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얼굴
이현종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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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어느 날, 한적한 카페 안에서 노부부가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비극이 찾아온다. 낯선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와 그들 앞에 앉더니, 가슴 속에서 칼을 꺼내들고 노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다.

순식간에 카페 안은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고, 사람들은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범인은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갔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그 노부부는 바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희망재단’ 이사장 부부였기 때문이다.

그 시각, 재단을 함께 이끌고 있던 아들 준혁은 회의실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던 그는 계속 이어지는 벨소리에 결국 자리를 비우고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는다. 바로 자신의 부모가 살해되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준혁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부모는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평생 남을 돕고 선행을 베풀며 살아왔던 부모가 왜 이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는지 준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을 맡게 된 형사 병찬과 그의 동료 희성은 범인 차혁진을 심문했지만, 그는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범행 동기도, 구체적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모든 질문을 외면할 뿐이었다. 그 모습은 오히려 의문을 키우며 사건을 더 큰 미스터리로 만들었다.

한편, 희망재단 이사장 부부의 살인사건은 언론과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존경받던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사회적 충격을 불러왔고, 준혁 역시 끝없는 슬픔과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중 준혁은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부모가 남긴 재산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는 것이다. 그저 작은 규모의 자선재단일 줄 알았던 희망재단은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준혁은 부모와 재단의 진짜 정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병찬 형사는 수사를 이어가던 중 희망재단의 실질적 소유주라 불리는 진승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수사와는 무관한 듯 보였으나, 은밀히 병찬에게 ‘의문의 돈을 찾아오라’는 부탁을 건넸다. 수사는 점점 본래의 방향에서 벗어나 재단의 비밀 자금 추적이라는 또 다른 흐름으로 확장되었다.

한편 준혁은 부모님의 집을 찾았다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집 안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현금 다발과 정체 모를 장부를 발견한 것이다. 그 안에는 희망재단의 어두운 내막이 기록되어 있었고, 준혁은 자신이 알던 부모가 결코 단순한 선행가가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순간은 부모의 살인범 차혁진으로부터 찾아왔다. 그는 준혁을 경찰서로 불러내 부모의 실체와 희망재단의 추악한 비리를 낱낱이 밝힌다. 나아가 자신이 왜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선택의 이유를 고백하며 준혁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는다.

부모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수록 준혁의 혼란은 깊어졌다. 세상 모두에게 존경받던 부모가 사실은 어두운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니. 준혁은 진실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끝없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어느 날, 준혁에게 또다시 정체 모를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자신들을 ‘시간여행 연구자’라 소개하며, 부모가 죽기 전 5분 전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준혁은 차츰 그들의 말에 끌리며 마지막 희망을 품게 된다.

한편 병찬은 수사의 깊은 곳에서 점점 더 복잡한 진실에 휘말린다. 재단의 실질적인 보스 진승일과, 그 배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조대식의 존재는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얽어 놓았다. 정의를 밝히려는 자와 끝까지 감추려는 자의 대립 속에서 사건은 예측 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닫는다.

희망재단의 실체를 밝히려는 병찬과 희성, 부모를 되살리려는 절박한 선택 앞에 선 준혁, 권력과 부를 지키려는 진승일과 조대식까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의 진실과 거짓이 드러나며 긴장감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야기는 단순한 살인사건에서 출발했지만, 권력과 욕망, 은폐와 폭로,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준혁은 과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시간여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숨겨진 얼굴』은 제목처럼,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얼굴 뒤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존경과 신뢰, 선행이라는 가면 뒤에 어떤 어두운 욕망이 숨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읽는 내내 긴장과 충격이 이어지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진다. 독자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부모와 재단, 그리고 인간의 진짜 얼굴에 대한 질문을 오래도록 곱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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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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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집을 떠나버린 그날 이후, 엄마와 솔미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남겨진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균형은 무너져갔다. 처음에는 솔미를 위해 씩씩하게 생활을 이어가던 엄마는 점점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집은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지고 음식물 냄새까지 겹쳐 결국 이웃의 신고까지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엄마는 결국 자신의 고향인 고흥으로 내려가지만, 그곳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생활은 반복될 뿐이었다.


