닌데, 나 없어도 되지 않아?"
"아니야. 그래도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달라."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도 엄마랑 뭘 특별히 같이 하진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런 느낌인 걸까?

나는 운명론자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고 죽을 사람은 죽고 살아갈 사람은 살아간다고 믿는다.

10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쩡하게 길 가다 떨어진 벽돌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는다.

하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인연으로 발전시키는 건 결국 인간의 의지다.

그 후로도 맛있는 걸 먹을 때나 멋진 풍경을 보거나 재미있는 걸 볼 때마다 남편이 생각났다.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는 더 많이 생각이 났다.

이건 남편이 좋아하는 맛인데, 먹어 보면 아마 눈이 둥그레지겠지? 이렇게 멋진 곳에 함께 오고 싶다. 이 얘기를 해 주면 ‘키기긱’ 하고 얼굴을 접어서 웃겠지?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너 없으면 죽느니 마느니 하며 눈물을 질질 짜고 격렬하게 이빨을 부딪쳐야 사랑인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었다.

저울질은 나쁘다지만, 모든 선택은 저울질의 결과이다.

물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을 때 짬짜면을 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꼭 하나를 택해야 할 때도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건, 저울질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다.

30대가 넘어가면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과 의례 같은 질문이 있다. 바로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이다. 만약 결혼을 했다고 하면 그다음 질문은 자녀의 유무다.

그는 종종 무해한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귀찮을 것 같은 상황에서 거짓으로 답변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회사에 다니시나요?’라고 물어오면 ‘네’ 하고 대답한다. 실제로는 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아니요’라는 답변에 이어질 질문과 뒤따라야 할 설명이 귀찮아서 대충 긍정하는 것이다.

나 한 몸 건사하기 힘든 팍팍한 세상, 이대로도 나쁘지 않은데 굳이 아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갈수록 대기는 나빠지고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고 빈부 격차는 뼈저리게 와 닿는데, 내가 억만장자여서 2세에게 물려줄 재력과 권력이 없다면 그건 2세에게도 고통이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종족 번식의 의무를 앞세우기에는 이기적이고, 예측불허인 아이 인생을 감당할 자신도 없어서 둘이 사는 삶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그 행복을 모를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후회하게 될 지라도 지금 이 계단에 서서, 지금 손에 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의 고양감이 필요 없는 잔잔한 행복.

인생은 곡선 그래프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

그리하여 인생 그래프의 평균값은 다들 비슷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인생은 지금까지 큰 굴곡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커다란 변화가 두렵기만 하다.

어쩌면 내 인생 그래프가 크게 휘청이지 않을까?

내리막밖에 없는 건 아닐까? 정말 부질없는 걱정이긴 하지만, 내게는 변명이 필요하다. 이대로 살아가기 위한 변명.

여기까지 생각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나중엔 둘만 남게 되는데, 굳이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너무 힘들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있는 건 반려자이지 않은가?

생의 어떤 순간순간에, 때로는 계획하지 않는 선택을 후회했지만 그건 아주 미미해서 내 삶의 방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땐 그랬지’ 수준의 감상이었고 후회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아쉬움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모든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었다.

내 상황을 불행하다고 보면 불행이었고, 행복하다고 보면 행복이었다.

어쩌다보니 딩크족에 발을 걸치게 됐지만 그 또한 내가 선택한 내 삶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능력과
매력을 발굴하고 개발하기도 했다.

애교는 부부에게 있어 틀림없는 하나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잘못을 애교로 얼버무리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지만, 부부 관계는 옳고 그름과 실리를 따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야 하
는 관계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 까르르거리며 잘 산다. 남들에게는 애교를 꼭꼭 숨긴 채.

결혼해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인생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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