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고백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기 드 모파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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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총 14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단편집이라 처음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니 한 편, 한 편이 생각보다 마음에 오래 남아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졌다. 넘기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문장을 다시 읽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모파상의 이야기들은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흔히 기대하는 달콤한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설렘보다는 사랑 안에 함께 들어 있는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어긋나는 마음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마음이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첫눈〉이나 〈봄에〉, 〈달빛〉 같은 이야기를 읽을 때는 계절의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다. 첫눈이 내리는 순간의 설렘, 봄이 오면 괜히 기대하게 되는 마음, 달빛 아래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이 이야기들 속의 사랑은 오래 붙잡아 둘 수 있는 감정보다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가깝다. 그래서 더 예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고백〉, 〈미친 여자〉,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을 읽을 때는 마음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누군가의 고백이 항상 따뜻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말해버린 마음과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 사이에서 생기는 균열들이 조용히 드러난다. 큰 사건은 없지만, 읽고 나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목걸이〉와 〈보석〉은 읽으며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허영과 체면, 그리고 남들의 시선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사랑이나 행복보다 사회적인 평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인데도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 인상 깊었다.

이 책에 나오는 반전들은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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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승주연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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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 무무》는 얇은 분량 속에서도 러시아 문학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분위기를 깊이 담아낸 작품집이었다. 사실 어린시절 읽었었지만 그 당시에는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낄수 있었다.두 작품 모두 중단편의 길이지만, 읽고 난 뒤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작과 끝이 얼마나 인간을 흔들어놓는지, 혹은 아무 말 한마디 못한 채 마음만 삼키는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첫 번째 작품인 《첫사랑》은 제목처럼 “사랑의 시작”을 다룬다. 이야기의 중심은 16살의 소년과 21살의 공작부인 지나이다의 만남이다. 여름빛이 가득한 시절, 옆집으로 이사 온 아름다운 여인에게 소년은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의 주변에는 나이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이 늘 머물러 있고, 그들 사이에서 소년은 미약하지만 진심 어린 감정 하나로 스며든다.

지나이다는 장난스럽고, 차갑기도 하고, 어른스럽고, 때론 아이 같다. 남자들을 휘두르면서도 자신만의 고독을 가진 인물이다. 그 세계 속에서 소년은 설렘과 질투, 열등감과 기대를 처음 경험한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배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을 둔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 순간 첫사랑은 달콤함을 잃고 갑자기 어른의 그림자를 띠게 되며 순수한 감정은 한순간에 성장의 통증으로 바뀐다. 첫사랑의 끝은 늘 완성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조용하게 말한다.

두 번째 작품 《무무》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사랑의 시작과 설렘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사랑과 고통, 그리고 순종과 비극의 이야기다. 도시의 한 귀부인의 집에서 일을 하는 말 못하는 거인 게라심이 주인공이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며 살던 그가 도시로 와 문지기로 일하며 살아가는데,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마음 깊은 사람이지만 그 마음을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런 게라심이 조용히 마음을 둔 여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그것도 주인의 뜻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사랑은 때때로 말보다 더 큰 침묵으로 존재한다. 게라심은 충격과 상실을 말 대신 행동으로 겪어내며 살아가고, 그러던 중 진흙 속에서 작은 강아지를 발견한다. 그 강아지에게 그는 비로소 마음을 온전히 쏟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도시의 질서와 주인의 명령은 그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강아지 ‘무무’는 게라심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사랑이지만 결국 그것조차 빼앗기고 만다. 아무 말 못하는 사람의 사랑이기에 더 잔인하고 더 고요하다.

두 작품을 읽고 나면, 투르게네프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참 담담하면서도 매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려한 감정 대신 그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어떤 여운을 남기는지에 집중한다. 첫 번째 작품이 ‘첫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두 번째 작품은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한 권 속에서 사랑의 시작과 끝, 목소리 있는 사랑과 말 없는 사랑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읽기에 어렵지 않지만 마음은 오래 머무는 책이다. 특히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공감할 것이고, 게라심 같은 조용한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은 《무무》 쪽에서 더 오래 멈춰 서게 될 것 같다. 얇은 책이지만 한 번에 읽기보다는 잠시 멈춰 여운을 즐기며 읽는 것이 더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첫사랑》이 소년의 성장서라면 《무무》는 성숙한 순종과 고통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짧지만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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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메뉴판 - 한 장의 메뉴에 담긴 시대의 취향, 계층, 문화 이야기
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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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가 마음에 든 **<미식가의 메뉴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새로운 시각을 주는 책이었다. 처음 표지와 제목을 봤을 때는 음식이나 요리를 소개하는 책이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메뉴판을 통해 음식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알아보는 내용이었다. 이런 방식은 처음이라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칠 때 대부분 맛있어 보이는 걸 고르거나 가격을 보며 고민하는 정도로 끝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메뉴판을 하나의 기록물처럼 바라본다. 어떤 시대에 어떤 음식이 유행했고, 어떤 나라에서는 어떤 표현이 세련되게 여겨졌는지, 음식이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려준다. 그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메뉴판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생활 속 문화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여러 나라의 메뉴판이 등장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미식 문화가 강한 나라뿐 아니라 영국, 미국, 러시아, 중동 지역도 소개된다. 각 나라의 식탁 위에는 서로 다른 취향과 계급, 유행,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소스와 와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재료의 구성이 지역마다 달랐다. 미국에서는 다이너 메뉴가 산업화된 일상을 보여주었고, 영국의 호텔 메뉴는 계급과 격식을 반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의 메뉴판을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음식이 이동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커피, 파스타, 향신료 같은 것들이 어떻게 세계를 오가며 자리 잡았는지를 보면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 이상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전쟁과 무역, 제국주의, 여행 문화가 식재료와 조리법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도 너무 어렵지 않게 풀어져 있어서 쉽게 읽혔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흥미로웠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음식과 계층의 관계였다. 상류층 만찬은 화려한 코스 요리를 자랑했지만 시민 식당은 단순하고 빠른 음식이 중심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차이가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메뉴판을 보면 더 또렷하게 구분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 사람들의 취향과 가치관이 음식에 반영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이해됐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것들 속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메뉴판도 그중 하나였다. 식당에서 펼쳐지는 종이 한 장이 그 시대의 유행을 보여주고, 계층을 나누고, 식재료의 이동 경로까지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앞으로 식당에서 메뉴판을 볼 때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음식 이름을 보며 “이건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왜 이 시기에 유행했을까?” 같은 질문도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다.