고흥에서 솔미는 잦은 이사로 인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옷에서 냄새가 날까 늘 불안했고, 섬유유연제를 과하게 쓰며 자신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국과 수오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따뜻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수국 부모님의 빵집, 수오 아버지의 목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솔미에게 소중한 안식처였다. 특히 목공을 배우며 느낀 나무 향과 손끝의 감각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또다시 산더미 같은 짐을 두고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고, 솔미의 불안은 깊어만 간다.


서울에서 엄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그런 엄마를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솔미는 대학 전공을 심리학과로 선택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엄마 치료비와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솔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목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헌신 속에서 엄마는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영어 공부를 하고, 운전면허를 따며 중고차까지 마련하는 등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연락도 받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솔미는 무기력 속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로 떠났던 수오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수오와 함께 고흥으로 향한 솔미는 밤바다와 밤하늘, 엄마의 친척과 외할머니 집, 그리고 옛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을 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솔미는 깨닫게 된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은 늘 단단해지려 했지만, 그 매몰찬 태도가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했을 수도 있음을. 사랑은 지켜내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가을 방학》은 그런 깨달음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연소민 작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무게를 보여준다. 때로는 돌봄이 억압이 되고, 때로는 거리가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독자는 이 책 속에서 마주한다. 성장과 치유, 그리고 용서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가을 방학》은 단순히 모녀의 아픈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삶의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다가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힘들다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매몰차지 않았는가, 혹은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그만큼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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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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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는 평화롭고 부유하며, 환경까지 마음껏 누리는 나라들이 있다. TV 속 화면이나 여행 후기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종종 부러움이 일기도 하고,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특히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나라들은 그 매력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속내가 있다. 《시선 너머의 지식》은 바로 그 겉과 속의 간극을 파고드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나라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그저 행복해 보이는 그 이상’이라는 주제로 덴마크, 싱가포르, 미국을 다룬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 행복의 비결로 ‘휘게’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저자는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압박을 짚는다. 휘게가 단순한 안락함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을 특정 틀 안에 가두는 문화일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싱가포르 편에서는 초경쟁사회가 된 이유를 뉴스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매번 무례한 뉴스가 화제가 되는 배경 속에는, 국가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경쟁 구조가 자리한다. 미국 편은 특히 남부 이야기로 흥미를 끈다. 남부인들이 유난히 친절한 이유와 그 친절의 뒤에 숨겨진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드러난다.


2장은 아이슬란드, 일본, 프랑스를 이야기한다. 아이슬란드는 우리나라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가 30만 명 남짓이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맥도날드가 왜 이곳에는 없는지, 저자는 역사와 경제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그 이유를 밝힌다. 일본 편에서는 한 TV 프로그램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서양인 콤플렉스를 분석한다. 과거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침탈했던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한 현재의 모습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프랑스에서는 흙수저 출신 총리의 자살 사건을 통해 엘리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회 구조가 한 사람을 극단으로 몰았음을 설명한다.


3장은 ‘물질에 지배당하는 세계’를 주제로 영국, 이탈리아, 중국을 다룬다. 영국 편에서는 ‘로드맨’ 문화의 탄생을 조명한다. 가난한 거리의 젊은이들이 쏟아낸 분노와 삶의 현실이 ‘UK 드릴’이라는 음악 장르에 녹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부모의 집을 떠나지 않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이면에 자리한 경제적·문화적 이유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중국 편에서는 사회주의와 물질주의가 충돌하는 모습을 역사와 현재 속에서 추적한다. 과거의 가치관과 현대 자본주의적 욕망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긴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단편적인 정보로만 알고 있던 국가들을 다층적인 시선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여행지의 화려한 풍경이나 뉴스 속 이미지가 아닌, 그 사회 내부의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덕분에 단순한 부러움이나 선망 대신, 그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까지 함께 이해하게 된다. 읽는 내내 ‘겉만 보고 속을 단정짓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시선 너머의 지식》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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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기약없는 이별
진현석 지음 / 반석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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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용한 시골마을의 풍경은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아픔과 조심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주인조차 바뀐 땅에서 일본인의 소작으로 살아가는 기영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허리를 다쳐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아버지 중식은 누워만 있고, 아내는 그를 대신해서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가는데 그들의 둘째 아들 기영때문에 노심초사한다. 건장하고 기운 넘치는 열세 살 소년 기영. 또래보다 큰 기영.그의 존재는 일본인들의 눈에 띌까 늘 부모의 걱정 대상이다. 두려운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기영은 일본에 있는 형 수영을 찾아 떠나려 하지만 부모는 반대하는데 그런 부모 몰래 기영은 일본인의 계략에 빠져 부산으로 가게 는데 부산으로 가는 과정또한 어린 기영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지만 형을 만나야 한다는 다짐으로 견디게 되고 일본으로 향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일본인의 유혹에 빠진 기영은 결국 가출을 감행하고, 부모에게는 이틀 뒤 친구를 통해 알리라는 쪽지만 남긴다. 일본행 배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긴 기영은 타국에서 만난 은인들 덕분에 겨우 숨을 돌린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 그를 도와주던 일본인 사장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우여곡절끝에 도망쳐서 기영이 도착한 곳은 다카시마. 많은 이들이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만 알고 있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더 큰 규모의 다카시마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은 한국인 노동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섬, 제대로 된 장비도 교육도 없이 바로 탄광 일에 내몰린 그들은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했다. 무너지는 갱도, 허술한 식사, 폭력과 차별, 그리고 잊힌 이름들. 이곳은 더 이상 노동의 공간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장이었다.

