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청준의 인생
이청준 지음, 한향란 사진 / 열림원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66
『이청준의 인생』 (이청준 , 열림원 ,2004)에 대해서 말하기
오늘 아침 반찬으로 숙주나물을 먹었다. 숙주나물은 녹두나물이라는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숙주의 일화와 연관되어 숙주나물로 불리는 나물이다. 사실 녹두냐 숙주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물을 무치려면 숙주가 삶겨야 하고 참기름도 좀 들어가야 하고 파라든지 깨소금이라든지 다양한 양념이 들어가서 숙주만이 가지고 있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인생이란느 것도 처음에는 순정한 것이었겠으나 다양한 양념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맛을 내는 나물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생뚱맞은 숙주나물 이야기를 끌고 왔다. 물을 마시지 않으려는 말을 물가로 끌고 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인생’이라는 낱말은 그 낱말 사이에 많은 주름을 가진 낱말이다. 혹은 서랍이라고 해도 좋다. 주름과 서랍 속에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겪은 사건들이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정렬되어 보관된다. 노년의 사람에게 주름이 있는 것은 많은 이야기를 몸에 기억을 하고 있는 때문이다. 이청준의 인생은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살아온 세월이 많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노년의 작가는 인생을 살면서 만났던 “인생의 갈피마다 선명한 자국을 남긴 사람들”을 기록한다. 많은 이야기들이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함께 살아가기’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의 자루 안에 다양하게 펼쳐진다. 많지 않은 분량의 글들이 배열되어 있는 행간을 보면서 그저 마구 읽어버리기엔 아쉬운 것들이 행간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여백이 있는 글들이다. 여백 속에서 많은 말들을 하고 글로는 최소로 축약해서 이야기한다. 많은 인연들이 거론되고 불려나왔다가 물러갔다. 나는 이러한 인연들을 아직 가져보지 못해 안타까웠고 부끄러웠으나 아직 인생과 세월의 주름 하나도 생기지 않았으므로 조급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조로증 환자처럼 조급하게 이미 늙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말해주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차라고도 할 수 있고 이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청준의 인생은 한 권의 수필인데 - 두 가지 의미를 다 읽어보자 이청준이라는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수필이라는 뜻도 있고 ,『이청준의 인생』이라는 책이 한 권의 수필집이라는 의미도 함께 넣었다 - 예전에 수필을 교술(敎述)이라고 했던 것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교술은 ‘가르치기 위해서 쓰는 글’이라는 의미 정도만 이해하면 될 듯한데 이청준의 글이 그러하다. 신변잡기의 글이라기보다는 교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인상 깊은 구절을 한 구절 쯤 옮겨 보자면
공간과 장소의 서로 다른 의미에 새삼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드링 있다. 이를테면 서울시 당국자들이 도로율을 높이기 위하여 무교동 슬집 ( 도시의 한 명소로서 )들을 마구 부숴댈 때 이들은 서울의 도시계획이 지나친 공간 개념에 집착하여 장소 개념을 소홀히하고 있다는 불평을 하는 따위가 그런 것이다. 이때 말하는 공간이란 대개 시간과 더불어 물체계를 형성시키는 기본 형식으로서의 물리적 개념임에 비해 , 장소는 사람이나 물건이 머물러 있는 곳 , 이를테면 우리 인간들의 생활이나 이해관계가 침투해 들어가 있는 지리학적 개념의 명사라 할 것이다.
되풀이 말하면 공간은 아직 윌의 삶의 의미가 상관되어 있지 않은 물리적 절대 개념의 용어임에 반하여 , 장소는 그 공간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을 관계시키고 영위해 나가는 일종의 상대적 응용 개념의 용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따라서 장소는 바로 우리들 생활과의 관계 용어요 하나의 장소가 이름을 얻어 생겨나기까지는 반드시 그곳에 그만한 삶의 집적(集積)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소(이제는 아마 명소라고 말해도 상관없을 터이다)가 많을수록 그 장소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이 그만큼 윤택하고 세련되어진다는 것도 바로 그 장소의 그런 생성의 과정 때문일 터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 장소들은 바로 한 민족사회의 문화나 문명의 증거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내력 깊은 유적지나 소문난 풍속 소문난 음식의 고장들 , 특산물의 고을들이 모두 그 지방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의 한 양식과 증거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청준의 인생』(이청준 , 열림원 , 2004)
더 많은 풍속의 장소를 위하여 중에서 99쪽~101쪽
공간과 장소라는 낱말의 결을 잘 읽어 낸 사유의 결과라고 해도 좋은 문장이다.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지만 장소는 기억이 내려앉아 먼지의 더깨를 감내해야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혀 다른 장소로 태어난다. 공간이 불사조가 부홯할 때처럼 재가 불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재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소멸되었다. 깨어난다고 장소가 될 수 있을까? 공간을 소멸과 생성을 거듭해도 그저 공간일 것만 같