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백과사전과 같이 정형화된 문자라면 읽고 암기하는 것으로 문자의 소용은 다하게 된다.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문자 너머에 있다. 문자와 문자들 - 음절과 음절들 - 이 설핏 보면 획일적인 배열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 이야기지만 - 음악도 소음의 배열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 문자가 개체가 아니라 군집체가 되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언명처럼 이야기는 태어난다.








이야기에는 보통 외면과 내면이 공존한다. 외면만이 있는 이야기도 있고 내면과 외면이 공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나라하게 내면이 드러나기도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의 외면을 읽는 것을 구조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면 내면을 읽는 것은 의미의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며 내면이니 외면이니 객쩍게 몇 자 적어 본 것은 김언수의 <설계자들>에 대해서 말해보기 위해서다. 외면은 간명하다. 래생이라는 사람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특이한 것이라고는 래생이라는 이름과 그의 직업 정도다. 來生 - 아직 오지 않은 생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며 ,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직업이다. 그렇다면 내면은 어떤가?








내면을 탐사할 때부터 책 읽는 자의 유일한 특권이 발동한다.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서 문자를 읽으며 눈을 혹사시킨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오독 , 지극히 개인적인 읽기가 바로 그것이다. 행과 행 사이 행간을 거닐 수 있는 것이 오독이다.








사창가로 돌아가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걸 여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알면서도 돌아갔다. 우리는 더럽고 역겹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국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추가 살려준 여자를 수소문한 래생이 그녀가 사창가로 돌아갔다는 것에 대해서 서술하는 부분이다. 여자는 특별한 곳 - 원래 자신이 기거하고 밥벌이를 하던 곳이 아닌 곳 - 을 찾아가지 않고 익숙한 공간으로 회귀한다. 익숙한 공간이 자신의 목숨에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고 결국 익숙한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이 두려웠겠지만 익숙한 공간이었으므로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익숙함이란 마취제와 같은 것이다.








익숙함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쉬운 일이긴 하다. 특히 두려움을 견디는 모험보다는 익숙함 속에서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이다. 그래서 여자는 돌아왔고 역겨움을 견뎠으며 래생도 공장에서 다시 개들의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래생이 다시 돌아온 것도 특별함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창가의 여자와 닮아 있다.








래생의 친구인 정안이 죽은후 래생이 정안에 대해서 회상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삶을 살겠다는 정안이 죽었다. 기계처럼 가볍고 모호고게 살겠다던 , 사랑도 증오도 배반도 상처도 그리고 추억도 없이 살겠다던 공기처럼 그 자리에 내가 없는 듯이 살겠다던 정안이 죽었다.








정안이 꿈꾸었던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삶 너무나도 평범해서 기억조차 남길 것 없는 그런 사람을 바랬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애쓰고 노력할 때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지운다. 특별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해지기를 원했다. 평범한 것은 요원하기만 했다.








사창가의 여인과 래생과 정안의 평범한 것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갈구하는 것이었지만 이룰 수 없는 - 여자는 평범함에 도달했지만 죽임을 면할 수 없었고 , 래생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긴장 속에서 살았고 정안은 평범함을 꿈꾸었지만 이루기도 전에 죽었다. - 것이기도 했다.








개들의 도서관장인 너구리 영감은 도서관의 진정한 주인은 먼지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먼지는 아주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 한 줄기 빛이 어둠 속을 투과하게 되면 그 빛이 지나가는 면적만큼은 어둠 속을 부유하던 먼지들이 선명하게 , 명징하게 드러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존재라고는 없고 오로지 적막과 침묵만이 존재하는 도서관 그 곳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먼지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나아가고 있고 역사라는 것은 몇몇의 사람 중에서 몇몇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수많은 이름을 뒤편으로 폐기시킨다. 하지만 세상과 역사를 받치고 있는 것은 몇몇의 두드러진 이름이 아니라 뒤편으로 폐기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래생은 책을 읽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개들의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깨쳤다. 책을 읽던 래생에게 너구리 영감이 한 말은 이렇다.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것이냐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까라는 물음이 밀려온다. 아마도 부끄럽고 두려울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표면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알게되어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책은 지구의 톱니바퀴를 빼내는 일이기는 하지만 책 읽는 모든 환자들은 책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래생이 처음으로 너구리 영감에게 당당히 책을 읽겠다고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것이고 , 사람이 죽는 것보다 그 위 혹은 그 뒤의 진실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한 세계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세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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