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한지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한지혜 소설가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다.  

 

  「소리는 어디에서 피어나는가」단편을 읽는다. 어느날 소리를 잃어버린 화자와 병신과는 씹하지 않는다는 하반신 마비의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병신과는 씹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남자는 여자를 병신이라고 하지만 병신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병든 것은 남자 자신이다. 여자는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들으며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느 밤 여자는 잠결에 천둥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크고 무섭고 요란한 소리였다. 어느 곳에서 벼락이 내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종말이 있다면 , 어쩌면 그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찾았으나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은 아니었다. 몸 어느 한쪽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저 요란한 빗소리 천둥소리가 여자의 귀를 무섭게 덮쳤다. 그 밤에 여자는 고막이 어디쯤에 위치한 기관인지 비로소 알았다. 그게 찢어질 것 같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알았다. 소리가 너무 크니 두통도 생겼다. 생각해보니 눈을 뜰 수도 소리를 칠 수도 없었던 것은 두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귓속이 요란해지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몸의 모든 기관이 무기력해졌다. 여자는 한참을 소리와 싸우다가 어느 순간 지쳐 잠이 들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노곤한 잠이었다.


  가족들도 일일이 눈을 마주쳐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조금씩 귀찮아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기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말의 억양 높이 어조 그걸로 알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들을 수 없으니 모든 언어가 형식으로만 다가왔다. 알아듣기는 하지만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었다.

 

 

4월이 오면 그녀도 오겠지」를 읽었다.


  그러나 류가 나의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사랑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도 묻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7년 동안 만난 적 없이 헤어지기만 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연애였다. 그런 식의 연애도 가능하는 걸 나는 류를 통해 배웠다.


  결혼 이후 외로워지는 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 직장을 그만둔 후 대화 상대는 남편이 유일했다. 우리는 어떤 분야든 화젯거리로 삼을 수 있었고 대화가 많은 부부였지만 , 각자의 마음에 있는 사랑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었고 , 지나간 사랑을 말하는 건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까지 세 번을 헤어졌고 류와 만났다 헤어지기를 세 번 했다. 결혼을 한 후에 찾아오는 외로움과 그리움들 결혼을 하면 사랑하던 사람도 사랑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일까?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편을 읽는다. 모호해지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외로움과 고독함이 화자를 지배했을 것이다. 한지혜의 소설은 세 편 연속으로 결여라는 말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4월이면 그녀도 오겠지」「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결혼 후에 오는 외로움과 고독 상대방의 부재 있어도 없는 없어도 있는 존재에 대한 결여가 도드라진다. 다음에 이어지는 「미스터 택시 드라이버」에서 아버지가 부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필적 고의에 관한 보고서」는 살아있는 남편을 사망 신고하고 자기는 일 년 전에 실종 신고를 하고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선언한 뒤 사라져버리는 여인에 대한 기록이다. 사건 일지 형식으로 진술을 모아 놓은 형식이다. ‘부재하는 존재들’은 배우자들이다. 가정은 부모 즉 어미와 아비 남편과 아내를 기본으로 자식까지 통칭 가족이라고 하는데 ‘부재’한다. 어느 한 쪽이든 여기서는 보통 남편들이 부재한다. 부재의 흔적 결여의 흔적이 여기서도 보인다.


  사랑하는 당신 , 나는 오늘 당신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은 늘 집에 없는 존재 같아서 나는 늘 혼자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 나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에는 온통 당신 흔적뿐입니다. 당신이 죽은 이후 조금이라도 당신과 상관이 있는 물건을 모두 버린다면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비로서 했습니다. 무척 슬프고 참담했습니다. 신발장 구석에서 오래된 이 구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저는 결국 또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죽이기로 한 것은 부재하기 때문이다. 집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존재는 없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하이힐을 발견하면서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이힐은 아내인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역 벽과 등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택시 드라이버」에서도 가정은 기형적이고 불완전하고 존재는 부재로서 존재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든 있는 존재로 두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는 실종처리를 해버리기도 한다. 화자인 나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몇 번인가 스텔라를 본 적이 있다. 술에 취했을 때 길을 잃었을 때 도망치고 싶을 때 손을 흔들면 별처럼 노랗게 전조등을 밝히며 택시 한 대가 다가온다. 은빛 스텔라다. 깜짝 놀라 안을 들여다보면 성마른 중년 남자거나 늙은 노인이거나 어쩌다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여자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별생각 없이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서 문을 닫을 즈음 나를 향해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들이 변장한 아빠였음을 깨닫게 된다. 스텔라가 아직 건재한 걸 보면 아빠는 스텔라와 단순한 밀월 여행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혹 아빠를 또 만나면 인사를 해야지 스텔라에게도 안녕 하고 말해줘야지


  사라진 아버지의 존재는 매워진다. 처음부터 없어도 되었던 것처럼 하지만 완전히 잊혀지진 않는다. 화자인 나는 아버지를 만나면 인사를 하겠다고 말한다. 어디에도 있으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의 아버지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인사를 하자 아버지 안녕하세요.


