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링컨의 말뜻을 자기 비하에서 나오는 지나친 겸손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겸손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아요’를 남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어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고 오락가락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밝히다가 끝맺을 때 대충 ‘같아요’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투는 자신의 인상에도 문제지만 대화할 때 장애를 만든다. 상대가 말끝마다 ‘같아요’, ‘같습니다’ 식이면 누가 그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쌓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래는 기억과 밀접하다. 때론 기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시간 여행 운운하지 않아도 그냥 그 시절로 가버린다. 그때 함께 이 노래를 듣던 친구, 그 시절 나의 꿈 등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어린 내 노래에 귀 기울여, 사사삭 사사삭 울창한 나뭇잎들이 박수를 쳐주는 듯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아무 걱정 말아라’ 위로해주던 느티나무!

세상 걱정 다 안고 있는 그늘진 어린 가슴을 쓰다듬어주던 손길.

마치 동화처럼 나는 나무에게 말했고, 나무는 그 얘기를 들어주었다.

느티나무에 기대어 부르던 노래는 그렇게 내 텅 빈 가슴을 채워주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빚더미에 눌려 열아홉 살의 하루하루는 기운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깜깜했다.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몇 년 전에 어릴 적 기대어 노래 부르던 그 느티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많이 변했을까? 나무는 나를 알아볼까?’

가슴이 마구 떨렸다. 도착해보니 내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동네 분위기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실망하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 느티나무는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 왔어?’ 하고 나를 딱 알아보며…….

응, 나 왔어. 잘 있었지? 그땐 정말 많이 고마웠어. 내 어린 날의 친구!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훗날 그 노래와 내 이름이 한 데 묶여져 50년 넘게 따라다닐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 노래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 돈을 받으면 나는 오만 원짜리 가수가 되는 거잖아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돈이면 쌀도 연탄도 넉넉히 들일 수 있는데……’ 하며 아쉬웠지만 여전히 난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어려운 일을 같이 겪지는 않았지만 그가 당한 일로 나 역시 남몰래 많이 울었다.

그의 순수는 늘 나의 타협과 비교가 되었다.

동생들과 먹고살아야 했기에 노래를 돈과 바꾸며 타협할 동안, 그는 처음 보던 그날의 그 빛나는 눈빛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와 고집불통으로 자기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었다

김민기의 노래만큼 내 가슴에 와 닿은 노래는 없었다.

그가 만든 <아침 이슬>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수 양희은이 아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나의 첫 히트곡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나 역시 슬픈 사랑을 할 팔자란 말인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건 무엇일까. 글쎄, 사랑은 결국 소유인 걸까?

내 것으로 가지는 것,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사람을 내 것으로 가진다는 건 무엇일까?

대체 사람이 사람의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온 세상이 찬란하게 보였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윤슬 같았다. 그렇게나 눈이 부셨다.

아니다! 세상이고 윤슬이고 간에 하나도 안 보였다. 오직 그 사람만 보였다.

그 잘 먹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늘어지게 자던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마음이 설렜지만 전혀 배고프거나 어지럽거나 헤매지는 않았다.

그렇게 눈에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서로를 ‘내 사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한 연습이었나?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내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두 남녀도 지금쯤 추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추억을 가질 수 있는 한 서로를 가진 것이니까.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둘만의 추억이니까.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가? 이것은 퇴폐적인 가사다’라고 한 예전의 금지 사유가 얼마나 옳은 말인지. 이제야 그 금지 사유를 알 것도 같다.

나의 대꾸는 간단했다.

"상대하기도 싫으니 꺼지세요."

나는 이 세상에서 킹박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그 사람보다 더 큰 난리를 치든가, 아예 불쌍하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날에는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잘 사는 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내 삶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점수를 매겨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싶었다.

"잘했네" "이건 틀렸다" 하며 동그라미나 별표를 그려주는 분이 있다면 나날이 얼마나 쉬워졌을까?

무대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위협을 해도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하지만 10대나 20대와는 다르게, 나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세월만큼 버티고 선 느낌이랄까?

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왜, 뭐!"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밟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 혹독한 지난 시간 덕택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별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랄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인데, 이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설렘과 울렁거림이 없이 침잠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니, 예전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일들이 한 뜸씩 느려졌다.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너희도 나이 들어 봐봐. 젊음과 안 바꾼다" 했었는데 무심코 젊은 날의 내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구나!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각자 본인 속도에 맞춰서 임해야 한다.

