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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고등학교때 뭔지도 모르고 질보다는 양을 위주로 서양의 고전을 모아 읽던 때에 읽었던 책중의 하나가 "데미안"이다. 이후로도 별다른 음미를 해보지도 못하고 몇 번은 지나갔을 법한 책이 또한 헤세의 데미안이다. 이제 나이가 좀 들어 이 책 "데미안(헤르만 헤세 저 / 김연신 옮김)"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것은 일종의 미루다가 시간에 쫓기며 마친 숙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그런 기분으로 읽게 된다. 서문을 읽고 여러개의 장을 읽으며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무게만큼 책장은 가벼우나 역시 이 책은 읽어내기가 쉽지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책을 고등학교때 읽어보았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였다는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헤세정도는 되어야 그런 깊이있는 사유를 하고 적어낸 문장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미안"은 한마디로 "나를 찾아서"떠나는 여행이다. 수많은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다. 서문과 총 8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헤세 자신의 자전적인 글이다. 자신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요 사유다. 그 이야기는 소년시절, 청소년시절 이후 대학 그리고 전쟁 참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마음의 대화이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의 갈등 속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남들처럼 그저 "밝은 세계"에만 살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이윽고 또다른 주인공인 막스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크로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데미안의 새로운 시각을 통하여 자신을 자각하고 고민하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런 싱틀레어 1인칭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볼때 데미안은 소설이지만 줄거리로 이해되기보다는 의식의 흐름이나 철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소설이다. 따라서 여타 소설처럼 이야기의 줄거리위주로 정리하는 것은 얼핏 얼핏 보이는 니체의 향기가 그렇고 융의 깊이 있는 꿈에 관한 철학, 사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데미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 헤르만 헤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데미안에 대한 옮긴이의 생각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데미안에 대해서는 성장소설이라는 측면과 문명비판적인 소설이라는 두 가지 생각을 소개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성장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독백과 상징은 마음에 더 가깝고 안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부단한 성찰이 보여지기 때문에 그렇다.
데미안의 서문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편하지는 않다면서 나오는 문구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떤 흐름을 가지게 될지를 알려준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일이자,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시도이며, 어느 좁은 길에 대한 암시라고 하겠다. 일찍이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는 막연하게 누군가는 보다 확실하게,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애를쓴다. 누구나 출생의 잔재물을, 태고의 점액과 알껍질을 죽을 때까지 몸에 지니고 산다. 어떤 이들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룡용으로, 또는 개미로 남는다. 어떤 이들은 위쪽은 인간이고 아래쪽은 물고기로 남는다. 그러나 각자는 자연이 인간을 목표로 삼아 내던진 존재들이다. p11>
또한, 제3장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죄인"에서는 자신을 찾아서 떠난 구도자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 자신을 이겨내고 나의 길을 찾는 것은 내게 속한 일이었다. p81> 차마 아보니 또는 어머니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이 온전히 그 무게를 본인이 안고 가려는 구도자 자체였다. 그냥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아버지나 어머니의 "밝은 세계"로 들어가면 모든 고민이 해결되고 안정감과 마음의 평화를 누릴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데미안은 말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숭배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거야. 이 인위적으로 분리되고 공인된 반쪽만이 아니라 세상 전부를 말이야! p101> 주인공 싱클레어는 니체 철학의 느낌이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내적 갈등을 하게된다. 결국 서문에서 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이 던져준 "인간"이 되기위한 과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4장 "베아트리체"에서는 스치듯 지나간 한 여인을 흠모하며 그 여인의 이름을 베아트리체로 붙여주고 연모하는 장면을 통해서 싱클레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서 떠난 한 구도자인 싱클레어 시선을 데미안은 자신의 마음 속의 어떤 존재를 들여다 볼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심리학과 융같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내면에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야. p139> 결국, "데미안"에서 많이 인용되는 문구와 마주치게 된다. 바로 5장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에 이르러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그저 "밝은 세계"에서만 안주하기 보다는 그 세계를 깨고 나와 새롭게 태어냐야 한다는 외침이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46> 여기에 처음으로 아브락사스라는 것이 나오는데 후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그와 교감하면서 그 의미를 깨닫지만 싱클레어는 피스코리우스의 한계도 넘어서도 그 자신으로 돌아가 그 자신만의 구도의 길을 계속하며 데미안을 다시만나고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며 연정도 느끼게 된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은 예사롭지가 않다. 바로 7장 "에바부인"에서 인데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살던 집에 갔다가 우연히 데미안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놀랜다. 바로 자신이 꿈꿔오던 모습을 그 작은 사진 한장속에서 발겯하였기때문이다. 어쩌면 그 모습은 싱클레어가 몹시도 바라던 자신이 있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바라는 모든 것의 표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키가 크고 거의 남성적인 여인의 형상, 아들과 비슷하면서, 모성애와 엄격함과 깊은 열정의 표정을 지닌 아름답고 유혹 적이며, 아름답고 접근할 수 없는 모습, 데몬이자 어머니요. 운명이자 연인인 그 형상, 그건 그녀였다!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