  막상 내 인생에 대해서 쓰려고 보니 그건 이미 누군가의 인생이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도 이미 누군가가 먼저 썼다. 내 이름은 K 그러나 어쩌면 R이거나 P이거나 혹은 Q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력이란 매우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멜로디의 변주와도 같다. 누구와도 섞이지 않은 고유한 인생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걸까. 죽기 전에 나는 그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거짓말」은 고스트 라이터 유령작가가 화자다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라고 전해지는 메일로 시작하는데 읽다가 보면 어떤 것이 진짜 이야기이고 어떤 것이 가짜 이야기인지 모호해진다. 나의 삶을 이야기해도 그 순간 타인의 삶이 되어버리고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순간 내 삶도 거기에 녹아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사는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제가 끝난 후 목각으로 대신한 두 개의 주검은 모두 불에 태워져 가루가 되었다. 노인은 강물에 뿌려졌고 아이는 나무 밑에 뿌려졌다. 강물에 뿌려진 삶은 어린 물고기의 몸속에 들어가 그 자체가 되었고 나무에 뿌려진 삶은 나무가 되어 자라며 늙었다. 그렇게 그들은 못다 한 삶을 마저 살았다. 원래의 삶은 아니었으나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실종 발췌)


「실종」은 노인과 아이가 실종되면서 벌어진 상황을 서술했다. 분명히 존재했으나 감추어지고 은폐된 존재들이 된다. 어쩌면 이들의 실종은 타인들 - 여기서 타인들은 가족들이다. - 이 오매불망 바라왔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보고서」에 등장하는 부재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기뻤다고 당신은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산 퍼즐이 이가 빠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퍼즐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평생 동안 자신이 불량 퍼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고 , 조각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그것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부주의로 사라진 것이라 믿으며 자책할지도 몰랐다.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당신이 유일한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당신은 전지적 존재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투명인간은 당신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그린 그림은」에서는 상상임신을 한 화자가 등장한다. 그의 저녁을 준비하다가 잊은 것이 있다면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화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다. 상상임신을 자각하지만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사라진다는 일 있던 것이 하나 빠져버리는 것은 얼른 표시가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만 개 혹은 천 개의 퍼즐을 맞추다보면 하나 쯤 티가 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 있다가 잃어버린 것인지 조차 가물가물하기 마련이다. 항상 같이 있던 존재가 남편이었던 존재가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 남편이 투명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존재 자체도 투명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투명한 존재의 생산이라 존재는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중첩되는 이야기들이다.


 하루는 파출소에 있는 여자아이를 데리러온 아빠가 아이에게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이사를 해야겠다. 가족을 꾸리려고 해 아이의 인상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이제 가족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먼 곳을 바라보며 아빠가 말했다.


 혹 가족이 없으세요?

 - 없기는 기억이 없지

 아무것도요?

 이 집도 기억하고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도 기억하고 이 골목도 기억하지. 오고 가는 사람도 기억하고 , 봄 , 여름, 가을 , 겨울과 그 계절에 일어난 일들도 다 기억하고 내가 보았던 일은 다 기억해

그럼 자신에 대한 기억만 없는 거에요

그런 셈이지


 낮선 골목길에서 할머니와 여자아이는 조우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할머니는 딸을 여자아이는 동생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이란 두 여성에게 이미 행복한 공간이 아니라 절망의 공간이다. 또한 지긋지긋한 공간일 뿐이다.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기억한다는 것은 존재의 사멸을 말한다. 내부가 아니라 외부만 기억한다. 외부를 기억하기 시작하는 순간 자기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시절을 지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순 있어도 그 이야기 속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떤 존재로 남아 있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존재를 설명하고 증명할 딸과 동생이 자신들에게 올 때까지 이들의 존재는 없음 그리고 부유하는 존재일 뿐 명명되어지지 않은 존재일 뿐이다.


   버스르 타고 다니다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소매치기와 어여쁜 처자와 겉은 멀쩡한 변태 사내와 나이 어린 학생과 등 굽은 노인이 섞여서 서 있다가 싸움이 붙기도 하고 눈이 맞기도 합니다. 버스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서 적는 일은 매우 즐겁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록을 다 끝내고 나면 그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한 생의 피로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나는 나무 그늘 밑에 발랑 누워 잠시 하늘을 봅니다. 누워서 숨을 고르다 보면 좀 괜찮아집니다.


  「뛰뛰빵빵은 어느 날 말을 잃어버린 남자가 버스를 타면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기록이다. 한 여자를 관찰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삶을 써내려가기도 한다. 글로 사람의 삶을 대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한 생의 피로감을 느낀다고 한다. 타인의 삶을 사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자신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이겠는가?


  화자인 나는 불미스러운 오해로 버스를 타지 않다가 다시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당신은’이라고 적힌 편지의 답장을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나는과 당신은 이라고만 적힌 편지와 답장들은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읽고 싶어진다. 생이라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살아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가리워진 아직 쓰지 않은 편지를 채우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좋을 듯하다.


 어영부영 한지혜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마친다. 지난한 일이다. 그냥 읽고 즐기면 될 것을 분해하고 들여다본다. 원래의 형태가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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