사실 음식 관련 책은 레시피 위주이거나 맛집 소개 위주인 경우가 많아서, 음식과 문화를 연결해주는 책은 흔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음식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새삼 느꼈다.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깊이가 있고, 가벼운 여행 같은 재미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여행이나 세계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용어나 딱딱한 설명이 거의 없어서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미식가의 메뉴판〉은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메뉴판이라는 일상적인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경험이 신선했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았다. 읽고 나면 더 많은 음식과 문화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고, 앞으로의 식사 시간이 조금 더 풍부해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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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집중력 찾기 - 명화 속 다른 그림 찾기로 시작하는 몰입 습관
책장속 편집부 지음 / 책장속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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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요즘 내 마음 상태를 정확히 짚어주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력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큼 하루하루 생각은 많고 마음은 자주 흩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중력을 찾는다’는 말보다
‘미술관’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인물 속에서 집중력 찾기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부터 수잔 발라동의 작품까지 총 12점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그림 속 인물을 중심으로 틀린 그림을 찾아보는 구성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한 그림 앞에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오래 머물게 된다.

2장은 풍경화 속에서 그림 찾기이다.
익숙한 풍경화들이 나오지만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색감과 구도가 틀린 부분을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그림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시선이 느려진다.

3장은 일상 속에서 집중력 찾기이다.
유명 화가들이 그린 일상의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 그림 속에서는 얼마나 조용하고 깊은 이야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을 보면서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도 이렇게 천천히 바라보면 충분히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장은 색과 모양 속에서 집중력 찾기이다.
세잔, 마티스, 뭉크,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형태와 색감이 강한 그림들이라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색과 선을 따라가며 보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재미는 각 장마다 원작 그림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살짝 달라진 그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틀린 그림 찾기가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여러 번 보게 되고 그 과정 자체가 집중의 시간이 된다.

각 그림마다 정답을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가 있어서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는
정답을 살짝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끝까지 맞혀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은
길고 복잡한 설명이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그림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미술 지식이 없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저 그림을 보고, 머물고, 찾는 과정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 점이 특히 좋았다.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책 한 권 앞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미술관에서 집중력 찾기』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책이 아니라 집중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드는 책이다. 바쁘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그림 한 장 앞에 머무는 연습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조용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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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 - 고립과 은둔의 시절 넘어가기
햅삐펭귄 프로젝트 지음 / 파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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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은둔의 당사자인 이들이 해피펭귄프로젝트와 함께 참여해 자신들이 왜 은둔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회를 향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부터가 마음을 흔들었다. 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 맞는 말인데, 괜히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은둔’이라는 말이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그래도 나는 바깥일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꼭 방 안에만 있어야 고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를 다니다가, 회사를 다니다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이 다치고 조금씩 겁이 나서 어느 순간 멈춰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이 말이 자꾸 나왔다.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했던 내 모습도 떠올랐고, 나 역시 모르게 마음을 닫아버렸던 시간들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 점이었다. 나가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왜 머물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들려줄 뿐이다.

방 안에 있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말이 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계속 생각하고 계속 흔들리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라는 게꼭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해답을 주지 않아도, 그냥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책은 언젠가는 다시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이 아주 작고 조심스럽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되고, 다시 돌아와도 괜찮다고.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부담이 없었다. 무언가를 깨달아야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당장 달라져야 할 필요도 없었다.그냥사람 이야기 듣듯 천천히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방안에 있는 사람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한 번쯤은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지.

다 읽고 나서 마음이 갑자기 밝아지거나 힘이 솟아나지는 않았다.그 대신 조금 조용해졌다.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느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크게 추천하고 싶다기보다는 조용히 건네고 싶은 책이다. 힘들 때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곁에 두었다가 어느 날 문득 꺼내 읽어도 괜찮은 책.

읽고 나서 괜히 오래 생각이 남았다.
아마도 그게 이 책이 가진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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