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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지현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 그대로, 사랑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피츠제럴드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단편집이라는 점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고 나니, 이 책은 생각보다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지만, 읽다 보니 묘하게 비슷한 감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각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어긋나는 모습들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은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균열이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단지 몇 시간 동안의 만남일 뿐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서 말하지 못한 감정과 지나간 마음들이 조용히 드러난다. 큰 사건은 없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꼭 결과가 있어야 남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꿈」은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젊음의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사랑이 얼마나 눈부시면서도 허무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그 여운이 남았다.
「분별 있는 일」은 제목처럼 이성적인 선택을 했다고 믿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했던 그 ‘분별’이 정말 옳았는지, 아니면 너무 늦게 후회하게 되는 선택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그때는 몰랐지’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설정이 독특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 역시 사랑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삶 속에서, 사랑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덧없는 감정인지 보여준다. 특별한 이야기인데도, 감정만큼은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버니스, 단발로 자르다」는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결국 경쟁과 비교 속에서 상처받는 소녀의 이야기다.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어서 읽는 동안 불편하면서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얼음 궁전」은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찾으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도시와 시골,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온도 차이가 사랑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해하려고 해도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컷글라스 그릇」은 완벽함을 향한 욕망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단단해 보이지만, 작은 균열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사랑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피츠제럴드가 말하는 사랑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랑은 늘 부족하고, 엇갈리고, 때로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설레기보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담담한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작가가 모든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읽는 사람이 자기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남을 것 같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하루에 한 편씩 읽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조용한 시간에 읽으면 좋겠다. 사랑을 막 시작한 사람보다는, 사랑을 한 번쯤 지나온 사람에게 더 잘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강렬한 책은 아닐지 몰라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조용한 흔적을 남기는 책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