광산에서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처참하다. 충분한 식사조차 제공되지 않고, 잠자리도 열악했으며, 기본적인 인권은 무시되었다. 매일같이 무너지는 탄광, 무거운 석탄을 나르는 고된 작업, 사고로 사라지는 동료들. 목숨을 걸고 일하고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기영 역시 그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며, 그곳에서 형 수영과 재회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힘든 현실앞에서는 아무소용이 없어진다.

작가는 기영이라는 소년의 눈을 통해, 역사의 뒤편에서 침묵당한 조상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한, 말해지지 않았던 참혹한 진실. 영화 <군함도>에 등장한 하시마섬조차 이 다카시마에 비하면 ‘덜 알려진’ 지옥일 뿐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소설 말미에는 다카시마의 실제 풍경 사진과 함께, 한국인 유해를 임시로 모신 허름한 비석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일본인 유골과 뒤섞여 아무렇게나 방치된 조상들의 흔적은 단지 과거의 아픔이 아니라, 지금도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민족의 상처를 말한다. 이들은 나라를 잃고, 이름을 잃고, 끝내 기억에서도 사라질 뻔했던 존재들이다.

『외딴섬, 기억 없는 이별』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온 역사에 대한 고발이자 기록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겪은 고통의 시간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 할 역사이며,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현재다.

이 책은 말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그리고 이제는, 더는 아무도 외딴섬에 홀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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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곽선생뎐 1~2 세트 - 전2권 싱긋나이트노블
곽경훈 지음 / 싱긋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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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나라’는 환상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과 정치의 민낯은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권력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정적을 몰락시키는 일쯤은 당연시된다. 현재 쥬의 지배자는 백색당. 그들은 탐욕으로 가득 차, 백성의 재산을 강탈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며 무자비한 통치를 이어간다.

그런 악행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암행총관 곽곽선생이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문을 달고 다닌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에는 항상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곽곽선생은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이며, 그가 거느리는 무사들 역시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실력을 지녔다. 법 위에 군림하던 자들이 그들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응징과 복수극이 아니다. 곽곽선생은 치밀한 계획과 지략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그 과정에는 단순히 선악의 대립만이 아닌, 깊은 철학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책을 읽다 보면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과거와 고뇌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정의는 때로 잔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곽곽선생은 제갈공명을 떠올리게 할 만큼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악인을 찾아내고, 정확한 판단과 빠른 실행력으로 사건을 해결해간다. 그가 사라진 자리는 언제나 정의가 회복된다. 하지만 그 정의앞에서 실행되는 용서가 없는 잔인함은 약간은 고개를 돌리게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악인들에게 그렇게 밖에 할수 없음을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때로는 현대 사회에 곽곽선생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상상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세력이 등장한다. 부패한 사제들, 무능한 국왕과 그 자리를 노리는 왕세자, 야망을 품은 은산군, 그리고 해적들까지. 종교와 권력, 무력과 야망이 복잡하게 얽히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곽곽선생과 함께 하는 뛰어난 무사들의 이야기까지. 그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작가는 이러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꼬이지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며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는다.

스토리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개가 매끄럽고, 결말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몰입감 높은 전개 덕분에 단숨에 2권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해준 작품이었다. 곽곽선생의 칼날은 비록 차갑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정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인물이 존재하는 쥬나라라는 공간은 상상이지만, 그의 존재만큼은 현실 속 갈증을 달래주는 대리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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