서두르면 탈이 나고, 마음 급해도 몸이 못 따라가니 시간이 두세 배 정도는 더 걸리더라는 얘기다.

돈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넉넉하든지 부족하든지, 죽을 때 갖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던가.

흔히들 말하길, 제 꿈을 접고 참고 희생하면서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어른이 된다는데…… 우리는 성큼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비교적 자기 안의 목소리를 많이 내놓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같이 가벼운 대화로 깔깔거릴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아도 마음속 깊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모두 나를 양희은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더 챙기고 아껴주며 살 작정이다.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선배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 선배가 계시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일에 요령이나 지혜가 쌓이고, 하는 일이 무언지를 ‘쬐꼼’ 알 만한 때, 이미 일은 나를 떠난다. 내가 밀려난다. 그게 요즘 순리다.

노래가 무언지 ‘쬐꼼’ 알 만한데 더 이상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니 할 만할 때 제대로 하려면 건강해야겠지. 즐겁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기, 이것이 꿈이다.

엄마가 편찮으시면서 비로소 주변에 엄마 없는 이들의 허전함과 서러움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내가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엄마 없는 자기로서는 ‘엄마’ 소리가 서글프다고 했다.

그 말을 머리로만 들었지 가슴으로 듣지는 않았다.

후배의 서러움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엄마가 떠나시면 어쩌나 마음 졸이다가, 옆에 계셔서 안심하는, 그러면서도 마음과 달리 틱틱 쏘아대는 나는 영락없는 당신의 큰딸이다

얘, 그럼 내가 하루 종일 멍하니 있어야 되겠니?"

옆에서 자분자분 얘기 걸어주고 말대꾸해주는 말동무가 있는 게 나이 들면 제일 중요하고 소통 가능한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산단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들이 허구한 날 바쁘고 저녁에야 들어오니 종일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하루하루가 적막했겠다.

엄마의 치매가 시작된 것은 무릎이 아프면서부터다.

포크아트를 위한 아크릴 물감이나 퀼트를 위한 조각천을 구하려고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자주 다녔던 엄마는 무릎이 아프면서부터 잘 못 다니게 됐다.

그래서 종일 TV를 본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 노인성 우울이 치매로 진행됐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이 좋아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제멋대로이고 욱하는 성격을 많이 죽였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 남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오히려 이건 결혼하고 나서 더 많이 바뀐 부분이다.

내가 싫은 건 상대방도 싫으니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나도 하지 않았다.

남편과 살며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결혼하기 전의 25년보다, 남편과 산 10년 동안 나는 더 많이 변했다.

제멋대로 날뛰던 야생동물이 이제야 길이 든 느낌이다

씨앗은 꼭 2세만으로 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멋진 사실을 남편을 통해 배웠다

결혼 생활이란 나 자신을 더 잘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지하지 못하고 살던 생활 습관이나 사소한 좋고 싫음을 누군가와 부딪히면서 깨닫곤 한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닮아 가는 것 또한 부부다.

실제로 중년의 부부를 보면 외모가 비슷해서 ‘남매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 습관이나 성격이야 같이 사니까 비슷해진다고 하더라도, 외모까지 비슷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아마 매일 상대방의 얼굴을 보다 보니 표정이나 얼굴을 찡그리는 습관 같은 게 닮아 가서 그렇지 않을까?

살아 있는 것이 뭔가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간단한 존재일 뿐이야.

사실 나도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한 모든 선택들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행복에는 나 혼자만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 남편과 나, 이렇게 둘이었다.

행복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행복은 아주 가까이, 맞잡은 손에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 같이,
지금처럼 늙어 갑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극 말고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은 없나요? 연극을 좋아하는 거랑 연극을 업으로 하는 건 다르답니다."

"연극 말고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동물을 좋아하고, 누군가를 살뜰히 보살피고 챙기는 일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저녁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나의 꿈을 꾸준히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꿈을 모두 잡은 사람이었다.

반드시 꿈꾸던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들은 나의 정체성을 입맛대로 규정하겠지만 이제 의식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는 그 현실과의 타협은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꿈과 현실 모두를 잡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눈 뜨는 게 기다려지는 삶을 매일 반복하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꿈은 소위 말하는 본업으로만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최정상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일에 욕심을 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박쥐라고 욕하면 어떤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박쥐다.

서른을 넘어서자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다들 "누가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수동적으로 살다 보니 능동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힘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