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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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김중혁 작가의 첫 소설집 펭귄 뉴스를 읽은 기억은 있는데 사실 내용을 기억하기는 힘들다. 활자들을 읽어내느라 그랬을 터였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제목만 남고 이야기들은 녹아내렸다.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가 이종교배를 하듯 한다. 생성되고 사멸된다. 그렇게 김중혁 작가의 이야기는 내 기억의 뒤편 이야기의 한 켜를 조신하게 지켜왔다.

<좀비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좀비라는 소재와 그것도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이다.
좀비라는 것이 흔히 죽은 사람을 살리는 초자연적인 힘 마법으로 되살아나 시체를 이르는 말이라고 김중혁은 책의 앞머리에 친절하게 적어두었다. 또한 무기력한 사람 얼간이 멍청이라는 뜻도 있다고 병기해두었다. ‘세상의 모든 좀비들에게’라는 묘비명과도 같은 문장이 첫 머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좀비가 아닌 자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삶의 모든 순간 한 순간이라도 무기력하지 않은 인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좀비들이다. 좀비라는 개별이 아니라 좀비들의 군집체인 좀비들이다. 개별이 대중성 혹은 익명성을 획득하는 순간인데 익명성 속으로 개별이 함몰될 때 안타깝게도 괴물들은 탄생하게 되는 모양이다. 개별이 익명성 뒤로 숨어드는 시기에 사는 우리들은 어쩌면 좀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익명성과 대중성 속에서 인간되기란 가능할 것인가? 박상륭 식으로 한 번 말해보자면 ‘아흐 누가 저 독룡의 아가리에서 공주를 구해낼 것인가’정도 되겠다.

김중혁은 책의 말미에 좀비들에 대해서 ‘이것은 좀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쓴다. 이야기의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좀비들이긴 하지만 말마따나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겪었던 이야기다. 잊혀져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좀비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사실 좀비이기 전에 사람이었고 가족도 있었고 아버지이기도 어머니이기도 했고 아들이고 딸이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잊혀질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잠시 잊혀진듯 가라앉은 기억의 편린들을 감당하고 있다.

‘특별한 죽음은 없다. 특별한 죽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죽음을 동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세사에 특별한 죽음은 없다.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고 0이다.어머니의 죽음도 , 형의 죽음도 , 홍혜정의 죽음도 나에게 조금 특별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곧 나 역시 그 죽음들을 잊을 것이다. 죽음들은 평범해질 것이고 , 쉽게 잊혀질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책의 한 부분이다. 죽음에 관한 서사는 내 관심 중에 하나다. 작가들이 죽음에 대해서 선언해 왔다. 그러나 결국 아무리 특별하게 볼래도 특별할 것이 없다. 특별한 것이 없는 것에 대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힘들다. 사실 더 힘든 것은 살아 있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김중혁은 죽음에 대해서 서술하고 나서 삶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0이 되지 말고 , 쉽게 소멸하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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