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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 차상문 - 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
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천재 토끼 차상문』 (김남길 , 문학동네 , 2010) 에 대해서 말하기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읽을지 말지 생각이 좀 많았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글쎄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작가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냥 읽어야 될 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확신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확신만큼 맹신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무조건 읽는다.
책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의 주인공은 토끼 영장류‘차상문’이다. 뭐 그냥 간단히 토끼의 모습을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 등장하는 그 토끼보다야 못하지 않은 수학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천재’라는 명사의 수식을 받는 토끼 인간 ‘차상문’이다.
천재들은 고독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여기 등장하는 차상문도 조금 고독하다. 약간 미쳐버린 것 같기도 한- 범인(凡人)이 보면 비범(非凡)한 자들이 미쳐 보이거나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먼저 전재로 생각할 필요는 당연히 있다. - 모습이다. 세속을 벗어나 탈속적인 물음을 연구한다. 차상문의 예를 보라 유학을 가고 최연소 교수가 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어느 순간 문명 속에서 사라진다. 다른 작은 문제들을 풀고 난 후 마지막 물음일지도 모르는 차상문이 풀어야 하고 우리 인간에게도 던져야 할 질문인데 인간이라는 동물이 진화의 최종 단계인가 하는 물음인데 , 차상문의 존재가 이미 인간의 진화 최종단계를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흔히 우리가 보고 열광하는 X맨들이나 뮤턴트X - 미국에서 방송되거나 영화화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다 - 의 개별화되고 특화된 능력을 상기해볼 때 인간 이후의 존재가 없으리라는 속단은 내리기 힘들다.
차상문이 고민하는 것은 과거의 것도 아니고 현재의 것도 아니다. 오로지 가까운 미래이든 먼 미래이든 미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물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수학의 천재적 재능은 철학의 논리로 변하여 생각을 논리화하고 철학의 결론을 도출하는 메커니즘으로 사용된다.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가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논리적 가설이 되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진화의 마지막인가? 나는 인간이니까 아직 그 답을 섣불리 내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토끼 영장류 같은 것을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토끼 영장류를 들고 나와 이야기한 것을 문학가들의 비유와 은유로 둘러쳐진 경고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다. 도태라는 말을 극단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영장류의 등장은 어쩌면 인간의 도태를 말해볼 수도 있겠다. 약육강식의 간단한지만 자명한 생존의 법칙을 생각해보라 새로운 영장류가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나 악어 사자 기타 등등의 육식의 습성을 가진 족속들이라면 인간도 그들에 의해 사육되고 음식화 되어 먹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 자명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비관적인 상상력의 작동인가?
그렇다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영장류가 출현하지 않게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함께’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공존이라는 것은 서로가 일정부분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쉽다. 하기사 인간이라는 족속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싶다. 생각해보자 하느님의 독생자를 믿는다는 종교도 , 하느님을 믿는다는 저 사막의 한 종교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충돌하고 멸절을 목표로 칼을 들이대면서 성전을 선포하지 않았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자를 따르는 자들은 그나마 그 정도가 심하지 - 심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내 기억으로는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은 없으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먼지만큼도 아니기 때문이다. - 않다 난데없이 종교 이야기가 나온 것은 차상문의 만행의 연원을 살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바람 때문이다.
가끔 소설을 읽다가 보면 소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설의 이면이 틀림없을 것이지만 알 수 없는 이명증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참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그 들리는 소리에 현혹되어 되지도 않는 말을 꾸며 웅얼거리니 비오는 날 중이 염불하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말하면서도 득의만면하게 확신의 실타래 끝머리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허공에 대고 웅얼거리고 있어서 미친 것이 되어가지 않나 싶은 문득 겁나지만 이것을 멈출 수 없어 나는 슬프다.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시베리아 샤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